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가 보여준 가능성, 혹은 희망
어저께 학교는 축제를 치렀다. 한여름, 아닌 7월 중순에 웬 축제? (이게 말이 되나?) 기말시험은 치렀겠다, 방학을 하루 앞둔 절묘한 시점, 다행히 날씨는 선선했다, 이러면 말이 될까? 되기는 되겠다. 짐작했겠지만 이게 이 무한 입시경쟁 시대에 한 여학교가 선택한, ‘비켜 가기’ 축제다.
‘비켜 가기’ 축제라 함은 생색(축제 치렀어!)은 적당히 내면서 그것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축제를 전후해서 아이들이 받는 영향 따위는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전략적 사고(?)를 이른다. 축제를 준비한 시간은 기말시험을 마치고 난 뒤 닷새 남짓. 덕분에 그래도 학습실에 들어앉아 책을 파는 아이들을 빼면 모처럼 학교 안에 활기가 넘쳤다. 재잘대고 비명을 지르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고…….
행사래야 합창제와 예술제, 약식 전시회 정도였으나, 축제의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오후에 두 시간 남짓 치러진 동아리 이벤트. 열몇 개의 동아리가 등록해 활동 중인데(언제 활동할 시간이 있긴 하나?) 동아리의 힘이 세긴 세다. 아이들은 동아리별로 교실 한 칸씩을 차지해 저들의 활동을 소개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파는 등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몇 명의 재주꾼들이 재주를 피우고, 나머지 아이들은 구경꾼이 되어 버리는 학교 축제의 일반적 형식에 비추어 보면, 아이들을 주체로 세우고 있는 이 동아리 활동은 학교 축제가 나아갈 바를 명쾌하게 제시해 주는 듯하다. 축제는 일회성 오락 행사가 아니라 한 해 동안의 학생 활동을 총화하는 형태로 치러지는 게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하루 전부터 교정 곳곳에 붙은 동아리 선전 포스터와 쪽지, 축제 당일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잡은 사진들이다. 조신하고 주의 깊게 공부에만 열중하던 아이들의 어디에 저런 엄청난 에너지가 감추어져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여전히 아이들은 가능성이고 희망이다.
2007. 7.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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