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운 낙엽 산길은 위험하다
출퇴근을 산길로 다닌 지 근 한 달이 다 돼 간다. 북봉산과 이어지는 다봉산 줄기인데 따로 부르는 이름이 없어서 내가 붙인 이름은 ‘도량산길’이다. 이 산자락은 도량1동과 도량2동을 길쭉하게 가르면서 벋어 있다. 필요가 길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군데군데 산 넘어가는 길을 만들었고, 맞추어 시에서는 산자락 중간쯤에 있는 횡단 길에 데크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처음엔 그 데크 계단 길을 이용했지만 나는 조금씩 코스를 바꿔갔다. 등성이를 절개하여 새 길을 내 에코 다리를 놓은 곳으로부터 이 산자락의 끝까지 오는, 말하자면 종주(縱走)를 마친 게 지난 15일쯤이다. 그날 만보기는 11,792보를 찍었다.
아침마다 산길로 접어들면서 설레는 느낌이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마다 그 산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 산길 걷기가 일종의 ‘중독성’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다. 산등성이를 따라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무념무상, 나는 일종의 해방감에 젖는다.
걷는 것은 어차피 혼자서 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걷는 것과 호젓한 산길을 혼자서 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주변에 나무와 숲, 바람이 빚어내는 적막이 있을 뿐, 인적 드문 산길을 걸으면서 내 숨소리와 산의 호흡이 어우러진다고 느끼는 어떤 순간의 느낌은 일종의 엑스터시다.
호젓한 ‘산길 걷기’, 해방 혹은 ‘엑스터시’
산등성이를 따라서 종주하는 이 출근길에서 목적지로 내려가는 길은 모두 셋이다. 첫 번째 길은 꽤 널찍해서 차가 다닐 수 있는 대신 에스(S)자로 휜 흙길인데 이 길은 데크 계단 길과 가까운 경찰지구대 뒤편으로 빠진다. 편하게 내려갈 수 있는 대신 이 길은 뭐라 할까 재미가 적다.
두 번째 길은 이정표에 도량동 주민센터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적혀 있으나, 정작 내려가면 오래된 저층의 주공 아파트 진입로가 나오는 길이다. 좁은데다 꽤 가파른 비탈길인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은 낙엽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길은 이 산자락 끝에서 동네로 내려가는 길인데 역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다. 산 들머리에 몇 기의 봉분이 있고 비탈길의 물매는 밋밋하나 좁다란 길은 참나무 계통의 낙엽에 덮여 있다. 낙엽은 미끄러운데다 이 나뭇잎에 덮인 길바닥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으므로 디딜 때마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마지막 길을 즐겨 걷는다. 무엇보다 내려가면 불과 1~2분 안에 학교에 닿으니 따로 찻길을 걷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리막을 내려올 때마다 긴장하여 주의를 거듭한 덕분에 한 번도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언젠가 짬을 내어 집에 있는 갈퀴를 가져와서 길을 덮고 있는 낙엽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한 지 며칠이 지났다.
집에는 예초기와 함께 벌초 때마다 요긴하게 쓰는 갈퀴가 하나 있다. 그걸 어떻게 가져온다? 버스를 타고 그놈을 들고 오면 되긴 하지만 좀 꼬락서니가 그렇겠다. 언제 차로 출근할 때 학교에 갖다 놓았다가 퇴근할 때 가지고 나간다……. 매일 이러저러한 궁리를 하기만 했다.
낙엽 치우던 노부부
그저께다. 그 전날은 첫 번째 길로 빠졌는데 역시 재미없는 길이라는 걸 확인했으므로 마지막 길을 선택했다. 마지막 등성이에서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비탈로 내려가는데 저 앞에 웬 인기척이 있다. 모퉁이를 도니 오, 이럴 수가! 60대 노부부가 길을 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상상으로만 가져왔던 그 갈퀴로! 부인은 길가에 서 있고 남편은 갈퀴로 부지런히 길을 덮은 낙엽을 긁어내고 있었다.
“아, 그러잖아도 제가 언제 까꾸리(‘갈퀴’의 우리 지방 사투리다) 가져와 좀 치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치우고 있는 거라오.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이라 낙엽이 아예 길을 덮어 버렸잖우.”
“글쎄, 말이에요. 미끄럽기도 하고 바닥이 어떤지 몰라서 발을 헛디딜 수도 있는데, 정말 애를 쓰시네요.”
“못 보던 분인데, 이 동네 사시우?”
“아뇨. 요 앞으로 출근하는데 이 길 다닌 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부인도 거들었다.
“이제 치워놓은 길로 한번 가 보세요.”
“예,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가 편하게 갑니다. 또 뵙겠습니다.”
“잘 가시우.”
정말 기분 좋은 출근길이었다. 노부부는 당신들이 다니는 길을 치운 것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노인들의 수고로움 덕분에 나 같은 행인이 편안히 그 길을 다닐 수 있지 않은가. 노부부를 다시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어제는 생각난 김에 차에 갈퀴를 싣고 가서 산 밑에 대고 벌써 바람에 날려서 다시 길을 덮은 낙엽을 걷어냈다.
잊을 만하면 혹한 소식이 들려오지만, 아직 날씨는 그만하다. 그러나 눈이라도 내리거나 한파가 몰아치면 얼마간은 이 산길로 다닐 수 없을 것이다. 길을 덮은 낙엽만 걷어냈으니 바람이 불어 길이 덮이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도 있다. 명념했다가 그때는 갈퀴를 가져와 길을 치우리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2013. 12.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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