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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이번엔 ‘달러’를 모으자고?

by 낮달2018 2021.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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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외화통장 만들기’ 운동 제안에 부쳐

▲ 이게  100달러 미국 지폐가 맞기나 한가? 만져본 적이 없으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역시 한나라당이다. 종합주가지수는 폭락하고, 원 달러 환율은 수직으로 상승하여 둘이 각각 1300선에서 만나게 된 상황에서 ‘외화통장 만들기’ 운동을 벌이자고 했다는 것이다. 주연은 국회 정무위원장 김영선 의원이다. 김 의원은 제안은 이렇다.

 

“지금은 외환보유고가 문제가 되는데, IMF때 금 모으기 운동을 했었다. 지금은 외환위기가 문제인데 집마다 100달러, 500달러 등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전 국민 외화통장 만들기를 해서, 통장에만 넣어만 놔도 장기 달러 보유가 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국민 참여의 좋은 아이디어 될 것 같기 때문에 지도부께서는 이 점을 검토해보시면 좋겠다.”

 

말씀인즉슨 집에서 ‘썩히고’ 있는 달러를 끄집어내어서 어려운 나라 살림에 보태도록 하자는 것이다. 용량이 한참 부족한 머린데도 전광석화같이 1997년 IMF 구제금융 시기의 ‘금 모으기 운동’이 떠오르고,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 세기 벽두에 대구에서 시작되었던 국채보상운동도 떠오른다.

 

국채보상운동이야 일제의 탄압 등으로 좌절되고 말았지만, ‘금 모으기 운동’은 349만 명이 참여하여 모두 2조 5천억 원 정도의 금을 모아 외채를 갚는 데 일조한 바 있다. 이는 전적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 1997년 금 모으기 운동 당시의 풍경

그들이 누구인가. 워싱턴 포스트 지에 의해 ‘불신과 낭비의 사상 최대의 기념비적 공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평화의 댐 공사에 7백억 원이라는 거금을 모았던 착하디착한 백성이다. 김 의원은 그들의 충정에 기대어 범국민운동 형식으로 전개하면 현재의 위기쯤을 수월하게 넘기는 힘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연은 친박연대의 양정례 의원이 담당했다.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양 의원은 “제 개인적으로 집에 달러 동전이 500달러 정도 있는데 범국민적으로 달러 모으기 행사를 진행하는 게 어떠냐”며 “범국민적으로 달러 모으기 행사를 진행하는 게 어떠냐”라고 질의했단다.

 

이에 강만수 장관은 “취지는 십분 이해하고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하긴 어렵다”라면서 “민간 차원에서 (먼저)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화답(和答)했다고.

 

공연히 ‘숭례문 복원비 모금 운동’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지만, 까짓것 국가 위기를 극복하자는 선량들의 제안에 굳이 어깃장을 놓을 일이 있는가. 떨떠름하긴 하지만, 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져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이는 가시적으로 거둔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매끄럽게 진행되어 오지 않았다. 지금껏 정부 내지는 강만수 경제팀이 잃어온 ‘시장의 신뢰’가 문제의 핵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어제만 해도 국감장에서 ‘죄송하다’라며 머릴 조아렸던 강 장관은 하루 사이에 이른바 ‘표변(豹變)’이라 할 정도로 태도를 바꿔 공세적으로 나온 모양이다.

 

‘외화 보유액도 충분하고 외채구조도 문제없다’라고 항변하는 강 장관과 ‘정부가 나서서 하긴 어려우니 민간 차원에서 (먼저)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라는 강만수 장관이 같은 인물인지 헷갈린다. ‘위기’와 ‘낙관’ 사이를 줄타기하듯 오가는, 정부·여당의 관계자와 대통령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 앞에서 국민은 어지럽기만 하다.

 

문제는 다른 데에도 있다. 그것은 ‘달러 모으기’에 동참해야 할, 선량한 시민들의 집에 ‘썩히고’ 있는 달러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100달러라도 적어도 12만 원이 넘고, 500달러라면 60만 원이 넘는데 그 정도의 액수를 환전하기 성가셔 ‘처박아 두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그걸 헤아리는 것은 내 능력 바깥의 일이긴 하나 나는 내가 가진 조건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 미국의 1센트 동전. 앞과 뒷면

유감스럽게도 나는 1997년의 금 모으기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글쎄, 거짓말 같지만, 우리 집에는 그 흔한 금반지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돌잔치 같은 때 선물로 받았던 금반지 몇 개. 아내의 목걸이도 해직 시절을 거치면서 모두 다른 주인을 찾아 가버렸던 게다.

 

달러라고 하면 더욱 난감해진다. 우리 집엔 100달러, 25달러는커녕 그 흔한 동전 하나도 굴러다니지 않는다. 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지 않게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만으로도 겨워하는 사람이니 도대체 동전이든 지폐든 굴러다닐 일이 없지 않은가.

 

종부세를 ‘징벌적 과세’로, 또는 ‘분노의 세금’으로 매길 만큼 ‘부자들의 가슴에 박히는 대못’을 저어했던 한나라당이니 그들은 자기 수준만큼으로 시민들을 바라보는지도 모르겠다. 쓰다 남은 100달러, 500달러를 장롱 속에 보관하는 수준의 넉넉하고 빵빵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이니 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해 봐도 종부세를 ‘세금 폭탄’으로 규정하고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 속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이들에게서 11년 전의 익숙한 풍경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코흘리개부터 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길게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착한 사람들의 행렬을 떠올리는 게 만만하지 않다는 얘기다.

 

슬프다. 없으면 상상력조차 가난해지는가…….

 

 

2008. 10.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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