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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다도해의 노을 대신 ‘안개’ 속의 도솔암을 만났다

by 낮달2018 2023.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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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기행] ⑥ 달마산 도솔암(兜率庵)(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202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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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은 달마산 도솔봉 아래 바위 위에 세운 조계종 제 22 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인 조그마한 암자다. ⓒ ZUM허브

미황사로 찾는다고 하니까, 산과 절집을 찾아 부지런히 이 나라 골골샅샅을 뒤지고 다닌 의성의 벗은 도솔암에도 가 보라고 일러주었다. 도솔암? 잘은 몰라도 그가 권하는 암자라면 더 볼 게 없겠다 싶어 여행지 목록의 미황사 아래에 도솔암을 끼워 넣었었다.

 

도솔암, 미륵의 세상을 지향하는 곳

 

‘도솔(兜率)’은 불자가 아니라도 귀에 익다. 그렇다, 우리는 신라의 향가를 배우면서 월명사가 지은 4구체 노래 ‘도솔가’를 배웠었다. ‘도솔’은 고대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tusita(to satisfy)’의 음역(音譯:외국어의 음을 한자의 음을 빌려 나타내는 일)인데, ‘(속세의 윤회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곳’을 의미한다.

 

도솔천(兜率天)은 불교에서 미륵보살이 머무는 ‘천상의 정토(淨土)’를 가리키는 이상세계로 ‘지족천(知足天)’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미륵이 도솔천에 올라가 설법하고 있는데, 그는 장차 사바세계에 다시 태어나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할 것이라고 한다. 죽어서 자신이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염원하거나 미륵이 더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 염원하며 수행하는 신앙이 미륵신앙이다.

 

미륵신앙은 구원론적인 구세주의 현현(顯現: 나타냄)을 의미하기도 한다. 삼국시대 이래로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신앙으로, 상당수의 미륵불상이 전해오며 미륵신앙에 얽힌 설화도 민간에 널리 퍼져 있다. 도솔암 또는 지족암·내원암이라는 명칭의 암자가 전국 곳곳에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도솔암은 달마산뿐 아니라, 선운사의 산내 암자를 비롯하여 통영과 울산, 봉화, 지리산에도 있다.

 

신라의 4구체 향가 ‘도솔가’는 경덕왕 19년(760) 4월 초하루, 해가 둘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으므로, 왕명에 따라 지나가던 승려 월명사(月明師)가 지어 부르게 한 노래다. 월명사는 산화공양(散花供養)을 하면서 ‘산화가(散花歌)’와 함께 이 노래를 지어 부르자, 괴변이 곧 사라졌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오늘 이에 산화(散花) 불러 /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의 명 받아 / 미륵좌주(彌勒座主) 뫼셔라.

  * 산화(散花):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꽃을 뿌리는 일

  * 미륵좌주:미륵불, 앞으로 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할 미래불

 

이 노래에서 ‘도솔’은 ‘미륵’을 가리킨 말,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 괴변이 사라지자 왕이 차와 염주를 하사했다. 문득 한 동자가 나타나 사라지니 왕이 그를 쫓아가게 하니 동자는 사라지고, 차와 염주는 미륵보살상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 달마산은 '남도의 소금강'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도솔암 쪽에서 찍은 산아래 풍경. ⓒ 여행스케치
▲ 달마산 도솔봉에서 내려다본 풍경 중 압권인, 해남에서도 최고로 친다는 '도솔암에서 바라보는 일몰' 장면. ⓒ 월간 <산>

달마산 도솔암(兜率庵)은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 달마산의 서쪽 정상 도솔봉 부근 바위 위에 있는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인 조그마한 암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가 도솔암을 창건하였고,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의조화상이 도솔암 서굴에서 수행하면서 낙조를 즐겼다고 한다.

