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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by 낮달2018 2021.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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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 짜장면은 모든 국민이 두루 좋아하는 별식이 되었다.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나는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시인 안도현이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짜장면”의 후기에 쓴 글이다. 그렇다.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그런데 이 재미없는 동어반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짜장면의 표준어가 ‘자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자장면’은 일부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나 쓰던 말로 정작 다수 언중(言衆)과는 인연이 없는 죽은 낱말이었다.

 

그런데 그 짜장면이 다시 표준말의 지위를 얻었다. 국립국어원(원장 권재일)이 국민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짜장면, 먹거리’ 등 39개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표준국어대사전>(stdweb2.korean.go.kr)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로써 규범과 실제 언어 사용의 차이로 인해 생겼던 언어생활의 불편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표준어로 인정한 항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재 표준어로 규정된 말 이외에 같은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 있어 이를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이다. 형용사 ‘간지럽다’의 사동사는 당연히 ‘간지럽히다’로 쓸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비표준어였다. 어문 규범은 ‘간질이다’만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이처럼 복수 표준어가 된 말은 ‘남사스럽다(남우세스럽다), 등물(목물), 맨날(만날), 묫자리(묏자리), 복숭아뼈(복사뼈), 세간살이(세간), 쌉싸름하다(쌉싸래하다), 토란대(고운대), 허접쓰레기(허섭스레기), 흙담(토담)’ 등 11개다. 실제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이다. 여름철에 엎드린 등에다 물을 부어주는 것을 ‘등물’이라고 하지 ‘목물’이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이번 조치를 그게 바로잡힌 셈이다.

 

둘째, 현재 표준어로 규정된 말과는 뜻이나 어감 차이가 있어 이를 인정하여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이다. ‘개발새발(괴발개발), 나래(날개), 내음(냄새)’ 등인데,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뜻의 차이는 그럴듯하기도 하고 때론 머리를 갸우뚱하게도 한다.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 ‘개발새발’은 ‘개의 발과 새의 발’이라는 뜻이 그렇고 ‘나래’는 ‘날개’의 문학적 표현이며, ‘내음’은 향기롭거나 나쁘지 않은 냄새로 제한된다는 게 그렇다. ‘오손도손’(오순도순)처럼 모음조화가 원래의 형태를 되찾게 된 사례도 있다. 이 조치는 아래아 한글에서 글을 쓸 때, ‘끄적거리다(끼적거리다), 두리뭉실하다(두루뭉술하다)’처럼 써도 요령부득의 ‘빨간 줄’이 붙지 않게 된다는 뜻이 되겠다.

 

셋째, 표준어로 인정된 표기와 다른 표기 형태도 많이 쓰여서 두 가지 표기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다. 이는 가장 크고 넓은 범위에서 그 ‘혜택(?)’이 돌아갈 ‘짜장면’이 빛을 보게 된 경우다. 그동안 ‘자장면’, ‘태껸’, ‘품세’만을 표준어로 인정해 왔으나 이와 달리 널리 쓰이고 있던 ’짜장면‘, ’택견‘, ’품새‘도 이번에 인정한 것이다. 이들도 두 표기 형태를 모두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것으로 그 정신은 첫째의 경우와 같다.

 

원래 말이 먼저고 그 규범이 뒤이다. 그러나 말의 변화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어서 때론 규범이 무분별하게 말의 변화를 일정하게 규제하기도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규범이란 것도 늘 지선 지고한 것만은 아니어서 다수 언중의 언어생활이 그 규범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짜장면’이, ‘허접쓰레기’가, 또는 ‘개발새발’이 각각 표준어를 지위를 얻은 것은 그 좋은 실례라고 할 것이다.

 

 

2011. 8.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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