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은 경북 영천 임고초등학교의 숲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오랜 벗 박(朴)의 과수원과 농막을 찾아가는 길에 영천시 임고면 소재지에 들른 게 2019년 7월 초순이다. 온 김에 가보자며 포은 정몽주(1337~1392)를 기리는 임고서원(臨皐書院)에 들렀었다. 해방 후에 복원한 서원이니 그만그만한 규모거니 했는데,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포은 정몽주는 성균관에서 목은 이색(1328~1396)에게 동문수학한 삼봉 정도전(1342~1398)과 함께 고려사회를 성리학적 이상으로 개혁해 민본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고려 말의 개혁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실을 개혁할 것인가, 아니면 역성혁명을 통해 새 왕조를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첨예하게 갈라졌다. [관련 글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포은은 임고 우항리 출신이다. 지명 ‘임고’는 기룡산(騎龍山) ‘언덕[고(皐)] 밑에 임(臨)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른 유래로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동쪽 언덕에 올라 느긋하게 읊조리고[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라는 시구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임고는 신라 경덕왕 때부터 ‘임고군(郡)’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시대에 ‘임고현(縣)’으로 바뀌어 공양왕 때 ‘영천부(府)’에 합병되었다. 그 후, 1415년(태종 15)에 ‘영천군’으로 바뀌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임고면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고서원을 들러본 뒤, 벗은 아주 볼 만한 숲이 있다면서 나를 임고 행정복지센터 옆에 있는 임고초등학교로 안내했다.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시골 학교의 운동장과 울타리에 들어찬 숲이 경이로웠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절로 탄성을 내뱉게 하는 거대한 나무들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운동장 가녘에 듬성듬성 심어진 버즘나무(플라타너스) 고목이 기선을 제압해 왔다. 버즘나무야 어디 가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지만, 운동장의 버즘나무 고목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해묵은 아름드리 고목이었다. 버즘나무도 자라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하는 이른바 ‘위용(威容)’을 보여주고 있었다.
워낙 거대한 모습이어서 그게 몇 그루나 되는지 세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 숲을 구성하고 있는 은행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히말라야삼나무(히말라야시다) 등 다른 나무들은 제대로 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단풍 드는 가을이라면 그들에게도 시선이 머물렀을 터이지만, 그땐 한여름이었다.
임고초등학교가 4년제 임고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것은 1924년이니, 이 시골 학교도 내년이면 백 살이 된다. 학교 숲은 금호강 본류인 자호천의 자갈땅에 세운 학교에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나무를 심으면서 가꾸어지기 시작했다. 그게 100년이 넘거나 다 돼가는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 은행나무, 히말라야삼나무 등 갖가지 나무로 이루어진 숲의 내력이다.
<디지털 영천문화대전>의 ‘임고초등학교’ 자료(2007년)에 따르면 학교 숲은 은행나무 2, 느티나무 2, 느릅나무 1, 히말라야삼나무 2그루에 버즘나무 7그루로 구성돼 있다. 자료에 따라 추산하면, 2023년 현재 느티나무는 114살, 버즘나무는 110살, 느릅나무와 히말라야삼나무는 98살, 제일 어린 은행나무도 80살에 이른다. 버즘나무는 가장 키가 큰 나무가 43m에 이르고, 가장 굵은 나무는 둘레가 5.4m에 이른다. 이쯤 되면 이들 앞에 엔간한 나무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지경이다.
지금은 운동장 가녘에 일곱 그루가 남았지만, 원래는 그보다 더 많은 나무가 자랐던 모양이다. 유튜브 동영상에 따르면 한여름, 운동장에 햇볕이 못 들어올 정도가 되자, 나무를 베어버린 학교장이 쫓겨나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숲이 100년 가까이 유지돼 온 것은 학교와 지역사회의 이바지가 있었을 것이다. [관련 동영상 : 아름다운 숲 대상, 임고초등학교 가을 단풍]
임고초교의 숲은 (사)생명의숲, (주)유한킴벌리, 산림청이 공동으로 우리 주변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 숲이 가진 경제, 환경, 문화자원을 알리고 숲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2000년부터 시행해 온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003년 대상을 받았다.
2023년 기준 학생 수 70명이 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시골 학교가 100년 가까이 가꾸어 온 숲은 대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전국 10개소의 숲에만 주어지는 상 가운데서도 맨 위의 대상이 주어진 것은 그 풍경뿐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자 합심해 온 학교와 지역사회에 대한 상찬이라고 말해도 무방한 이유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1936년에 개교했는데, 나는 그 학교를 1969년도에 졸업했다. 학교 울타리는 측백나무였고, 운동장 가녘으로 주로 그 그늘에서 아이들이 땅따먹기하던 수양버들이 심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미끄럼틀 옆에 버즘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다.
2016년에 학교는 인구가 밀집한 윗동네에 새 교사를 지어 이전했다. 학교 터에는 최신식 교사로 6학급 단설 유치원이 들어섰다. 옮겨간 학교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가끔 옛 학교 옆을 지나면서 나는 우정 모교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언제 다시 기회가 되면, 가을날 임고초등학교의 단풍을 구경하러 가고 싶다. 임고초교의 단풍을 찍은 유튜브 동영상을 들여다보면서, 4년 전의 기억과 느낌을 복기해 본다.
2023. 6. 17.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가을 본색(1) 익어가는 열매들 (37) | 2023.11.01 |
---|---|
순박한 민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 (0) | 2023.08.29 |
복사꽃의 계절, 곳곳이 연분홍 ‘도화원(桃花源)’이다 (5) | 2023.04.05 |
2022년 11월, 만추의 장미 (0) | 2022.11.14 |
2022년 가을 풍경(2) (4) | 2022.10.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