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노선버스’ 제외
근로시간(이 ‘근로’는 언제쯤 ‘노동’이 될까.) 특례업종에서 ‘노선버스’가 제외된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여야가 근로기준법 59조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노선 여객 자동차 운송 사업을 제외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서 ‘노선버스’ 제외
근로기준법 제59조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를 규정하고 있는 조문이다.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당 법정노동시간은 40시간이다. 여기에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할 때 12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노동자는 근로기준법(50조, 51조)에 따라 주당 52시간 이상 노동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운수업 노동자는 5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례에 따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는 이 같은 초과 노동이 불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이는 버스 기사의 장시간 노동과 졸음운전으로 인한 인명 사상 사고가 잇따르면서 취해진 조치다. 버스 기사들은 대체로 1일 2교대제나 격일제로 근무한다. 격일제로 근무하는 기사의 경우는 하루 16~17시간씩 일해야 하는데 이 장시간 노동이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 김현정> 그러면 지금 몇 시에 운전을 시작해서 몇 시까지 운전하세요?
◆ 안경선> 보통 근로자가 평균적으로 6시에서 출발한다고 그러면 12시. 밤 12시. 새벽 6시에 나와서 밤 12시.
◇ 김현정> 새벽 6시에서 밤 12시면 이게 몇 시간입니까? 18시간이 되네요.
◆ 안경선> 실질적으로 임금으로 계산하는 시간은 16시간인데 출퇴근, 출발 준비까지 다 따지면 그렇게 됩니다.
◇ 김현정> 18시간을. 그러면 18시간을 계속 운행하는 건 아니고 구간을 한번 가면 쉬는 게 있잖아요.
◆ 안경선> 종점까지 가는 시간이 그렇게 여유 있지 않아요. 가서 바로 되돌려 와야 되고. 한 바퀴 돌고 오면 3시간 반 걸리는데 3시간 반이 돼야만 휴식을 할 수 있어요.
◇ 김현정> 3시간 반 꼬박 운전하고 휴식은 몇 분 취하세요?
◆ 안경선> 30분 쉴 때도 있고 뭐 1시간 쉴 때도 있고 그래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퇴근을 해서 12시에 운행 종료하고 집에 한 30분 동안 차를 끌고 퇴근하고 씻고 자면 무조건 1시 반이 넘어야 돼요.
◇ 김현정> 새벽 1시 반?
◆ 안경선> 거기에서 잠을 자고 또 4시 반에 일어나서 또 출근 준비해서 또 운행을 해야 되니까 잠을 자고 싶다. 근로자들은 잠을 자고 싶다.
◇ 김현정> 1시 반에 들어간 사람이 4시 반에 또 출근을 해야 되고.
◆ 안경선> 기상을 해야 돼요.
◇ 김현정> 그러면 주당 몇 시간 정도 지금 근무하고 계세요?
◆ 안경선> 주당 88시간 정도.
◇ 김현정>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인데 88시간, 2배가 넘게 근무를 하시고 또 게다가 이제 버스 운전은 몸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피곤함을 육체적인 피로를 더 느낄 수밖에 없는 직업인데 만만치는 않네요.
◆ 안경선> 제가 운전하면서 느꼈던 현상을 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아차 싶어서 내가 정류장에 손님이 있었나 없었나. 정류장을 지나왔나 안 지나왔나 기억을 못 할 때가 너무 많아요.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2017. 7. 28. 방송분) 중에서
하루 18시간, 주당 88시간 장시간 노동
버스 기사들은 장시간 노동에 꼼짝없이 노출되어 있고, 그 과도한 노동은 결국 승객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기사들에게 연장 근로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회사의 이해와 저임금이지만 그 핵심은 무한정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59조다.
4인 이하 사업장과 법으로 정한 운수, 의료, 위생업 등 특례업종은 근로시간에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국 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이 이 같은 무한정 연장근로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근로기준법’은 자본과 사용자의 이해를 대변할 뿐, 노동자 보호는 모르쇠 해온 셈이다.
지난해 짧게 유럽 몇 나라를 여행하면서 목격한 유럽 버스 기사들의 노동 조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부터 마지막 취리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우리는 몇 나라의 전세 관광버스를 이용했다.
유럽연합(EU) 버스 기사들의 경우
여행 내내 동행한 인솔자는 유럽의 버스 기사들이 꽤 까다로운 규정에 따라 운전하기 때문에 국내의 관광버스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강조했다. 기사들에게는 하루 운행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일정한 휴식 시간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얘길 들으면서 일행은 머리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국경을 넘어 이틀 이상의 운행이 이어질 때는 다른 기사가 같이 차에 올랐다. 하루 운행이 끝나면 다음 날 운행은 교대 기사가 맡았고, 일정 시간 운행 뒤에는 반드시 쉬어 갔다. 이러한 상황은 디지털 운행기록계에 기록되면서 매우 엄격하게 관리된다고 했다.
유럽 버스 운전기사들의 근무시간 규정은 ‘버스 라이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연합(EU)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 규정은 일일 근무시간과 주간(2주간) 근무시간은 물론, 일일 휴식 시간, 주간(2주간) 휴식 시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루에 운전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9시간으로 제한되고 휴식 없이 운행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4시간 30분이며 운행 중 최소 45분 이상 휴식하여야 하는 게 일일 근무시간 규정이다. 1일 운행 종료 후 다음 운행 시까지 최소 11시간 휴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휴식 시간 규정이다.
1주 운행이 끝나고 다음 주 운행 개시 전까지 최소 45시간 이상을 휴식하여야 한다는 게 주간 휴식 시간 규정이다. 적절한 근무시간과 휴식 시간을 규정하는 것은 운송 노동자에게 적절한 노동 조건을 준수케 하여 승객의 안전을 꾀하는 것이 목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저임금을 넘어 ‘사람값’을 높이는 사회로!
버스 운전기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장시간 노동과 그로 인해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은 뿌리 깊은 저임금 구조 탓이다. 이는 모두 우리 사회가 ‘사람값이 싸기 때문’이라는 한 언론인의 지적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관련 기사 : 사람값을 올리는 일]
자영업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유도, 부자와 권력자들이 노동자를 막말로 비하하는 것도, ‘전화 한 통이면 24시간 치킨이 배달되고 대리기사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사람값이 싸기 때문이다. 몸으로 먹고사는 일을 천시하고 ‘모두 지나치게 오래 일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새벽에 나가서 자정이 넘어서 들어왔다가 다시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하는 가장의 고단한 삶, 제공한 노동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이 악순환을 이제 끊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그 변화의 첫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내 어릴 적 친구 하나는 지금도 대구 시내에서 버스를 몰고 있다. 대구는 버스 준공영제가 시행되고 있어 1일 2교대 근무라 하니 격일제로 근무해야 하는 운전기사들보다는 사정이 좀 나을까.
우리가 무심히 스치는 일상도 숱한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불공정하고 모순된 시스템 앞에서 정작 우리는 무력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는 걸 새삼 우울하게 확인하면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2017. 8.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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