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훈 사진전 ‘증산보국’… 광부로 일하며 탄광 속 삶을 기록하는 까닭
광부 사진가 전제훈(59) 작가가 4일부터 경북 문경에서 사진전 ‘증산보국’을 연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일간지 기사를 통해서다. 인터넷 검색으로 전시장이 새재 근처의 갤러리카페 ‘피코’라는 것도 확인하고, 도내의 전시회라 나는 전시장·작가와 날짜를 맞추어 지난 금요일에 문경을 다녀왔다.
사람들은 흔히 ‘새재’를 떠올리지만, 문경은 1926년에 남한 지역에 최초의 탄광이 문을 연 광업도시였다. 해방 후 대한석탄공사의 6대 탄전의 하나였던 문경광업소 대성탄좌와 민간광산인 봉명광업소, 60여 개가 넘는 소규모 탄광이 국내 무연탄의 30%를 생산했지만, 1993년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로 이들 탄광은 모두 폐광됐다. 문경의 이력을 과거형으로 쓴 까닭이다.
전제훈 작가가 충남 보령, 전남 화순, 강원 태백과 함께 우리나라 ‘무연탄 4대 메카’로 꼽히는 경북 문경에서 증산보국(增産報國)을 주제로 순회 전시를 시작하는 까닭도 거기 있다. 그는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아직도 지역 곳곳에 진폐 광원들의 신음과 고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가는 지금도 석탄을 생산하는 유일한 민영 탄광인 (주)경동 상덕광업소(강원 삼척시 도계읍) 등에서 30년 넘게 갱내 화약 관리 기사로 일했던 광부 출신이다. 애당초 밤과 은하수를 주제로 한 풍경 사진을 주로 찍던 그가 탄광과 동료들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그는 내부자로서 탄광과 광원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으면서 “자신들의 삶이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증산보국에 내몰렸던 선배 광부를 위하여
탄광과 광원(鑛員)을 찍는 사진가들은 더러 있지만, 광부로 일하면서 작업한 작가는 그뿐이다. 그는 외부자들의 작업과 직접 막장에서 일하면서 동료의 속살을 가감 없이 기록한 사진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광원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사진 10만여 장을 찍었다.
그는 2017년 동강 국제사진전 참가를 시작으로,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 2019년 ‘광부1 검은 영웅들’, 2020년 ‘광부2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 2021년 ‘빛을 캐는 광부’ 등 탄광과 광부를 주제로 한 전시를 이어 오고 있다.
1983년 대학을 졸업하고 함태탄광에서부터 일해 온 탄광을 그는 2018년 명예퇴직으로 떠나왔다. 그리고 이미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석탄산업도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일만 남았다. 그는 석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전시 주제인 증산보국은 그가 중학생 때 형님이 일하던 탄광에 가서 만났던 글귀였다. 1970~1980년대에는 모든 탄광의 정문에 ‘증산보국 탄질 향상’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현수탑이 세워져 있었다. “생산을 늘려서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다”라는 전근대적 구호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노동 착취 구호”라는 사실을 그가 깨닫게 된 것은 훨씬 뒷날이었다.
1980년대 300여 개였던 탄광은 이제 전국에 4곳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일하고 있는 이들이 결국 ‘마지막 광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부들은 탄광을 떠나도 여생을 후유증에 시달리며 보낸다. 그나마 그들 중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 지금 남은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번 전시회는 그러한 선배 광부를 위해 기획됐다.
그는 2020년 ‘광부2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 전시회에서 만난 선배 광원을 잊지 못한다. 지팡이를 짚고 온 그 노인은 한 작품 앞에서 오열했고, 그에게 ‘자신이 저 막장에서 살아나온 사람이라고, 같이 있었던 동료들은 아무도 거기서 나오지 못했다고, 사진은 그때와 똑같은 장면’이라고 고백했었다.
그의 사진을 본 선배 광원들은 대개 눈물을 글썽이며 탄광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잊혀 가는 현실을 아쉬워하곤 했다. 2019년 진폐단체 총회에서 만난 선배 광원들도 자기 지역에 전시를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사진으로나마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반추하면서 옛 기억을 갈무리하고 싶어 했다.
