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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 ‘사자성어(四字成語)’ 생각

by 낮달2018 202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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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四字成語)’ 

1. 전미개오(轉迷開悟)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617명을 대상으로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설문한 결과 27.5%인 170명이 ‘전미개오(轉迷開悟)’를 꼽았단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성어와는 꽤 거리가 있는 이 사자성어는 ‘미망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뜻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다음은 교수들이 새긴 ‘전미개오’의 의미.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자는 것이다. (……) 2013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한 해를 열어가자.”(문성훈 서울여대 교수)

 

“政은 正이다. 정치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원래대로 회복시킨다는 의미다. (……) 가짜와 거짓이 횡행했던 2013년 미망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어 진짜와 진실이 승리하는 한 해를 열어가야 한다.” (박재우 한국외대 교수)

 

“우리나라와 사회가 이처럼 어지러운 것은 거짓된 세력 때문만은 아니다. (……) 많은 국민들의 헛된 욕망을 그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망에서 깨어나 현재를 바로 봐야 한다.”(도상호 계명대 교수)

 

“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와 성찰의 힘이 하나의 기둥이 될 때 실질적으로 작동되고, 백성을 종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를 깨닫게 할 수 있다. (……) 국민과 지도자의 대오각성이야말로 현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상생과 번영의 길로 가게 할 수 있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

 

사자성어에서 말하고 있는 ‘미망’이란 무엇인가. 미망은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런 상태.”를 이른다. 교수들은 2013년, 한 해 동안 지속된 온갖 정치 사회적 혼돈과 갈등의 원인을 ‘미망’에서 찾는다.

 

물론 그 일차적 책임은 정치에 있다. 교수들은 ‘정치’와 ‘지도자’와 ‘거짓된 세력’의 미망을 먼저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난 한 해를 달군 ‘거짓’과 ‘속임’이 무릇 얼마였던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말하고 ‘백성을 종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를 이르는 까닭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지난해 대선에서의 승리를 ‘승자독식’로 오인하고 권력의 절대성에 대한 어떠한 이의 제기도 용납할 수 없다는 집권 여당의 인식도, 그들이 내세우는 ‘법’과 ‘원칙’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의제를 규정하는 잣대라고 믿는 독선도 한갓 ‘미망’일 뿐이다.

 

흔히들 도도한 민심은 ‘물’로 비유되기도 한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는 <순자(筍子)>의 한 구절은 권력이 빠지기 쉬운 미망을 서늘하게 깨우쳐 주는 이야기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끝나자마자, 그 뒤처리를 두고 난무하는 ‘법과 원칙’도, 정부를 믿지 못하는 노동자와 국민을 배제하거나 ‘용납하거나’ ‘묵과할 수 없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도 역시 독선에서 비롯한 미망임에 틀림이 없다. 예의 미망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오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한편으로 교수들은 ‘국민’들에게도 ‘헛된 욕망’으로 말미암은 미망이 있다고 말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음으로서 자신의 정치 사회적 믿음과 도그마의 미망에 갇힌 이들은 또 얼마인가 말이다. 그것이 교수들이 지도자와 함께 국민의 ‘대오각성’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2. 격탁양청(激濁揚淸)

 

전미개오에 이어 23.8%(147명)의 선택을 받은 말이 ‘격탁양청(激濁揚淸)’이다. <당서(唐書)> ‘왕규전’에 있는 말로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한다.’는 뜻이다. 전미개오가 다소 에둘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넌지시 지적한 것이라면 격탁양청은 꽤 직설적으로 치받는 말이다.

 

‘흐린 물’과 ‘맑은 물’의 비유를 굳이 이를 일은 없겠다. 문제는 그 ‘탁청’을 정작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을 뿐이니.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이 칼럼에서 지적한 ‘두 개의 국민’이란 이를 이른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기득권 체제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선이 사회의 모든 층위에서 국가를 ‘두 개의 국민’으로 분할하고 있다. 그리고 두 진영 간에는 공공연하게 또는 잠재적 형태로 목숨을 건 생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 우리의 비극은 정부가 조정자의 역할을 버리고 기득권층의 집행기구로 전락한 데 있다. 또 이런 말로 한 해를 마감하는 것이 가슴에 쓰리다.”

 

      -염무웅 칼럼 “두 개의 국민을 위한 하나의 원칙”[기사 바로가기] 중에서

 

3. 여민동락(與民同樂)

 

2위와 한 표 차이인 23.6%(146명)의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는 ‘여민동락’이다.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서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 하지 못한다면 또한 잘못이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앞의 두 사자성어에 비기면 여민동락은 ‘희망’이 강조된 말이다. 앞의 두 사자성어가 현실에 대한 비판과 교정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는 순전히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얘기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같이 할 즐거움을 찾는 일도, 그것을 같이 즐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백성과 더불어 같이 즐긴다.”

 

이는 <서경(書經)>의 민본사상과 천명사상을 기초로, 맹자가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주창한 애민, 중민의식의 구체적 방법론이다. 맹자는 제 선왕에게 ‘음악을 즐기든지 화려한 정원을 즐기든지, 또는 사냥을 즐기든지 중요한 것은 백성과 함께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심지어 ‘재물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까지도 백성과 함께하라’고 권하였다.

 

‘여민동락’의 개념은 후대 많은 유학자의 경세 이론을 통해 구체화하였으며, 궁중 아악(雅樂)으로 작곡된 ‘여민락(與民樂)도 같은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민락은 백성을 끔찍이 사랑했던 세종 임금이 온 백성과 함께 즐기자고 만든 음악이었다는 사실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새해는 갑오년, 1894년 갑오농민전쟁과 이른바 갑오개혁(경장)이 이루어진 해다. 박 대통령은 2014년 새해를 언급하며 ‘120년 전 갑오경장은 성공하지 못했다’라면서 ‘내년에는 성공하는 경장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당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120년 전에는 경장만이 아니라 ‘사람이 하늘’이라며 봉기한 농민들도 있었음을 기억해 둘 일이다.

 

 

2013. 12.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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