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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텃밭 농사,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by 낮달2018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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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텃밭’을 가꾸며

▲ 될 것 같지 않던 텃밭 농사에서 거둔 첫 수확. 작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했다.

어제는 처가 마당에 가꾸어 놓은 텃밭에 다녀왔다. 그제 내린 비로 시퍼렇게 여물어가고 있는 고춧잎과 제법 실해진 고추나 가지는 물론이고, 다닥다닥 다투어 열린 방울토마토를 바라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저께 산 알루미늄 지지대를 고추와 가지 옆에다 세우고 끈으로 묶어주었다.

 

밀짚모자를 써도 두 시간 남짓 일하는 동안 쉬지 않고 땀이 흘러내렸지만 그게 별로 싫지 않았다. 고추는 키가 성큼 자라지는 않았지만 들여다보면 열매가 제대로 달렸다. 가지도 줄기가 거의 비스듬히 눕다시피 기울어졌는데도 제법 큰 가지가 열렸으며 순이 얼기설기 얽힌 방울토마토도 빽빽했다.

 

상추와 쑥갓은 4월 초에 씨를 뿌려두었지만, 텃밭 농사를 제대로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중순도 넘어서다. 지난해 장모님을 배웅한 후 우리는 처가 마당에 일구어 놓은 텃밭을 가꾸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작 새해 들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이 텃밭 농사는 자꾸 늦어졌다.

 

퇴직을 전후해서 거기 적응하는 일이 만만찮았고, 계획한 유럽 여행을 다녀오니 어느새 5월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서 고추 모종을 사 들고 텃밭을 찾은 게 5월 21일이었다. 모종을 심으면서 아내는 늦어서 되겠냐며 걱정했지만 나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 미리 뿌려둔 상추와 쑥갓은 자라서 꼴을 갖추었지만, 갓 심은 고추는 어쩐지 서글프다.(5월 20일)

아내는 이랑도 짓지 않고 고추를 심은 게 시뻐 보였는지 좀 미덥지 않은 표정이었다. 제대로 하자면 미리 이랑을 지어 ‘멀칭’이라고 하는 검은 비닐로 씌우고 모종을 심어야 했지만 우리는 아예 이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나는 고추 옆에다 고랑을 파고 마당 한쪽에 쌓여 있던 퇴비 두 포대를 뿌려두고 흙을 덮어 놓았다.

 

그리고 한 주에 한 번꼴로 밭을 둘러보았지만 가물어선지 고추밭은 여전히 어설프기만 했다. 아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비가 오고 난 다음엔 제대로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러고 한동안 바빠서 통 밭에 가보지 못했다.

 

6월 말에 밭에 들렀더니 밭의 빛깔이 훨씬 짙어졌다. 고추와 가지는 성큼 자라 있었고, 호박과 토마토도 덩굴이 제법 벋어 있었다. 아, 호박도 두 덩이가 달렸다. 우리는 가지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호박과 고추를 1차 수확했다. 키가 큰 고추를 중심으로 집에 있는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수확은 아주 조금이었지만 돌아오는 걸음이 가뿐했다.

▲ 한 달쯤 지난 뒤, 고추와 토마토 등이 자라서 제법 밭 빛깔이 푸르러졌다. (6월 29일)
▲ 상추와 쑥갓은 거의 끝물이다. 쑥갓꽃이 피었고, 이때 우리는 첫 수확을 했다. (6월 29일)

그리고 어제 다시 밭에 들러 지지대가 모자라 세워주지 못한 고추에 지지대를 마저 세워준 것이다. 아내는 묵어서 세어진 상추와 쑥갓을 뽑아내고 볕이 뜨거워 제대로 자랄는지 하면서 빈 땅에 간단히 고랑을 짓고 상추씨를 뿌렸다.

 

두 시간 남짓 땀을 흘려도 돌아서는 발걸음은 개운하다. 나는 며칠 전에 아내와 함께 농협에서 조합원에게 주는 비료와 농업용 비닐 두 롤을 타온 걸 떠올리며, 묵히고 있는 밭도 곧 일구고, 내년에는 제대로 농사를 지어보자고 말했다.

 

정말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장난 같은' 텃밭 농사조차 짓지 않았다. 2007년부터 4년 동안 여기저기 몇 이랑의 밭은 빌려 농사를 지었다. 농사의 시작과 끝을 ‘텃밭 일기’로 기록하던 그 시절이 아련하다. [관련 글 : 다시 텃밭에서(2010.4.28.)]

▲ 제법 밭 꼴이 났다. 밭 주변에 잡초가 무성하고 이미 상추와 쑥갓은 세어졌다.(7월 5일)
▲ 가지와 방울토마토. 지지대를 세워주었으니 곧 더 풍성하게 열매를 맺어줄 것이다.(7월 5일)
▲ 고추와 가지에 모두 지지대를 세워주고 세어져 버린 상추와 쑥갓을 뽑아버렸다.(7월 5일)

농사를 쉬게 된 것은 2011년부터였다. 드는 시간이 만만찮은 데다가 새로 시작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는데 구미로 옮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부담이 커진데다가 떨어진 체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았으니 텃밭 농사는 언감생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5년이 넘은 것이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문득 그 시절이 참 각박했다는 걸 깨달았다. 2014년에 장모님의, 없는 게 없는 농사를 둘러보면서 느끼던 행복감을 나는 ‘치유’라고 쓴 적이 있다. [관련 글 : 밭, 혹은 치유의 농사(2014.7.7.)]

 

내 손을 거치지 않은 작물인데도 마치 ‘내가 지은 농사’ 같아서 ‘성취감이 목구멍에 가득 차오르는’ 벅찬 느낌을 달리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늘 하는 말이지만 농업노동은 ‘노동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 준다는 인격적 측면’(신영복)을 갖추고 있다.

 

우리 텃밭까지는 거리로 왕복 40km, 오가는 데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아내는 늘 ‘기름값’도 안 나온다고, 그 돈이면 편하게 시장에서 사 먹을 수 있다고 푸념하지만, 그게 어찌 ‘기름값’으로 환산할 수 있는 일인가. 안다. 그걸 몰라서 그런 푸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천으로 된 시장바구니에 가득 고추를 따 담아 돌아오면서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고추 무름을 해 주겠다고 했다. 지금 묵히고 있는 마당 저편의 텃밭에는 가을에 배추 농사를 짓고, 한 마장쯤 떨어진 미나리꽝에는 내년에 감자를 심자고 우리는 미리 풍성하게 ‘말 농사’를 짓고 있었다.

 

 

2016. 7.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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