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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고향에 돌아온 딸의 손만두, 의성을 구해낼까

by 낮달2018 202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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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청년 창업 이야기 ②] 안계 '오늘손만두'의 김진우 씨

▲ 지난해 8월, 경북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문을 연 김진우 씨의 가게 '오늘손만두'

농촌에 젊은이가 떠난 지는 한참 오래되었다. 원래 마을이란 청년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비로소 ‘사람 사는 동네’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젊은이 없는 시골은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진’ 적막강산으로 바뀌어 버렸다.

위기의 지자체들이 소멸에 맞서, 벌이는 사업은 여럿이지만, 그 핵심은 인구를 늘리는 데 있다. 도시 청년을 유치하여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그 핵심 목적은 다르지 않다.

안계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의성군이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 경로는 세 가지다. 경상북도의 ‘이웃사촌 시범 마을’ 사업 가운데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 지원을 받는 것과 도시 청년들의 농촌 공동체 마을 ‘청춘구 행복동’을 통해 운영하는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거치는 창업이 그것이다. 마지막은 도시 청년에게 시골에 와서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을 권유하는 프로그램,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다.

안사우정국을 연 친구들과 수제비누 프로젝트 ‘담다’는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거쳤고, 수제 맥주 공방 ‘호피홀리데이’나 지역 농산물 판매점인 ‘진팜’은 일자리 창출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유럽식 파스타 식당인 ‘달빛레스토랑’과 ‘오늘손만두’는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의 지원을 받은 업체다.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아래 ‘파견제’)를 통해서 들어온 청년 중에는 음식점을 창업한 이들이 많다. 창업 지원의 전제는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고, 농촌인 의성에서 지역 자원은 곡물이나 채소, 과일 따위가 중심이다. 청년들이 음식점을 여는 것은 그게 이른바 진입 장벽이 낮아서라기보다 이런 사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난해 8월,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의 도움을 받아 안계면에 만둣집 ‘오늘의 만두’를 연 김진우 씨(40)는 다른 청년과는 사정이 좀 다르다. 다른 이들은 대부분 사회 초년생들이고 의성은 객지지만, 그는 음식 관련 잡지의 편집자였고, 안계는 아버지 김지영 씨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안계는 의성군의 서부 중심지역으로 드넓은 안계평야를 끼고 성장한 소읍이다. 안계 우시장을 비롯한 시장이 발달했고, 곡창 안계평야에서 생산된 곡물을 바탕으로 서부지역 6개 면의 생활과 교통의 중심지다. 동부지역의 중심이 되는 고을이지만, 정작 인구는 5천 명 아래로 떨어진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비록 인구는 감소세지만, 의성군의 서부 중심지역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생활 기반을 갖춘 도시다. 의성군의 파견제 사업이 안계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유다.

▲ 오늘손만두는 의성형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창업했다.
▲ 한때 한정식집이었다는 가게 내부는 꽤 넓었다. 10달 가까이 지나면서 가게는 입소문이 제법 났다.

그의 가게는 안계고등학교 앞의 용기9길에 있다. 한정식을 팔았던 집을 세내어 그가 ‘오늘손만두’를 연 때는 지난해 8월이었다. 10달 가까이 지나면서 가게는 입소문이 제법 났다.

그의 가게는 푸른 칠을 한 기와지붕의 붉은 벽돌집이었다. 지붕과 길가에 세운 간판에 쓰인 손글씨가 독특했다. 진우 씨가 후배에게 부탁해선 만든 손글씨로 손으로 직접 빚는 손만두인 만큼, 로고 역시 손글씨라면 의미가 더 잘 전달될 것 같았다고.

한때 한정식집이었다는 가게 내부는 꽤 넓었다. 금요일(6월 4일) 오후에 들렀을 때 손님들이 연신 가게를 드나들고 있었다. 의성읍에서 왔다는 한 여자 손님은 만두피가 이처럼 얇은 만두는 처음이라며, 소문 듣고 세 번이나 왔었는데, 한번은 노는 날이라, 다음는 손님이 꽉 차 자리가 없어 돌아갔다고 하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만두는 진우 씨가 어려서부터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빚어 먹었던 음식으로, 그에게는 ‘소울 푸드’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편집자를 일한 12년을 떠올리며 그 일도 보람되고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의 식당’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진우 씨는 만두가 좋아 국내는 물론, 나라 밖을 여행할 때도 만두를 찾아다녔는데, 타이완에서는 ‘샤오룽바오’(小籠包 소룡포) 만드는 법을 직접 배워오기도 했다. 음식점을 열겠다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메뉴가 바로 ‘만두’였다. 현재 오늘손만두에선 하루 두 번 만두를 빚고 이를 바탕으로 찐만두, 군만두, 만두전골, 조랭이 만둣국 등을 차려낸다.

