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채식 한 달
현미 채식을 시작한 지 한 달이 가까워진다. 밥은 현미, 반찬은 채소류만으로 구성된 식탁은 좀 허무하긴 하다.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게 그리 힘이 들지는 않는다. 쌀밥은 물론이거니와 보리밥도 금하니 학교에도 현미밥을 싸서 다닌다. 밥만 들고 식당에 가서 그날 나온 푸성귀 등의 나물 반찬으로 식사를 한다.
엠비시에서 방영한 ‘목숨 걸고 편식하다’란 특집 프로그램으로 나는 ‘현미 채식’을 알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은 현미 채식으로 혈압약을 끊고 건강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현미 채식이 몸무게를 줄이고 혈압을 낮출 수 있다는 데 깊은 흥미를 느꼈다. 나는 같은 내용의 책도 샀다.
이 프로그램은 현미밥, 채소 반찬, 과일 섭취를 통해 뇌혈관병(중풍), 고혈압, 당뇨병, 파킨슨병, 치매 등을 치료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대구의 신경외과의 황성수 박사와 그의 환자들 이야기다. 의사의 신념은 확고했고, 의사를 믿은 환자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고혈압으로 6년째 약을 먹고 있는 58세의 남자가 현미 채식 1개월 반 만에 약을 끊었다는 사례 등이 주종이다.
현미 채식으로 체중 감량과 혈압을 잡는다?
나는 그리 귀가 여린 사람은 아니다. 나는 방송된 내용이나 책의 내용이 대체로 사실과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성공 사례 외에도 실패의 사례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게 모든 사람에게 두루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기꺼이 참여해 보고 싶은 치료법이었다.
혈압이 높아지긴 했지만 정작 내가 약을 먹게 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정상치를 웃도는 혈압이 찜찜했는데 늘 다니는 병원에서 혈압약 복용을 권한 것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혈압약을 먹다가 한 단계 위의 약으로 바꾼 게 지난해 가을이었다. 그리고 다시 약을 한 단계 높이자는 의사의 권유를 받게 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위기라고 느꼈다. 약을 먹는데도 여전히 혈압이 백사오십을 오르내린다면 약을 바꿀 게 아니라 다른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해 내내 마음만 먹고 끝내 실천하지 못한 체중 감량부터 시작하자. 그게 내 대책의 출발점이었고 그 수단으로 나는 현미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현미의 장점은 생각보다 매우 많다. 무엇보다 현미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대장의 운동 기능을 촉진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체중조절을 도와준다. 식이섬유는 또 혈당치를 낮추어 당뇨병을 예방하고, 대장암의 발생위험을 감소시키고 심근경색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현미는 벼의 껍질(왕겨)를 벗겨낸 쌀이다. 색이 거무스름해서 현미(玄米)라고 부른다. 백미는 현미를 다시 기계에 넣어 여러 번에 걸쳐 깎아낸 쌀이다. 그러나 영양이 풍부한 대신 현미밥은 백미로 지은 쌀밥보다 짓기도 어렵고 맛도 떨어진다. 현미는 단단한 쌀겨 층으로 싸여 있어서 오래 불려서 밥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미밥은 또 흰쌀밥에 비해 매우 거칠어서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소화가 쉽지 않다.
현미밥의 식이섬유, 콜레스테롤도 낮춘다
그래서 대개 현미밥은 멥쌀 현미에다 찹쌀현미를 반반 섞어서 짓는다. 훨씬 밥이 부드러워지고 맛도 낫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스를 쓰는 압력밥솥보다 훨씬 밥이 잘 된다며 전기압력밥솥으로 밥을 짓고 있다. 나는 특별히 현미밥의 맛이 없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글쎄, 좀 거칠긴 하지만 내 입은 거기 무난히 적응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선택한 채식은 모든 육류와 생선, 달걀, 우유까지 먹지 않는 형식이다. 육류나 생선은 아예 먹지 않으니 쉬운데, 집 밖에 나오면 고기나 달걀이 들어간 국이나 찌개를 피할 수 없는 때도 있다. 이런 때는 고기만 피해서 국물이나 건더기만을 건져 먹는다. 확실하게 피하는 게 맞긴 한데, 그 정도의 여지는 두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만큼 육식이나 생선이 그립진 않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고등어를 노릇노릇하게 굽는 걸 보면서 침을 삼키기도 하지만, 그냥 잘 버텨내고 있다. 술도 그동안 마시지 않았는데, 대신 커피는 매일 두어 잔씩 마신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우간다산 ‘킬리만자로의 선물’이다. 원래 커피도 피하라고 하지만, 그것마저 버리려니까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다.
그동안 혈압약은 빼먹지 않고 먹었다. 내 우선 목표는 일단 약을 바꾸지 않을 정도만 유지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체중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싶어서다. 82Kg을 넘나들던 몸무게가 80Kg대까지는 수월하게 빠졌다. 하긴 밥 한 끼만 조절해도 그건 가능한 일이니 거기다 의미를 두기는 어렵겠다.
75Kg, 가능한 목표일까
드디어 79Kg대까지 내려가게 된 게 지난주다. 79.8에서 80.2를 오르내리던 저울 눈금은 며칠 전 아침, 그예 78.9Kg대까지 내려갔다. 오늘 아침 식사 후에 재어도 마찬가지다. 글쎄, 아직은 믿을 수 없다. 이게 80Kg으로 오르는 건 시간문제니까. 내 목표는 75Kg까지 체중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쯤 되어야 안심할 수 있을 듯해서다.
집에서 쓰는 가정용 혈압계로는 일단 안정선에 드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기계는 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으니 안심하기는 이르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체중을 줄이는 데에 집중하려 한다. 또 황 박사의 주장이나 다른 사람들의 성공적인 임상 사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황 박사가 요구하는 규칙을 완벽하게 지킬 자신이 없고 또 그렇게 장기간 현미 채식을 할 수 있을까 하는데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현미 채식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나이롱환자인 나는 다음 주말 부산에서 차리는 장모님 생신상에 오를 생선회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술은 언제쯤 한번 가볍게도 마시게 될지도 은근히 재고 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것도 그리 쉽지 않다. 물론 그것은 내겐 아직 아픈 데가 따로 없다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긴 하다.
2010. 4. 3. 낮달
* 12년 전 이야기다. 이때 내려간 체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루묵이 되었다. 2022년 현재 나는 82kg을 상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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