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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무제

by 낮달2018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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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최종 선고

▲ 한겨레 그림판(2009. 10. 29) ⓒ 장봉군

때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때가 많은 세상이다. 서민 대중들은 웅변이 침묵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할 때는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 분노와 절망의 언사는 고작 주변만 잠깐 밝히다 스러지는 불빛 같은 것…….

 

주변을 둘러봐도 그 불빛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몇몇 이웃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은 분주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거기 외치는 분노와 절규는 메아리 없이 사라진다. 한 사람의 고통의 다른 사람이 누리고 있는 행복의 한 귀퉁이도 건드리지 못하는 이 완전한 격리와 단절.

 

용산참사 최종 선고 이야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는 철거민 9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담당 변호인은 ‘정치적 재판’이라 규정했고, 유족들은 재판부의 판결문을 두고 “검찰이 준 원고를 읽어주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원망스럽다.”라고도 했다.

 

“정치재판은 5공과 6공 때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20년 후엔 무죄가 입증되리라 믿는다.”

 

담당 변호인의 얘기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퇴행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한꺼번에 수십 년을 거슬러 오른 타임머신 속에 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부끄럽다.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방법으로도 나라와 내가 맺은 이 ‘관계’를 파기할 수 없으므로 더더욱.

 

정태춘의 노래를 듣는다. 그들 내외는 노래한 지 서른 돌이 되었다고 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었다. 정권도 바뀌고, 민간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스무 해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철 지난 ‘90년대의 절규’는 왜 이렇게 마음을 격동케 하는가.

 

정태춘 <일어나라 열사여>

 

2009. 10.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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