▲ 식당의 원산지 표시판. 친환경 농사를 짓는 부친의 쌀과 달걀을 쓴다고 되어 있다.

진우 씨는 ‘24시간 이내에 빚은 만두’만을 판매하려는 원칙을 세웠는데, 상호에 ‘오늘’이 들어간 것은 그런 뜻에서라고. 지금은 고기만두만 빚고 있지만, 매운맛을 즐기는 지역민들의 취향을 고려해 나중에 매운 고추를 넣은 만두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꾸며놓은 실내에 ‘원산지 표시판’이 은근히 눈길을 끌었다. 긴머리의 여자 그림 때문이 아니라 거기, 빨간 금을 그어놓은 쌀과 달걀의 설명 때문이다. “김기영 농부님(아빠)의 쌀”과 “아빠의 방사 유정란”(달걀)이 그것이다.

진우 씨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싱싱한 지역 재료를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 부친이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있는 배추, 대파, 고추, 양배추, 단호박 등의 채소는 당연히 그가 만두에 쓰는 재료다. 그는 지금은 소규모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면 지역 농가와 연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맞다, 파견제 지원의 전제가 ‘지역 자원의 활용’이었다.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의 목적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우수한 아이디어를 발굴·육성하여 지역 신성장동력 확보와 경제 활성화”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 신성장동력’이나 ‘경제 활성화’는 도시 청년들이 들어와 지역을 살리는 아이디어로 창업하면 지원하겠다는 거고, 이들이 지역에 들어와 안착하면 그게 곧 소멸 위기 극복의 ‘씨앗’이고 ‘마중물’이 된다는 거다.

안사우정국이든 달빛레스토랑이든 식당이 쓰는 식자재야 당연히 현지에서 나는 걸 쓰기 마련이다. 이들의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식구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이웃 시군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와서 성황을 이루면 금상첨화다. 궁극적으로 이는 개인의 성취가 지역 공동체의 회복과 상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업이다.

한 달을 갓 넘긴 안사우정국과 달리 열 달쯤 지역민들을 만난 오늘손만두는 일단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거기 머무는 동안 온 손님들은 대부분 의성읍이나 안동에서 온 외지인이었다. 오후 4시가 넘어 주문한 포장 만두를 기다리고 있는데, 막 현관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비록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안사우정국을 찾아준 대구 손님을 알아보았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만두가 맛있다는 내 말에 그는 벌써 여러 번 왔다 간 데라면서 활짝 웃었다.

▲ 12년 동안 음식 관련 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던 김진우 씨는 오늘손만두를 창업하면서 자기 실현을 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돌아와서 나는 진우 씨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물었다. 1년이 가까워지는데, 창업은 ‘자리 잡기’(물론 기준은 없지만)에 몇 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냐고. 그리고 창업 이후, 삶은 ‘자기실현’이 이루어지고 있느냐고.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70% 정도는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어떤 확신과 자신감은 때로 질문자를 불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의 자신감을 순순히 긍정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한 블로거는 “공간도 넓고 세상 깔끔하고, 맛도 있는데 친절함이 가득했던 식당. 반찬도 만두도 수육도 맛있었는데 윤기 좌르르 밥이 진짜 맛있었던 집”이라고 썼다.

▲ 오늘손만두의 군만두. 만두피가 얇고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

나는 찐만두와 군만두를 하나씩 넣은 포장을 들고 귀가했다. 아내와 딸은 만두가 맛있다고 하면서도 당면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아니냐고 태클(?)을 걸었다. 메신저 끝에서 당면 이야기를 했더니 진우 씨는 아주 정확하게 답을 해 주었다.

“고기, 채소, 당면을 포함한 전체 속 재료 중 당면이 차지하는 비율은 6.9%입니다. 취향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높은 비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두 맛을 품평할 만한 미각은 아니니 맛에 관해서는 더 이르지 않는다. 취향의 차이를 넘어 김진우 씨가 오늘손만두를 통해 지향하는 어떤 성취가 소멸 위기의 고장 의성과 안계를 넉넉히 감싸 안으리라는 걸 나는 믿기로 했다.

 

2021. 6. 9. 낮달


 

편집자 사표 쓰고 차린 만둣가게의 '특별한' 원칙

[경북 의성 청년 창업 이야기 ②] 의성군 안계면 '오늘손만두' 사장 김진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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