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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TV 롤러코스터’로 보는 ‘남녀탐구생활 ’

by 낮달2018 2021.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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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코미디 쇼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

▲ tvN 누리집의 '롤러코스터' ⓒ 인터넷 누리집 캡처

유선방송을 보고 있지만, 케이블 TV를 시청하는 일은 많지 않다. YTN 같은 뉴스 채널과 몇몇 영화 채널, 그리고 스포츠 채널 정도를 섭렵하는 게 고작이다. 나는 시청자를 꾀기 위해 도발적인 내용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일부 채널은 아예 선호 채널에서 제외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한가위, 성묘를 마치고 처가를 다녀온 후, 아이들과 TV를 보다가 한 프로그램에 잠깐 빠져 버렸다. 그것은 케이블 채널인 tvN의 코미디 쇼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이하 ‘롤코’, 본방송 : 토요일 오후 11시 방송, 재방송 : 화요일 17:00, 수요일 10:00)의 한 꼭지인 ‘남녀탐구생활’이다.

그게 언제부터 방송된 프로그램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겨레>에 실린 ‘성우들의 세계…아찔한 ‘득음의 경지’에서 나는 그 이름을 흘낏 보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쇼’ 성우라고 성우들끼리도 폄하하던 예능 분야에서 최근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소개하면서 “‘롤러코스터’의 경우 ‘성우 때문에 본다’는 게시판 댓글이 부지기수”라는 내용이 흥미를 끌었다.

▲ 해설자 서혜정 ⓒ 한겨레

‘기계음을 떠올리며 래퍼처럼 운율에 맞춰 냉정하게 읊조리는 내레이션으로 재미를 주고 있는’ 이가 성우 서혜정이다. 물론 나는 서혜정을 모른다.

그러나 외화 <엑스파일>의 ‘스컬리’역을 맡았던 성우라는 부가 설명을 보고서야 ‘질리안 앤더슨’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그이의 인터뷰 기사 “스컬리 목소리로 ‘이런 된장’ 시청자들은 자지러졌다” 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다였다. 나는 구태여 예의 프로그램을 한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한가위 연휴에 무료하게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아이들이 반색을 하고 고정한 프로그램이 바로 ‘남녀탐구생활’이었다.

나는 처음엔 얼빠진 것처럼, 그러다가 이내 좀 냉정해져서 성우 서혜정의 내레이션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거기서 ‘스컬리’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별로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체의 감정을 섞지 않은 정말 ‘기계음’같이 ‘래퍼처럼 운율에 맞춰 냉정하게 읊조리는’ 그 목소리는 또 다른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은 건조하면서도 일정한 톤과 억양을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방기해 버리는 것과도 같이 풀려 있으면서도 이내 단단한 매듭 같은 게 자연스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시청자들이 ‘성우 때문에 본다’고 자지러질 만도 했다.

누리집을 찾아가 확인해 보았더니 ‘롤코’(연출 김성덕 외)는 ‘새로운 웃음’, ‘고품격 공감 코미디’를 지향하는 비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공개 쇼로 방송하는 지상파 방송과는 차별적이다. 모두 다섯 개에 이르는 롤코의 코너 중 가장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게 ‘남녀탐구생활’(이하 ‘생활’)이다.

▲ 롤코 베스트 코너 1위인 '남녀탐구생활' ⓒ tvN

누리집에서 소개하고 있는 ‘생활’은 ‘남자와 여자.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 꼭 봐야 하는 남녀 탐구 보고서!’다. 대충 감이 오지 않는가. 같은 주제라도 그것을 소화하고 이해하는 남녀의 반응과 행동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생활’은 개그맨 정형돈과 정가은이 출연해 남녀의 서로 다른 생활과 사고방식을 매우 코믹하게 그려 준다.

‘생활’은 일정한 주제를 다큐멘터리 형식의 단막극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사’가 따로 없는 형식이다. 대사 대신 서혜정의 건조하면서도 나른하지 않은 일정한 억양의 힘이 실린 내레이션이 시청자를 끝없는 홍소(哄笑)로 유도한다.

눈으로는 연기자들이 좌충우돌하는 화면을 쫓아가고, 귀로는 해설자의 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내레이션을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느꼈던 공감의 내용들이 그대로 재현되기도 하고, 무릎을 치고 싶은 감각과 아이디어에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것은 대체로 ‘맞아, 맞아!’라는 외마디의 공감으로 완성된다.

내가 그날 시청한 ‘생활’은 두세 편쯤이다. 국군의 날 특집인 ‘여친 두고 군대 간 남자 편’와 ‘군대 간 남친 기다리는 여자 편’ 등을 비롯하여 ‘가전제품 고장 편’과 ‘직장인 점심시간 편’, ‘감기 몸살 편’ 등이 그것이다.

▲국군의 날 특집 '남녀탐구생활' 여친 두고 군대 간 남자 편ⓒ tvN

‘가전제품 고장 편’은 가전제품이 고장 났을 때 보여주는 남녀의 반응과 후속 행동을 각각 보여준다. 허세와 만용으로 결국 TV를 못 쓰게 만들어 버리는 남자와 자기 과실인데도 불구하고 시치미를 떼고 남자 기사를 얼러 문제를 해결해 내는 여우 같은 여자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는 형식이다.

부분적으로 상황과 연기의 과장이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리얼리티를 잃지 않는 것은 매우 속도감 있는 진행과 함께 안정적인 해설 때문인 듯하다. 해설이 ‘무한지대’나 ‘VJ특공대’의 해설처럼 과장된 가성이 아니라, 무미건조하리만큼 차분하기 때문에 시청자는 저도 몰래 이야기를 차분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생활’ 이야기를 더 길게 하는 건 사족이다. 흥미로우면 인터넷 해당 누리집에서 다시 보기를 클릭하실 것. 억지로 방영 시간에 맞춰서 ‘생활’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행여 여유가 있으면 다시 보기의 방식으로 ‘남녀 생활을 탐구’하는 것도 괜찮은 여가 활용법이 될 듯하다.

 

2009. 10.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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