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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약속한 지 20년 만에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다

by 낮달2018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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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 지각 답사기] ②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리산 노고단의 돌탑. 옛날 신라의 화랑들이 쌓은 것이라고 한다.
▲ 노고단의 운해(雲海). 지리산은 들어와 보면 깊은 산이라는 데 동의하게 된다. ⓒ 구례군

지리산 산행

 

지리산은 젊을 때 두어 차례 올랐었다. 백무동에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코스로 처음 올랐고,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올라 거꾸로 장터목-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오른 게 두 번째다. 첫 등정 때는 남학교에 근무할 땐데, 고2 제자 두 명과 올랐고, 두 번째 동행은 교육 운동을 함께하던 동료들이었다.

 

▲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에 박힌 이정표

모두에 ‘두어 차례’라 쓴 것은 한 차례쯤 더 올랐다고 생각해서인데, 그 한 차례가 잘 기억나지 않는 거로 보아, 그게 내 생각에 그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지리산에 오른 것은 모두 30대 때다. 대체로 사람들은 대학 시절에 지리산에 오르곤 하는 듯한데, 내가 그러지 못한 것은 남들보다 몇 해 뒤져 대학에 들어간 데다가 바로 군대를 다녀오니 스물다섯이었고, 졸업은 스물아홉에야 할 수 있었던 탓이다. 거의 4~5년 후배들과 공부하던 시절엔 함께 산에 오르는 일도 없기도 했다.

 

아내가 저긴 차로 갈 수 있냐며 노고단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한 게 노고단이 등장하는 텔레비전 광고가 눈길을 끌던 1999년부터다. 나는 언제 한번 가보지, 뭐 하고 호기를 부렸지만, 이십 년이 속절없이 흐른 뒤에야 나는 노고단을 다시 떠올렸다.

 

지리산자락으로 지리산 단풍을 보자고 떠나왔는데, 피아골에 들르니 단풍은 아직 시간이 일렀다. 우리는 조금 실망했지만, 까짓것 주변 명승지나 돌지 뭐, 하고 구례로 들어왔고, 노고단이 지척이라는 걸 깨닫고 노고단 산행을 계획한 것이다.

 

 

가보자 해놓고 20년 만에 노고단에 오르다

 

여행 첫날 밤을 우리는 구례의 모텔에서 잤다. 이튿날(2019.11.1.)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우리는 내처 성삼재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성삼재는 남원 정령치와 함께 1985년 IBRD 차관 등 68억 원의 예산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지리산국립공원을 편하게 관광하기 위해서 정부가 직접 건설한 도로다.

▲ 성삼재 주차장. 국립공원을 지키는 모임은 이 주차장은 폐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도로들의 끝에 만든 주차장이 성삼재·정령치 주차장이다. 성삼재 주차장은 1100m 높이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허물고 1만1112㎥ 넓이(90×45 넓이 축구장의 2.7배 크기)로 건설됐으며 정령치 주차장은 1172m 높이에 4865㎥ 넓이로 건설됐다.

 

이 두 도로와 주차장은 놀랍게도 국립공원 중에서도 보전의 강도가 가장 높은 자연보존지구에 건설됐다. 남원·구례 시민단체 등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차량과 사람을 불러들여 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는 주차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리산 관통 도로의 일반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주민이 운영하는 친환경 전기버스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촉구해왔다.

▲ 노고단으로 가는 길. 11월 초인데 이미 단풍은 끝난 상태였다.
▲ 노고단 대피소.
▲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돌길.

1991년에 건설된 성삼재 주차장은 엄청난 크기였다. 9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주차장은 거의 차 있었다. 차를 댄 다음, 우리는 매점에서 부실한 아침 식사를 벌충하는 간식을 사 먹었다. 거기서 노고단까지는 4.7km, 1시간 이내로 갔다 올 수 있는 거리라고 해서 우리는 편안하게 출발했다.

 

중간에 아내가 힘들어했지만, 격려해 가며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노고단에 올랐다. 대피소를 지나서부터 시작된 급경사 돌길이 좀 힘이 들었을 뿐, 전체적으로 쉬운 산길이었다. 저만치 산마루에 노고단 돌탑이 보이는 지점에 노고단 고개가 길을 막고 있었다.

