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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 열 가지

by 낮달2018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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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동네 친구 미나리가 보내온 글

 

요즘은 어째 ‘행복’이 화두가 되어 있다. 6월을 주제로 쓴 글에 대해 ‘해를그리며’님이 단 댓글에 ‘행복하게’란 내용이 있었다. 그 답글에서 나는 ‘그래요, 행복하게’라고 썼는데, 왜 그랬을까, 공연히 코끝이 아려옴을 느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그것은 마치 무슨 예감처럼 내 일상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왔다.

 

두 번째 느낌은 학교 뒤의 숲을 거닐 때 찾아왔다. 숲의 청량한 공기 속에서 불현듯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격렬하게 목이 메어 왔었다. 나는 왜 그렇게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행복’이라는 그 주관적 감정은 어쩌면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내 설움이나 잊고 있었던 상실의 아픔을 상기시켜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왜냐고 묻지 않았는데, 이웃 동네에 사는 친구 리 선생(그는 굳이 자신의 성을 ‘리’로 쓴다. 나는 별로지만 그를 존중해서 그렇게 써 준다.)이 자신도 목에 메인다며 엄살을 부리며 몇 해 전에 썼다는 다음 글을 보내왔다. 그는 나보다 몇 살 아래이긴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눈높이도 그만그만하고, 시대와 그 속살들을 헤아리는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웹에서 쓰는 한글 이름이 ‘미나리’고 정작 자신의 부모님들이 농사를 지어 자식을 기르셨지만, 8남매의 자식 중, 아무도 농사짓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는 사람이다. 그가 지금 바라는 것은 하루빨리 이 업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일인데, 그 소망은 쉬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이른바 부부 교사여서 ‘준재벌’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자기 승용차가 없다. 아니 마련하지 않는다. 때로 불편보다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게 행복한 이가 있는 모양인데, 그는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런 위인이다.

 

그가 쓴 다음 글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널려 있다는 걸 보여 주지만, 정작 나는 여전히 그런 이유로는 결코 여전히 행복하지 않으니, 내가 철이 들거나 수양이 되려면 아직 먼 모양이다.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 10가지

1. 나는 1960년에 태어났다. 만일 내가 7, 80년대, 혹은 200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아마 세상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앞에 이미 7명의 아들딸이 있었고, 가난한 살림에, 나는 낙태로 하여 산산조각이 나서 하수도 시궁창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모르지. 착하신 우리 어머니, 차마 그러지 못하고 낳으셨을지.

 

2. 나는 이 나라에 태어났고, 이 나라에서 태어났으니 이런 글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소말리아, 우간다,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이런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가난한 살림에,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아마 병으로, 혹은 굶어서 죽었을 것이다.

 

3. 나는 4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어머니는 40세, 아버지는 45세이셨다. 가난했지만 내 나이 서러운 서른 될 때까지 어질고 인자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다. 미혼모, 편모, 편부의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행복해야 할 이유이다.

 

4. 나는 예비 장애인이며, 지금은 장애인이 아니다. 유엔에 따르면 각 나라의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 된다는데, 그러면 우리나라에도 수백만 명의 장애인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 많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나온다는데, 나는 장애 없이 태어나 과다한 음주 흡연으로 간, 위, 폐가 정상이 아니겠지만, 아직 허우대 멀쩡한 놈이다.(내가 내일 간암, 위암, 폐암으로 죽는다면 자업자득이 될 것이다.)

 

5. 나는 남성 이성애자이다. 옛날, 조선의 허초희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했다. 수백 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만큼 이 나라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행복하기에 불리하다. 나는 남자로 태어나 오빠들 틈에 끼어 상급 학교 진학도 ‘양보 당했’던 누나들과, 남성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는 여성들보다 분명 행복하다. 또 동성애자로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홍석천 같은 유명인도 아닌데…….

 

6. 나는 교사이다. 나는 공부 잘했던 형, 누나들을 보면서 조금 공부를 잘했다. 부모가 고생하셨지만, 지방 국립 사범대를 졸업해 교사로 발령까지 받았다. 오늘날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수십만 명 대학 졸업자, 일은 힘든데 임금은 대학을 졸업자들보다 적은 비 대졸자들에 비하면 나는 대단히 행복하다. 또 입학 때 국가에서 발령을 내어 주는 법으로 사대에 진학했는데 군대 갔다 온 사이 법이 바뀌어 임용고시를 봐야 하는, 그래서 지금까지 미발령 사대 졸업생들의 불행에 비하면 나는 엄청나게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실직의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공무원은 얼마나 행복한가?

 

7. 나는 결혼을 했다. 장가 못 가 울고 있는 총각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녀 성비는 갈수록 벌어지고, 그중에서 특히 심한 경상도에서 태어나 못생긴 얼굴에 그래도 안정적 직장 있답시고 결혼을 하고, 거기다 맞벌이 부부 교사라니!

 

8. 나는 맞벌이 부부 교사이다. 요새 혼자 벌어 어느 세월에 집 사고 땅 살 수 있는가? 물려받은 유산은 없었지만, 둘이 열심히 돈 벌어서 작지만 내 집 마련하고 약간의 땅도 사서 텃밭에 무농약, 무비료의 무공해 채소 심어 이웃에 인심도 쓰며 잘먹고 잘살고 있다.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 조금 있으면 100% 달성이라지만, 자기 집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 %인가? 온통 월세, 전세, 임대 주택일 텐데, 나는 번듯한 내 집이 있다.

 

9. 나는 1남 1녀의 아비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라지만, 결혼해서 자식 못 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결혼 1년 만에 아들, 그 두 해 뒤에 딸을 두었다. 아들만 둘, 딸만 둘 있는 집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마땅히 행복해야 할 것이다.

 

10. 나는 아직 젊다. 40 중반의 중년이지만 아직 늙은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고 있다. 산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은 적겠지만, 아직 새 인생을 꿈꿀 시간은 있다.

 

만일 내가 ‘나는 행복하지 못해. 나는 불행해.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면 나는 이 지구상의 수억, 수십억 낙태아들, 비한국인들, 미혼모·편부·편모 슬하에서 태어난 사람들, 그리고 고아들, 장애인들, 여성들, 동성애자들, 비교사 공무원, 비정규직, 실업 실직자들, 결혼 못 한 노총각들, 전업주부 아내를 둔 남편들, 무주택자, 1남 1녀 못 둔 부모, 가엾은 노인들의 이름으로 천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아멘, 인샬라!

 

 

 

2007. 6.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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