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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다큐멘터리 영화 <서해로 흐른다>

by 낮달2018 2021.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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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새로이 조명한 다큐 영화 

▲ 다큐멘터리 영화 <서해로 흐른다> 포스터 ⓒ 따미픽쳐스

다큐멘터리 영화 <서해로 흐른다>가 상영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은 상영일 하루 전이다. 장소는 중앙시네마. 나는 시내 중심가 어디쯤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지정된 영화관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이 다큐 영화가 쌍용자동차 노동자 투쟁을 다룬 <저 달이 차기 전에>를 만든 서세진 감독의 영화라는 전언도 붙어 있었지만, 정작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안동에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

 

소식이 늦어서 나는 영화 전단도 보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 작품이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 기념작이라는 것과 유튜브에 올라 있는, 2분 남짓한 공식 예고편(☞ 바로 가기)을 보았을 뿐이었다. 서둘러 퇴근해 저녁밥을 먹고 나는 곧장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중앙시네마는 유명 피자가게가 들어 있는 시내 중심가 빌딩의 3층이었다. 인구 15만이 겨우 넘는 이 소도시에는 벌써 복합상영관이 두 군데나 들어서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던 오래된 낡은 극장 몇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중앙극장은 시골 지역에서는 놀랍게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지정되어 살아남았다.

 

안동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여는 이 ‘공동체 상영’의 관객은 144석의 좌석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전용관을 찾는 관객들이 그러하듯 영화가 상영되는 1시간 남짓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스크린을 지켜보았다. 영화가 끝난 후, 서세진 감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공동체 상영이 주는 보너스였다.

▲ <서해로 흐른다>의 스틸들. (공식 예고편에서 갈무리) ⓒ 따미픽쳐스

다큐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우리 학교’나 ‘송환’ 등의 영화에서 드러나듯 다큐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인물의 삶을 집요하게 쫓는 방식으로 극이 전개된다는 생각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고정관념과는 좀 떨어져 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방북기

 

영화는 단일한 필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심이 되는 필름은 ‘북한 어린이 콩우유 지원사업’을 펴고 있는 사단법인 ‘평화3000’의 2008년 방북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는 2003년 북녘역사유적답사단, 청년경제문화교류단 방북, 2004년 8·15 남북공동기념대회, 남북노동자대회 등 모두 7년에 걸친 4차례 방북 때 촬영된 영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에 6·15 남북공동선언 남측본부,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평화 3000 등 10여 개 단체에서 제공받은 100시간에 달하는 방대한 촬영본이 추가되었으니 영화사에서 소개한 ‘지난 10년 동안 흘린 땀의 결과물’이라는 표현이 과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곳곳에서 ‘편집본’이라는(물론 모든 영화는 편집본이지만!)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만다. 앞서 말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제작자의 의도대로 촬영할 수 없는 북한 지역이라는 절대적 핸디캡 탓이 크다.

 

말하자면 영화에 드러나는 북한 사회의 모습은 북에서 허용한 만큼의 제한된 정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분단 상황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북한 사회의 실상을 날것 그대로 만나기는 절대 쉽지 않은 것이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한 관객이 새로운 것이 없다고 지적했을 때 대니얼 고든 감독의 북한 다큐 외에 그 주민의 삶을 직접 다룬 다큐는 없었다는 감독의 답변은 그 한계에 대한 고백이었던 셈이다.

 

▲ 서세진 감독

작품의 중심 줄기는 2008년의 방북이다. 감독까지 참가한 이 방북기의 주인공 역할은 인물은 셋이다. 최민 전국시사만화협회장, 양인목 빛고을 대안학교 교장, 이규민 안성신문 대표가 그들이다.

 

자신의 직업이나 신분과 무관하게 무심하게 그러나 애정을 갖고 북한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선의 잡힌 북녘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공통분모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북한의 주장 뒤에 아주 편안하게 살아 있는 진실인지 모른다.

 

이들은 김일성 주석 생가, 만경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장소도 무심하게 둘러보고 옥류관에서는 냉면의 참맛을 맛보고, ‘민족정기’의 본향 백두산은 몸으로 느낀다. 필름은 그런 방북 일정 곳곳에서 만나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과 북한 사회의 ‘특별하지 않은’ 모습을 어떤 선입견 없이 보여준다.

 

“손녀가 있디요. 인민학교 2학년. 두벌자식(손자)이 곱단 말이 있답니다.”

 

안내원의 제지 없이 만났던 대동강 거북선 지킴이 할아버지의 해맑은 모습과 여유로운 몸짓은 우리 안의 냉전 의식이 일종의 과잉 방어라는 사실을 환기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 아쉬움이다. 이 갈증은 ‘진부한 방문기’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감독의 자의식으로 이어진다.

 

‘남북교류는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사실은 ‘의무감’으로 작업했다. 원래는 ‘북한 방문 가이드 형태’의 가벼운 것으로 만들려 했는데 3월에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좀 무거워졌다. 2008년까지 엄청난 인원이 방북길에 올랐는데 이명박 정부 들면서 남북교류가 끊기는 걸 보면서 ‘남북관계가 단절돼서는 안 된다’는 것, ‘남북교류는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걸 말하고자 했다…….

 

 

영화 끝부분에 양인목 평화 3000 자문위원이 자기 어머니의 첫사랑이 북쪽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를 두고 감독은 ‘생뚱맞게 첫사랑’ 이야기를 집어넣은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그는 통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 ‘민족’이나 ‘핏줄’ 개념으로 남북을 바라보지 말고 ‘연인’ 관계로 바라보면 더 쉽게 통일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통일의 당위성을 이야기하기보다 체제나 문화 등 서로 다른 점이 많은 남북이 만나서 연애하고 사랑하고 하면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는 그런 연인관계로 바라보면 좋겠다. 그러면 통일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천안함 문제도 첨예한 대립이 있지만 그런 마음으로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산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첫사랑 이야기로 갈무리했다. 부부나 가족의 연보다는 못하지만, 사랑하는 연인관계로 보면 이 문제를 수렴해 갈 수 있을 듯싶다.

 

굳이 제목을 <서해로 흐른다>로 붙인 까닭은 서세진 감독은 그렇게 설명했다.

 

천안함 문제로 시끄러울 때, 백령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백령도 앞바다에는 모래언덕이 많다. 그 모래는 대체로 대동강에서 흘러온 것이다. 백령도는 대동강, 임진강, 한강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곳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곳은 남북 간의 첨예한 싸움의 현장이다.

 

그러나 백령도는 남과 북의 대동강, 임진강, 한강이 만나서 하나로 흐르는 곳이다. 서해는 바로 그런 남북의 물줄기가 하나로 수렴되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남과 북의 사람들이 갖는 통일의 염원도 결국 서해로 흐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대동강도, 임진강도 서해로 흐른다. 한강도 서해로 흐른다. 그 유장한 물줄기 속에 아롱진 분단의 아픔도, 통일 염원도 모두 서해로 흐르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서해는 남북 분단의 첨예한 분쟁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분단 극복, 통일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은 말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사람들은 일상에 묻혀 분단과 그것이 일으켜 온 오래된 모순을 잊고 살아간다. 한 시간 남짓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분단 현실을 확인하고 통일의 당위성을 새삼 환기한다. 비록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들어가지만, 다큐 영화 <서해로 흐른다>가 잠든 일상을 일깨우는 매서운 각성제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은 분명하다.

 

 

2010. 11.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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