 

입산 시간 지정제로 통제하는 구간인데, 원칙적으로 노고단 정상 탐방은 예약제로 운영되므로 예약이 필수라 했다. 그러나 그걸 전혀 모르고 오른 우리를 담당 직원은 일단 통과시켜 주었다. 아직 날씨가 그만해서 느슨하게 운영하는가 보았다. 날씨가 험악해지는 한겨울에는 탐방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거였다.

▲ 저 멀리 노고단을 향해 이어진 데크 길. 완만한 경사의 이 길은 꽤 오래 걸어야 한다.
▲ 노고단으로 오르는 데크 길을 걷는 등산객들. 단풍은 이미 지고 있는 상태다.
▲ 노고단 근처에서 찍은 사진. 저 멀리 산이 중첩해 있다.
▲ 노고단. 노고단은 '노고', 즉 늙은 시어머니인 '마고할미'에게 제사 지내는 단이었다.

저만치 보이는데도 노고단 정상(1507m)까지의 거리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정상을 향해 휘돌아가는 데크 길에는 노고단에 오르는 갖가지 차림의 남녀노소 탐방객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바람이 거세졌지만, 아직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고단과 ‘마고 할미’

 

11시 45분께 돌탑 앞에 닿았다. 노고단은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련하던 장소로 이곳에 탑과 단을 세우고 천지신명과 지리산 산신인 노고 할머니에게 나라의 번영과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기원한 데서 유래되었다. ‘노고(老姑)’는 ‘늙은 시어머니’라는 뜻으로 민간에서 구비전승되어 온 거인 여신의 창세신화의 주인공인 마고다.

 

마고(麻姑)는 인류 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킨 여신으로, 원래 젊은 여성이었으나 오랜 전설 속의 여신이므로 ‘마고 할미’라 불리게 되었다. 노고단은 지리산 산신을 모시는 신앙지로 매년 제사를 올렸던 장소다. 이 제사는 천왕봉 정상에서 행해졌으나 고려 시대에 현 지점으로 옮겨지면서 노고단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2㎞ 지점에 있는 종석대(鍾石臺: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고 한다.

 

노고단은 해발 1,507m로 천왕봉(1,915m)·반야봉(1,732m)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主峯)이다. 노고단에서 내려다보는 운해(雲海), 봄의 철쭉,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단풍, 겨울 설화 등 노고단은 계절별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날씨가 맑지 못하고 먼지가 많았던가, 찍어온 사진은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십여 분을 머물다 우리는 하산했다. 아내는 어쨌든 20년 만에 자동차로 타고 지리산에 올라, 노고단까지 오른 걸 느꺼워했다. 성삼재 주차장에는 차로 가득 차지만, 거기 오른 사람들이 모두 노고단까지 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들은 노고단까지 다녀왔다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 노고단에서 내려다본 지상 풍경. 보이는 마을이 어디쯤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길. 평평한 산등성이에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지리산은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남 하동, 함양, 산청, 전남 구례, 전북의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의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여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수없이 많은 봉우리가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깊은 산’ 지리산, ‘성삼재 주차장 폐쇄’는 옳다

 

서로 문화가 다른 동과 서, 영남과 호남이 서로 만나는 지리산의 모습은 단순히 크다, 깊다, 넓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지리산은 ‘크’거나 ‘넓은 산’보다는 ‘깊은 산’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산이다. 지리산에 들면 지리산이 왜 깊은 산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지리산의 나무와 숲, 하늘과 계곡, 바위와 이내 따위로 느끼는 것이다.

 

성삼재 주차장으로 와서 승용차로 지리산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남원·구례 시민단체 등에서 펴는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다. 비록 따로 승용차로 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친환경 전기버스로 등산객을 실어 나르는 게 생태계 훼손을 줄이고 탄소중립에 이를 수 있는 최소한 노력이라는 데에도 동의한다. 불편할 테지만, 그게 우리 삶의 터전을 지속가능한 삶의 공간으로 유지하는 길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2022. 7.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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