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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추가-‘마실’ 가는 길의 ‘푸르른 잎새’가 ‘이쁘구나’

by 낮달2018 202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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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2015년 표준어 추가 결과’ 발표

▲ '잎새'나 '마실'(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도 마침내 표준어로 추가되었다.

오 헨리(O. Henry)의 유명한 단편 ‘마지막 잎새’는 교과서에는 ‘마지막 한 잎’으로 바뀌어 실린다. 왜냐하면 문학적 표현으로 널리 쓰이긴 하지만 ‘잎새’는 ‘비표준어’이기 때문이다. 문서편집기 ‘아래아 한글’에서 ‘잎새’를 입력하면 아래에 붉은 줄이 그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오 헨리, 혹은 배호의 ‘마지막 잎새’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인 표준어는 필요하긴 할 터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폭이 지나치게 협소하지 않나 싶을 때가 많다. 수십 년 동안 언중들이 써 온 ‘멍게’는 소수만 아는 ‘우렁쉥이’에 밀려 1988년까지 표준어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언중들의 언어생활에서 통용되는 실제 언어와 규범과의 틈을 좁히고자 하는 게 ‘복수 표준어’다. 덕분에 ‘날개’와 ‘나래’가, ‘가뭄’과 ‘가물’이, ‘귀고리’와 ‘귀걸이’가 같이 쓰인다. ‘소고기’와 ‘쇠고기’, ‘헛갈리다’와 ‘헷갈리다’가 모두 쓰일 수 있는 것도 이들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국민이 실생활에서 쓰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잎새, 푸르르다, 이쁘다, -고프다’ 등 11항목의 어휘와 활용형을 표준어 또는 표준형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2015년 표준어 추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이제 오 헨리의 단편을 굳이 ‘마지막 한 잎’이라고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국립국어원 ‘2015년 표준어 추가’(11항목)

 

이번에 새로 표준어로 인정한 항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현재 표준어와 같은 뜻으로 널리 쓰이는 말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이다. 그동안 ‘예쁘다’ 대신 자주 쓰인 비표준어 ‘이쁘다’도 이제 표준어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 낱말은 이밖에 ‘마실’, ‘찰지다’, ‘-고프다’ 등 모두 4개다.

 

① 같은 뜻의 복수 표준어(‘마실’ 등 4개)

 

이 가운데 ‘마실’은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과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두 가지 뜻 중에서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뜻에 대해서만 표준어로 인정한다. 경상도 등에서 ‘동네’를 가리키는 ‘마실’은 여전히 비표준어라는 얘기다.

 

‘반죽이나 밥, 떡 따위가 끈기가 많다’라고 할 때 쓰는 ‘차지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찰지다’는 아예 ‘사전에서 “‘차지다’의 원말”로 풀이’하는 걸로 정했다. ‘보고 싶다’나 ‘가고 싶다’ 등을 대신해 쓰는 ‘보고프다’, ‘가고프다’도 사전에서 <‘-고 싶다’가 줄어든 말로 풀이함>으로써 표준어의 지위를 얻었다.

 

② 별도 표준어(‘잎새’ 등 5개)

 

둘째, 현재 표준어와는 뜻이나 어감이 달라 이를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이다. 그동안 ‘푸르르다’는 비표준어여서 ‘푸르다’로 고쳐 써야 했다. 그러나 ‘푸르다’와는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푸르르다’를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하였다. 이처럼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된 말은 ‘꼬리연, 의론(議論), 이크, 잎새’ 등 모두 5개다.

 

‘푸르르다’는 푸르다’를 강조할 때 이르는 말로 서정주의 시 ‘푸르런 날’처럼 주로 문학적 표현에서 자주 쓰인다. 국립국어원은 이 낱말을 ‘으불규칙활용’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학교 문법에서는 ‘으 탈락 규칙활용’으로 본다. 나무의 잎사귀를 이르는 ‘잎새’도 문학적 표현에 많이 쓰이는 낱말이다.

 

지금껏 ‘꼬리가 긴 연’은 ‘가오리연’만을 표준어로 인정했으나 이제 ‘긴 꼬리를 단 연’은 ‘꼬리연’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일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음’을 이르는 ‘의논(議論)’과 글자는 같으면서 발음을 달리하는 ‘의론(議論)’도 별도 표준어의 지위를 얻었다. ‘의론’은 ‘어떤 사안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제기함. 또는 그런 의견’의 뜻이다.

 

그 밖에도 ‘당황하거나 놀랐을 때 내는 소리’로 표준어 ‘이키’보다 큰 느낌을 주는 ‘이크’를 새로 표준어로 인정했다. 글쎄, 이 글을 쓰면서야 ‘이키’라는 감탄사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기실 사전은 우리의 언어생활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③ 비표준 활용형을 표준형으로(‘말아/노랗네’ 등 2개)

 

셋째는 비표준적인 것으로 다루어 왔던 활용형을 표준형으로 인정한 경우이다. 그동안 ‘말다’를 명령형으로 쓸 때는 ‘ㄹ’을 탈락시켜 ‘(잊지) 마/마라’와 같이 써야 했으나, 현실에서의 쓰임을 반영하여 ‘(잊지) 말아/말아라’와 같이 ‘ㄹ’을 탈락시키지 않고 쓰는 것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 ‘노랗다, 동그랗다, 조그맣다’ 등과 같은 ㅎ불규칙용언이 종결어미 ‘-네’와 결합할 때는 ‘ㅎ’을 탈락시켜 ‘노라네/동그라네/조그마네’와 같이 써야 했다(이것 역시 사람들에겐 생소한 규칙이다). 그러나 불규칙활용의 체계성과 현실의 쓰임을 반영하여 ‘노랗네/동그랗네/조그맣네’와 같이 ‘ㅎ’을 탈락시키지 않고 쓰는 것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복수의 표준형으로 인정된 말은 ‘말아, 말아라, 말아요’처럼 ‘말다’에 ‘-아(라)’가 결합할 때 ‘ㄹ’이 탈락하지 않는 활용형과 ‘노랗네, 동그랗네, 조그맣네’처럼 ㅎ불규칙용언에 어미 ‘-네’가 결합할 때 ‘ㅎ’이 탈락하지 않는 활용형 등 모두 2개다.

 

국립국어원이 매번 밝혀 왔듯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낸 이후 언어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단어들을 검토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 2011년에 ‘짜장면, 맨날, 눈꼬리’ 등 39항목을 추가[관련 기사 : 이제, ‘짜장면은 짜장면이다]했고, 2014년에는 ‘삐지다, 놀잇감, 속앓이, 딴지’ 등 13항목을 표준어로 추가[관련 기사 : 이제 허접하다개기다도 쓸 수 있다]한 바 있었다.

 

국어원이 어문 규범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보완하기 위한 어휘사용 실태조사의 결과를 종합 검토하여 표준어로 추가하는 활동은 규범과 무관하게 ‘살아 있는 말’에 규범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 활동이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이루어질 때, 규범에 밀려 소외된 말이 생명을 얻게 되어 우리말의 외연을 한층 더 넓히게 될 것이다.

 

 

2015. 12.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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