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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가 반정부 단체라고?

by 낮달2018 2021.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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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당의원의 황당 주장

▲ 아름다운 가게는 2002년에 출범한 비영리단체다. ⓒ ‘아름다운 가게’ 누리집

최신 뉴스다. ‘아름다운 가게’가 ‘반정부 활동’에 동원되었단다. 지난 10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한,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이다.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다. 아름다운 가게가 촛불집회 등 반정부 불법집회를 한 8개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있고 이사인 박원순 변호사가 최근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활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사철 의원은 아름다운 가게에 “은행들이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아름다운 가게에 물품을 기부하거나 가게 장소를 대여하는 등 지원을 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조사해서 제출해 달라고 금감원에 요구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첫째 ‘아름다운 가게는 반정부 활동을 하는 반정부 단체’다, 둘째 ‘이 단체에 대한 기업의 기부를 막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장 사정기관이 수사에 나서야 할 문제가 아닌가. 어떻게 금감원에만 그 중차대한 일을 맡긴단 말인가!

 

알다시피 ‘아름다운 가게’는 2002년 출범한 비영리단체다. 이 가게는 일반 시민이나 기업 임직원들에게 중고물품을 기부받은 뒤 이를 판매한 수익금으로 소외계층 지원과 국제 구호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그러니 ‘아름다운 가게’는 아직은 후진적인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에 살아서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한 적도, 거기서 물품을 사 본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운 가게가 운영하는 ‘아름다운 커피’에서 수년째 공정무역 커피를 사 먹어온 소비자다. 아름다운 재단의 ‘1% 기금’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신히 ‘시민’으로서의 체면치레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나도 그 ‘반정부’를 도운 셈이 되는가.

 

▲ 이사철 의원 ⓒ 오마이뉴스

이사철 의원의 주장에 대해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창립 때부터 정치·종교적 중립을 지켜왔고, 대기업과 정부 부처, 지자체, 한나라당과도 행사를 같이해 왔다고 해명한다. 또 소외계층 지원, 환경보호, 인권 보호 등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출받아 심사한 뒤에 단체나 개인을 지원한다면서 지원 단체 가운데 일부가 촛불집회에 참여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지원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어쩌다 보니 지난해 온 장안을 달구었던 촛불집회는 꼼짝없이 ‘반정부 집회’가 되었다. 또 여기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개인이나 단체는 ‘반정부 활동’을 하는 ‘반정부 단체’나 ‘반정부 인사’가 되어버렸다.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만으로도 ‘반정부 활동’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미 수구와 개혁, 혹은 보수와 진보, 좌와 우, 그리고 서민 대중과 부자라는 편 가름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시청이나 서울역 앞에서 군복을 입고 성조기를 태우는 극우 인사들이 아니라, 명색이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의 입에서 그런 간명한 공식이 되풀이되는 걸 바라보는 느낌은 정말 씁쓸하다.

 

하기야 ‘좌파’라는 어림도 없는 딱지를 붙여 대중 연예인을 특정 방송에서 퇴출하는 시대다. 부동산 투기로 낙마한 장관 후보자를 교육 전문 방송의 이사장으로 선임하고, 사장 후보자 심사위원이었던 인사를 사장으로 임명하는 ‘억지 인사’가 코드라는 이름으로 용서받는 시대이니 더 할 말이 없다.

 

‘표현의 자유’는 이제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박제의 이론이 된 느낌이다. 미네르바의 구속,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기소, 국정원의 박원순 씨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 따위의 '비상식'이 ‘법치’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벌어진다. 자칫 우리 사회가 저도 몰래 ‘파놉티콘’이라는 원형 감옥으로 바뀌고 있지는 않은가 싶을 정도이다.

 

▲ 운동 철학 ⓒ 아름다운 가게 누리집

‘아름다운 가게’가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기부 문화를 확산시켜 온 것은 몇 %의 경제 성장에 비길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실제 생산행위는 아니지만, ‘나눔과 순환’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아름다운 가게’의 지향은 삶을 두껍게 하는 생산에 못지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금하라’고?

 

‘아름다운 가게’의 운동 철학은 ‘그물코 정신, 되살림 정신, 참여와 변화’이다. 그중 그물코 정신에 대한 누리집의 설명은 우리 삶의 어제와 오늘을 새롭게 깨닫게 해주는 격조 높은 인식을 보여준다.

 

나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금하라는 사자후를 뿜은 예의 선량에게 이 글을 전해주고 싶다.

 

과도한 소비로 인한 환경파괴, 절대빈곤 등의 사회 문제가 결국 나로 인한 것이며, 내 삶과 남의 삶의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으로부터 아름다운가게의 ‘나눔과 순환’에 대한 실천은 시작됩니다. <관계로의 세상 인식>은 마치 씨줄과 날줄로 빈틈없이 서로 엮어져 있는 그물코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에 책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아름다운 가게’ 누리집에서

 

 

2009. 10.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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