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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 ‘낙동강 살리기’를 말하다

by 낮달2018 202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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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4대강 정비사업’ 첫 삽

▲일인시위에 나선 시민단체 회원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안동에서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라는 비난을 받는 ‘4대강 정비사업’이 29일 첫 삽을 떴다.”라고 <오마이뉴스>는 전한다. 정작 현지에서 사는 내가 그걸 전언의 형식으로 쓰는 것은 그 현장을 가 보지 못한 까닭이다.

 

‘낙동강 안동지구 생태하천 조성사업 착공식’이 열린 11시에 나는 수업 중이었다. 글쎄, 시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둔치 옆으로 낸 육사로에 15억을 들여서 세운 대형 LED 홍보전광판은 “낙동강 살리기 안동에서 첫삽!”을 경축하고 있었지만, 안동시민들 모두가 그렇게 흥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12월 24일, 저녁에 나는 회식 자리에 가느라고 이번 공사 구간에 포함된 영가대교를 어떤 음식점의 승합차를 타고 건넜다. 누가 물은 것도 아니었지만, 운전하는 음식점 주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글쎄, 공사를 벌이면 좋아하는 사람이야 있겠지만, 사실……, 애먼 돈 아니겠니껴……. 멀쩡하게 잘 다듬어 놓은 곳인데 그걸 새로 파 디비겠다(뒤집다)는 거니, 참…….”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는데, 그건 이재오 기념 도로라면서요?”

 

내가 받았고, 잠깐 우리는 농을 나누며 웃고 말았다.

30일, 착공식이 열리기 직전에 열린 운하 백지화 국민행동의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하고 일인시위를 벌이려다가 경찰의 제지에 막혔던 친구를 만났다. 다음은 그 친구의 전언인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설마 일인시위까지 막겠냐, 했더니 정말, 이놈들이 뺑 둘러싸서 차단해 버리니 대책이 없데.”

“식이 끝나고, 식장에 참석한 할매들이 저마다 기념품을 하나씩 받아들고 나오다가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지. 할매들 말씀이 정곡을 찌르더구먼.”

 

“할매들이 뭐랬는지 알아? 돈이 썩어 자빠진 기라. 멀쩡한 데를 왜 다시 파 디비서 우짠단 말이고. 100억이 어디 아(이) 이름이가? 지금도 강가에 잘 만들어 놓은 산책길이 있는데 산책로는 뭐고, 자전거도로, 체육공원은 또 뭐고? 지금 있는 것만 해도 배터지겠구마…….”

 

“아이고, 할매들 하는 말씀이 내버릴 게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할매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상식적 사고가 가능한 이라면 이 사업을 곱게 볼 사람은 없는 거 아닌가…….”

 

탈춤공원 앞의 홍보전광판은 계속해서 사업을 경축하고 있었지만, 안동 사람들은 정작 심드렁해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안동과 예천의 접경지대에 옮겨온다는 경북도청 소식만큼의 감동(?)도 없는 듯하다. 물론, 이건 내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접촉한 사람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들은 반응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 그와 아주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공사 개요부터 그렇다. 안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의 안동대교와 안동댐 바로 아래의 법흥교 사이 총연장 4.07㎞ 구간에 모두 409억 원(2011년까지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안동 사람들에게는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 강변 둔치의 잘 가꾸어진 잔디 구장
▲ 인라인스케이트 전용 경기장
▲ 강변도로를 따라 난 산책길
▲ 게이트볼장에서 남녀 노인들이 경기하고 있다.

다음은 경상북도청이 제시한 그림이다.

 

“이곳의 생태하천 조성공사가 완료되는 2011년 말에는 하천에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노닐고 각종 식물이 자라는 자연식생 군락지가 형성되고 낙동강 둔치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실개천을 따라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쉼터로 탈바꿈하게 된다.”

 

‘하천에 물고기가 자유롭게 노니는’ 그림이나 ‘각종 식물이 자라는 자연식생 군락지’는 현재의 그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지금도 낙동강에는 고기들이 노닐고 있고, 각종 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니까. 양안의 둔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잘 개발되어 시민들의 산책로 겸 조깅 코스, 축구장과 몇 개의 구기 경기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업 시행자인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정비 방향에 대해 “홍수와 가뭄에 안전하면서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고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 마련”이라고 밝혔다는데, ‘홍수와 가뭄’, ‘열린 공간’은 마치 사족 같다. 공사 구간 바로 위에 안동댐이 그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구간에 홍수와 가뭄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첫 삽을 뜬 이 공사는 이미 개발이 끝난 하천과 둔치를 새로 파 뒤집어서 새로운 공사 수요를 창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행사에 참석했던 안노인들이 지적한 것은 바로 그런 점이고, 내가 만난 대부분의 안동 사람들의 심드렁한 반응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인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중장비를 투입해서 하는 공사이니 이 사업이 취로사업처럼 잡역부를 고용할 일도 없을 듯하다. 다음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가 말한 것처럼 젊은이들이 중장비학원에 등록해야 하는 코미디가 연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못 씁쓸하다. 눈을 번연히 뜨고 정부의 정책을 구경만 해야 하는 시민의 무력감은 공사 구간 어디인들 다르지 않을 터이다.

 

 

2009. 1.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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