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목감기를 앓다

by 낮달2018 2022. 4. 8.
728x90
SMALL

아닌 봄에 목감기를 앓다

▲그래도 봄은 난만히 무르익고 있다 . 교정의 벚꽃은 지난주에 이미 절정이었다 .

며칠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발단은 지난주에 공연히 몸에 알레르기가 일어나면서였다. 알레르기라면 칠팔 년 전인가 한번 술을 마시다가 목덜미와 등허리에 두드러기가 일어난 적이 있었을 뿐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식사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밤새 등을 긁어대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예전처럼 등허리에 두드러기가 일어나 있었다.

 

병원에 갔더니 심하다며 엉덩이 양쪽에다 주사를 놓아주었다.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젊은 의사는 가타부타 말을 안 하다가 ‘체질이 뭐……’ 하다가 얼버무리고 말았다. 약은 두 번인가 먹었는데 저녁이 되자, 감쪽같이 나았다.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간간이 목이 뜨끔했다. 아, 감기가 오는가 해서 나는 잠깐 긴장했다. 지난겨울 내내 한 번도 앓지 않았던 감기를 아닌 4월에 앓게 되는구나, 좀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 잘 넘기면 되려니 여겼다. 전에 먹던 약을 찾아 먹고 나서 기다렸는데 토요일엔 다소 숙지는 듯했다.

 

병원을 가나 마나, 저울질하다가 토요일을 꼴깍 넘겨버렸다. 일요일은 방송고 등교일. 출근하니 본격적으로 목이 잠겨 왔다. 응급약 상자에서 알약 두 개를 찾아 먹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아뿔싸, 목이 잠겨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본교 수업이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쉴 수도 있겠지만,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방송고 학생들에게 쉬자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세 시간 수업을 간신히 했다.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자리에 들었다. 몸이 개운하지 않으니, 눕고 싶었고 눕자마자 이내 잠이 쏟아졌다. 깨다 자기를 반복하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은 좀 풀린 듯했다. 이제는 미룰 수 없다. 오늘은 병원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 금오산 봉우리에 내린 4 월의 눈 . 산 아래엔 비가 내려 꽃이 떨어졌다 .

오전에 비는 시간에 병원에 다녀왔다. 사흘분 약을 지어오는데 한 봉지에 무려 약이 대여섯 알씩 들어 있다. 어쨌든 이 약을 먹으면 증세는 가라앉을 것이다. 약 덕분이라기보다는 이제 증세가 숙질 때도 된 것 아닌가. 그걸 알면서도 굳이 병원을 다녀온 것은 혹시나 해서다. 공연히 시기를 놓쳐서 병을 더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며칠간 앓긴 했지만, ‘자리보전’하지는 않았다. 어지간히 아파도 앓아눕는 일이 없는 편이니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잘 모른다. 그러나 몸이 개운찮으니 자연 마음도 차분해지고 매사에 신중해진다. 평상시 같으면 무심코 흘려버릴 일도 눈여겨보게 되고,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앓으면 영혼을 만난다’라는 말은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몹시 앓게 되면 몸도 마음도 투명해지는 듯한 일종의 착각에 빠진 듯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희로애락을 넘는 지극한 평정심을 선사한다. 사랑도 미움도 마치 한갓진 바람처럼 여겨지게 하는 심사에 푹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며칠 동안 남모르게 앓았는데 그 새 내린 비로 교정을 화사하게 꾸미고 있던 벚꽃이 마구 떨어져 버렸다. 풍성한 꽃이 보는 이마저 푸근하게 만들어주던 꽃이 떨어지고 나니, 어느새 파랗게 올라오는 잎으로 벚나무는 새로운 빛깔로 몸을 단장하고 있다.

 

그뿐인가. 문득 올려다본 멀리 금오산 봉우리가 그저께 내린 눈으로 이마를 환하게 드러내고 있다. 4월의 눈이다. 비 온 뒤의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다시 사람들에게 이 계절을 돌이켜보게 하는 것이다. 내일이면 목이 조금 나아질 거라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오후 2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2013. 4. 8. 낮달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