 

의상이 창건, 의조화상이 수행한 암자 도솔암, 폐사됐다가 2002년에 중건

 

이후 도솔암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데,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패한 왜구들이 바닷길이 막혀 달마산으로 퇴각하던 중 도솔암을 불태워 폐사되었다. 2002년까지 주춧돌만 남은 채 방치되다가 2002년 월정사에 있던 승려 법조가 꿈에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도솔암 터가 3일 동안 보인 후 법당을 중건하고, 2006년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하늘 끝에 걸린 듯 위태롭게 세워진 암자 도솔암이 사람들의 발길을 끈 것은 땅끝마을과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덕분이다. 2016년 1월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이달의 가 볼 만한 곳’에 선정되었으며, 주변 풍광이 뛰어나 여기서 드라마 <추노>, <각시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마녀도감> 등과 광고(CF)가 촬영되었다. 또 도솔암을 찾는 이는 물론 불자만이 아니다. 달마산 둘레길인 달마고도를 걷는 여행자들과 바위산 달마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즐겨 찾으면서 도솔암은 이른바 ‘전국구’가 된 셈이다.

▲ 도솔암 주차장의 도솔암으로 들어가는 어귀. 안개가 자욱해서 주변 풍경이 어렴풋하다.
▲ 도솔암 가는 길. 자욱한 안개 속에 주변의 나무와 숲도 낯설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 도솔암 가는 길. 일행이 앞서가고 나는 부지런히 뒤를 좇았다.
▲ 도솔암 가는 길. 길가에 '조릿대'로 불리는 산죽이 우거져 있었다.
▲ 도솔암 가는 길. 안개 속에 드러난 기암괴석.
▲ 도솔암 가는 길. 산죽과 함께 단풍나무의 푸른 잎사귀도 안개에 젖었다.
▲ 도솔암 가는 길. 안개 속에 어렴풋이 드러나는 기암괴석 뒤로 바위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 도솔암 가는 길. 소나무 사이로 바위 봉우리가 안개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다.
▲ 도솔암 가는 길. 달마산 정상과 도솔암, 도솔봉 주차장이 갈리는 길의 이정표.

도솔암에 가는데 산행이 필요하다면 엄두를 내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도솔봉 정상까지 차로 닿을 수 있고, 거기서 도솔암까지는 800미터, 15분쯤 걸으면 된다기에 도솔암을 방문 목록에 올렸었다. 미황사 달마선원 뒤쪽 임도로 도솔암을 가려다가 승용차로 임도를 달리는 게 무리다 싶어 우리는 다시 산을 내려가 차로 도솔봉에 올랐다.

 

안개 속, 도솔봉 아래서 도솔암을 찾아가는 길

 

그 전날 비가 제법 내렸고, 아침부터 날씨는 잔뜩 흐렸다. 도솔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찻길을 오르면서 우리는 도솔암의 전망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산을 휘감은 안개가 짙었고, 좁은 산길에 시야도 잘 확보되지 않았다. 도솔봉 아래 닿자, 조그만 주차장에 차 두 대, 선객이 두 팀인 모양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산길, 조릿대가 피어 있고 기암괴석이 홀린 듯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가파른 오르막이다가 반대로 곤두박질치는 내리막길을 우리는 20여 분 걸었다. 좁다란 길을 저만치 황 선생이 먼저 가고, 나는 흐릿해지는 그의 모습을 뒤쫓아 부지런히 걸었다. 산길을 걸어보면 안다. 대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그렇게 20여 분쯤 걸어가자, 커다란 바위틈에 도솔암을 알리는 조그만 푯말이 나타났다.

▲ 도솔암 가는 길. 마침내 도솔암 이정표(오른쪽 바위틈)를 만났다. 가운데에 안개 너머에 도솔암이 있다.
▲ 바위틈 기왓장에 쓴 도솔암 이정표. 왼쪽으로 가면 도솔암이다.
▲ 지난 4월 초파일의 걸었던 연등이 도솔암으로 가는 내리막길에 걸려 있다.
▲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가 바위 위에 사람들이 올려놓은 돌이 놓여 있다.
▲ 도솔암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암자의 옆면이 보인다.

왼쪽 내리막으로 내려가면 ‘도솔암’이 나온다는 푯말은 기왓장에 하얀 페인트로 쓰여 있었다. 부근에서 인기척이 났고, 우리는 초파일에 쓴 연등 하나가 걸려 있는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오른쪽으로 오르는 돌계단 끝 자욱한 안개 저편에 도솔암인 듯한 전각의 옆면이 나타났다.