전시회라도 열어 그들 선배 광원을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4개 지역 순회 전시를 문경에서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전시는 그가 허울 좋은 증산보국의 구호 아래 고된 노동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선배 광원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위로이자 그들에게 바치는 경의인 셈이다.
극사실 사진, 한 시대를 기록·증언하다
지난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고 건강해 보였다. 그는 전시회에 건 작품들이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이라고 했다. 갤러리 카페 2층의 하얀 벽에 걸린 흑백의 사진들이 주는 인상은 강렬했다. 색채대비보다 더 강렬한 것은 사진 속에 재현된 광부의 노동과 휴식, 갱 안의 삶이었다.
그의 작업에서 기록과 사진 미학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냐고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기록”이라고 답했다. 그는 내부자가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자신의 사진이 지닌 현장성, 그 생생한 사실주의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해석보다 사진이 날것으로 전하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듯했다.
작품에 제목도, 컬러사진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제목은 따로 붙이지 않는다. 갱도 안에선 모두가 검은색이기에 흑백으로 담았고, 컬러는 시선을 집중하기 곤란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의 사진은 잘 준비된 촬영 여건에서 찍는 여느 사진가들의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갱 입구에서 4400m나 떨어진 막장은 탄가루와 화약 연기, 발파로 인한 분진, 35도 이상의 고온과 습도 따위로 촬영 현장으로는 최악이기 때문이다. 자연광도 없지만, 안전등만이 어둠을 밝히는 현장에서는 작업에 지장을 줘 플래시조차 터뜨릴 수 없다.
그는 삼각대도 없이 3200 이상의 감도(ISO)로 셔터를 누른다. 사람은 대체로 카메라 앞에서 경직되지만, 외부자가 아니라 10년도 넘게 고락을 같이해 온 동료 광원들은 전제훈의 렌즈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다. ‘극사실’이라 해도 좋은 사진이 탄생하는 배경이다.
40여 점의 전시 사진은 모두 광부의 일상을 담았다. 입갱에서부터 막장의 채탄 작업, 탄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 점심 식사 전과 작업 끝난 뒤의 목욕, 웃통을 벗고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 등 광원의 동선을 따른 사진들은 주름살과 탄가루의 입자까지 드러날 만큼 생생하고 거칠다. 고단한 삶 앞에 선 광부들의 강인한 모습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전 작가는 석탄산업의 미래를 비관했다.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란 명제는 화석 연료 석탄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 이제 탄광과 광부에게 남은 시간을 얼마나 될까. 앞으로 10년 이내에 마지막 탄광이 문을 닫고, 증산보국이란 미명으로 막장에 내몰리던 광원의 후예들도 갱을 떠날 것이다.
그래도 전 작가는 태백과 광산 언저리를 지키려 한다. 그가 찍은 10만여 장의 사진과 수집한 안전모와 안전등, 안전 작업복, 안전장화 등 광업 관련 물품 2만여 점과 함께. 비록 갱을 떠나왔지만, 그는 탄광 주변의 풍경과 광부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남은 한 시대를 기록해 나갈 것이다.
전제훈 작가는 광원이야말로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라고 이른다. 수천 미터 지하 갱에서 석탄을 캐는 이들을 꺼지지 않는 불을 회양목 안에 넣어 인간에게 몰래 건네준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으로 비유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불로 인간 문명의 새 장을 밝혔듯 광원들이 캐낸 석탄도 이 땅의 한 시대를 밝혀냈다. 전제훈 광부 사진전 <증산보국>은 바야흐로 꺼지려 하는 불, 저무는 한 시대를 기록하면서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증산보국>의 전시 일정
- 1차 : 갤러리 카페 피코(경북 문경시 하푸실길 30, 2021.9.4~9.26)
- 2차 : 갱스 카페 갤러리(충남 보령시 청라면 향천리 142-5, 2021.10.4~10.31)
- 3차 : 소아르미술관(전남 화순읍 화보로 4439-10, 2021.11.23~2021.12.8)
- 4차 : 철암탄광역사촌(강원 태백시 동 태백로 408, 2021.12.12~2021.12.31)
2021. 9.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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