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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빚을 지고 있다 -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 이야기

by 낮달2018 2021.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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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 이야기

▲ 내 책상 앞에 걸린 <2013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달력>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아래 <최소한>)을 알게 된 건 지난해다. 망설이지 않고 그걸 주문했다. 두어 달 후에 배달된 달력은 지금 내 방 책상 위에 얌전히 걸려 있다. 이 벽걸이 달력은 크기도 모양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스무 명 가까운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으로 구성된 모두 20장짜리 달력이다.

 

각 달의 달력 위에는 두 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물론 눈에 확 들어오는 미모의 여배우도, 경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거나 우리 주변의 범상한 풍경이 다다. 아들을 태운 자전거를 타고 눈길을 가는 어머니, 옥상 건조대에 걸린 원색의 빨래들, 크리스마스를 맞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모습들…….

 

▲ 2013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달력

나는 몰랐지만 <최소한>은 지난해가 네 번째였다.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한 줌 빛에, 숨 막히듯 아름다운 풍경에, 가슴 저린 삶에 빚을 지고 사는 사진가들’이 ‘사진으로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사진의 찰칵거림이 작은 변화를 위한 각성의 소리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지난해의 <최소한>은 콜트와 콜텍의 해고노동자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전 세계 기타의 3분의 1을 생산하던 전자기타와 통기타 브랜드 콜트와 콜텍은 높은 순이익에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더 낮은 제작비를 찾아 해외로 공장을 옮기면서 국내 공장은 위장폐업으로 문을 닫은 지 5년이 넘은 회사다.

 

대법원의 정리해고 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공장은 아직도 다시 가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네 번째 <최소한>이 나왔던 것이다.<최소한>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끊어진 일상 앞에서’ ‘사진으로 연대와 지지의 선율을 나누고자 한’ 것이었다.

 

2014, 다섯 번째 이야기 ‘노동의 자리’

 

2014 <최소한>은 다섯 번째 이야기 ‘노동의 자리’다. <최소한>은 이 달력을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바친다. ‘10년의 노력 끝에 대법원에서 자신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발판이 될 판결을 받아냈지만, 현대차 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최소한>은 ‘왼쪽 바퀴를 달든 오른쪽 바퀴를 달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지 않고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꿈꾼다. 나이도 작업 방식도 모두 다른 사진가들이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 작업에 참여한 이유다.

 

적지 않은 사진가들 가운데 낯익은 이름도 있다. <한겨레>와 <프레시안>의 강재훈, 최형락 기자가 그렇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이 그렇다. 2009년 용산참사 때 현장에 머물던 이들 사진가의 고민에서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은 시작되었다고 했다.

▲ 다섯 번째 이야기 ‘노동의 자리’ ⓒ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달력>  누리집

그들은 완곡하게 ‘빛에 빚지다’라고 말했지만, 그들이 빚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세상과 삶이다. 이들 사진가는 렌즈를 통해 인식한 세상과 삶을 인화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드러낸다. 거대 자본 앞에서 쓰러진 노동자, 서민의 모습을 향해 렌즈를 들이대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의 무력감과 분노를 헤아리는 건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나는 ‘빛과 풍경과 삶에 빚을 지고 사는 사진가’라는 표현에 꽂혔다. 그들이 마음으로 고백한 ‘채무’ 앞에서 일상을 아옹다옹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새삼스레 돌아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한 시대, 한 사회와의 관계 맺기라 한다면, 그 빚은 우리에게도 있다.

 

‘그 빚은 우리에게도 있다’

 

아무도 그것을 환기하거나 독촉하지 않으므로 대체로 사람들은 무심히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비정하고 몹쓸 풍경 앞에서 분노하고 그 앞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연민과 연대의 감정을 보내기도 한다.

 

저마다 자신의 고단한 삶 앞에서 지쳐 있기 쉽지만, 사람들은 ‘이 추운 겨울, 한 사람의 걸인이 얼어 죽는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는 명제 앞에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몸을 보태지는 못하지만,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과 용산의 세입자들에게 마음을 보태고 싶어 하는 이들은 적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안온한 일상이, 우리들의 소담스러운 사계가 더러는 그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깨달음 앞에서 사람들은 선선히 지폐 한 장을 내미는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변화’를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아니 믿으려 애쓰면서.

 

2014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은 달력을 만들기 전 ‘선구매’ 방식으로 판매된다. 대신 이들의 이름을 달력 한 장에 넣어 준다. 이 ‘선구매 방식은 달력 판매로 마련되는 기금을 통한 응원과 더불어, 함께하고 있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곳에 전달해줄 수 있는 멋진 응원 방법’이다. 그것은 또 단돈 1만3천 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마음 보태기이기도 하다.

 

 

 

2013. 9.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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