 

도솔암, ‘전망’ 대신 안개의 봉우리

 

도솔암이었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 절벽 꼭대기에 서 있는 1칸 암자의 모습은 옹색해야 마땅한데도 어쩐지 넉넉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전각 왼쪽 바위벽에 기대선 팽나무 고목도 마찬가지였다. 몸통과 가지에 푸른 이끼를 치고 있으면서도 나무는 바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검푸른 이파리를 풍성하게 달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마당과, 주변에 솟아오른 바위는 도솔암의 삼면을 감싸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가깝게 어란진(송지면 어란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과 마주 보는 섬 어불도와 그 너머로 진도가 뚜렷하게 보여야 하지만, 사방은 안갯속이다. 시간은 오후 1시, 안개가 아니더라도 해남에서도 최고로 친다는 ‘도솔암에서 바라보는 일몰’을 기다릴 수는 없다.

▲ 바위 사이로 도솔암의 옆면이 보인다.
▲ 도솔암의 뒤쪽. 이끼 낀 바위 위에 벋은 잎사귀가 푸르다.
▲ 도솔봉 바위 위에 세운 1칸 맞배지붕 암자인 도솔암. 왼쪽은 팽나무다.
▲ 도솔암 옆 바위에 기대어 가지를 편 팽나무. 푸른 이끼를 끼고 있으면서도 잎사귀들은 검푸렀다.

암자를 파인더에 집어넣으려고 몸을 잔뜩 뒤로 젖히고 사진 몇 장을 찍는데, 마당에 서 있는 늙수그레한 선객이 말을 건넸다. 절집을 순례하시는가 봐요. 대흥사와 미황사에서 뵈었는데 여기서도 뵙네요. 아, 그러세요. 우리는 그냥 좋은 경치를 찾아다니는 중입니다.

 

우리 나이뻘로 보이는 남자 하나에 여자가 셋인데 절집 순례를 다닌다고 했다. 그와 일행은 오늘 반나절에 세 번이나 만났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얘기했고, 우리는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불자도 아니면서 우린 도솔암에 올랐는데, 도솔암에서의 전망도 안개로 꽁꽁 막혀 있으니, 우리는 무엇을 구하려 도솔암에 온 걸까.

 

암자 밑에는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된, 어른 4~5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굴속 샘으로 일 년 내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고여 있다고 했다. 그렇다, 물이 없으면 도솔암에서 생활할 수 없을 터인데 자연은 그런 안배(按排)를 마련했던가.

 

아래로 내려가면 삼성각에 닿고 삼성각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도솔암을 올려다보면 도솔암의 기암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바로 발길을 돌렸다. 불자가 아니라도 부처님께 예를 표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절집을 다녀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 돌아서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 내려오는 길. '땅끝 천년숲 옛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정표.
▲ 안개가 조금 걷혔나 싶지만, 이내 안개는 자욱하게 나뭇가지 사이에서 머물곤 했다.
▲ 길가의 조릿대(산죽)
▲ 삼성각 쪽에서 내려다본 도솔암과 지상. 달마산 산록과 평야, 그리고 바다가 보인다. ⓒ ZUM허브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어느 순간인가 앞서가던 황 선생을 놓쳤다. 갈림길에서 한번 헷갈렸지만, 무사히 주차장에 닿았다. 글쎄, 도솔암에서 내려다본 ‘최고의 전망’도 삼대의 이바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니, 전망은 그만두더라도 도솔암까지 다녀온 거로 목적을 이룬 것으로 만족해도 충분할 거였다. 주차장의 전망대에서도 산 아래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렴풋한 안개를 헤치고 산을 내려오면서 우리의 남도 기행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아침을 거른 뱃속이 허전하여 우리는 해남 읍내의 밥집을 향해 길을 서둘렀다. 

 

 

2023. 7. 26. 낮달

 

[남도 기행] ①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암산(白巖山) 백양사(白羊寺)

[남도 기행] ②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무위사(無爲寺)

[남도 기행] ③ 강진 백운동 원림(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남도 기행] ④ 두륜산 대흥사(大興寺)(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남도 기행] ⑤ 달마산 미황사(美黃寺)(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남도 기행] ⑦ 해남윤씨 녹우당(綠雨堂) 일원(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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