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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원숭이해, 갑자(甲子) 돌아오다

by 낮달2018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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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 혹은 환갑을 맞았다

▲ 청자 모자 원숭이 모양 연적(국보)

2016년 새해는 병신(丙申)년이다. 부정적인 뜻의 동음이의어가 있는데 거기에 ‘년’까지 부치니 여성을 조롱할 때 쓰는 말로 둔갑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병(丙)’은 천간(天干)의 셋째를, ‘신(申)’은 십이지 가운데 아홉 번째 동물인 잔나비를 이른다. 그러니 오는 2016년은 잔나비 띠의 해다.

 

2016 병신년, 원숭이의 해

 

옛말로는 ‘납’이라 했고, 우리는 어릴 때 ‘잔나비’(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방언으로 처리)라고 했지만, 요즘은 보통 ‘원숭이’라고 부른다. 원숭이는 포유류 영장목 중에서 사람을 제외한 동물을 일컫는 일반적 호칭이다. 바나나를 좋아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원숭이는 잡식성이다.

 

십이지(十二支) 중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 동물로 만능 재주꾼이다. 특히 자식과 부부지간의 극진한 사랑은 사람 뺨칠 정도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불교를 믿는 몇몇 민족을 제하고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The emblem of ugliness and trickery)로 꺼리면서도 원숭이를 사악한 기운[사기(邪氣)]을 물리칠 수 있는 존재로 믿는다.

 

재수 없는 동물, 혹은 꾀 많은 재주꾼

 

특히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건강, 성공, 수호(보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숭이가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꼽히면서도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되는 것은 사람을 너무 많이 닮은 데다가 간사스럽게 사람 흉내를 잘 내서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 대신 ‘잔나비 띠’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같은 원숭이에 대한 부정적 속설 때문이다.

▲ 다윈을 조롱한 합성그림

우리 민족의 구비전승에서 원숭이는 대체로 꾀 많고, 재주 있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등장한다. 또 도자기나 회화에서는 모성애의 표상으로, <서유기(西遊記)>의 내용을 따라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원숭이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동물이지만, 여러 민속과 전통 미술품에 나타난다. 청자, 청화백자, 백자 등으로 만든 도장의 꼭지, 작은 항아리, 연적 등에서는 자연에서의 원숭이의 모습과 모자 유대의 행태를 아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실존하는 동물 이상으로 그 형태나 행태 혹은 생태 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하여 원숭이의 상징성, 암시성 등을 부여했다는 걸 시사한다. 원숭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방위신 또는 시간신으로 나타난다.

한편 서양에서도 원숭이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동물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면서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와 비슷한 동물이었다는 다윈의 주장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였다는 이 이론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우월의식을 간단히 뒤엎어버리는 파격적 주장이기 때문이었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원숭이 몸에 다윈의 얼굴을 합성한 삽화를 그려 그를 조롱했다. 그 뒤, 원숭이라는 말은 ‘아직 진화가 덜 된 사람’이라는 경멸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털이 많거나 소란스러우면서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미개하고 문명화되지 않은 사회의 사람 등이 원숭이로 비유된다.

 

사람을 인종적으로 비하할 때도 원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주로 서양인들이 유색인종을 비하, 멸시할 때 쓰는 말이다. 한편 서양 사람들은 모방의 천재라는 일본인들을 가리켜 원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십이지신상 가운데 원숭이 상. 김유신 묘 .

원숭이해는 60갑자 가운데 임신(壬申), 갑신(甲申), 병신(丙申), 무신(戊申), 경신(庚申) 등 다섯 번으로,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 신이다.

애당초 십이지(支)는 중국의 율력(律曆)에 사용하거나 순서를 나타내는 12가지 글자였다. 그러나 뒤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인도에서 들어온 12수의 영향을 받아 각 지지(地支)에 동물을 붙이면서 오늘의 12띠가 생긴 것이다.

 

다시 병신년을 맞는 사람들

▲ 병신년인 1536년에 태어난 율곡 이이(왼쪽)와 송강 정철

각 지지에 대응시켜 놓은 열두 동물의 상이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북국 시대에 능묘의 호석에 12지신상을 조각하게 되었는데, 경주의 괘릉이나 김유신 묘에 있는 12지신상을 최초로 본다.

 

띠는 열두 가지니 12년 만에 돌아오지만 갑자는 60년이 지나야 돌아온다.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 바로 ‘환갑(還甲)’이나 ‘회갑(回甲)’이다. 달리 주갑(周甲), 화갑(華甲), 환력(還曆)으로 부르기도 한다. 만 나이를 쓰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회갑이 예순한 살이다.

 

새해가 병신년이니 60년 전은 1956년이다. 병신년에 태어난 이들은 새해에 회갑을 맞게 되는 것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전 국회의원 노회찬, 서울시장 박원순, 언론인 손석희 등이 병신생(丙申生)이다. 그해 9월에 나도 부모님의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병신년에 태어난 역사 인물로는 1536년의 율곡 이이와 송강 정철이 있다.

 

936년 병신년에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고, 1776년에는 정조대왕이 즉위했다. 구한말이었던 1896년에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어가를 옮긴 ‘아관파천’이 있었다. 1956년에는 ‘어머니날’(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뀜)이 제정되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인 ‘대한방송’이 개국했다.

▲ 1956년에 태어난 사람들. 이들은 내년에 회갑을 맞는다.

병신년을 다시 맞는, 예순한 살이 되는 기분은 특별하지는 않다. 예순이 되던 때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걸 무심히 받아들일 뿐이다. 회갑을 맞는다는 것보다는 2월 말을 끝으로 교단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이 훨씬 무겁다. 자신의 선택이긴 하지만, 어수선한 마음을 가누기 어려워서다.

 

새벽에 일어나 불을 밝히고 달력의 마지막 장을 무심히 바라본다.

 

 

2015. 12.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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