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 요구
법제처가 ‘교원 단체 및 교원노조에 가입해 있는 교원들의 실명을 국회의원에게 제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교사 명단공개 요구에 대해 교과부가 법제처에 낸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다.
법제처는 “교원노조와 교원단체 가입 교사들의 명단은 개인정보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유권 해석했고 이에 따라 교과부는 기존의 ‘명단 거부’ 태도를 바꾸어 전교조와 한국교총 소속 교사 명단을 모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교과부-법제처의 장군멍군, ‘명단공개 하라’
법제처는 이 유권해석에서 “교원들의 교원 단체 및 노조 가입과 관련된 실명 자료는 기본적 인권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어 수집이 금지된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으며, 내 자녀를 가르치는 교원이 어떤 교원단체나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는지는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라고 밝혔다. 두 부처가 벌이는 ‘장군 멍군’은 절묘한 시점의 교묘한 줄타기처럼 보인다.
나는 한나라당 조 의원에게 전교조 조합원 교사의 명단이 왜 필요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설마 거기서 범죄 전력자나 전과 사실, 또는 파렴치범이 있는가를 확인하려는 것은 아닐 터이다. 애당초 현행의 교원 임용 시스템은 사전에 그 정도쯤은 미리 걸러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명단공개라는 형식을 통해서 전교조 소속 교사를 압박하고 그를 통해서 그가 얻고자 하는 결과는 대체 무엇일까. 전교조에 대한,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이나 국민의 정서를 고려하면 명단공개라는 형식은 교사들을 위축시키는데 충분히 위력적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전교조 소속 조합원 교사는 그런 형식의 압박에 대해서 의연하리라고 생각한다. 명단공개로 빚어지는 주변의 시선이나 관심은 다소 민망할지는 모르지만, 그게 교사들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근무나 활동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동료 조합원 교사와 마찬가지로 내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조합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사다. 이 말은 내가 남다른 도덕적 인간이라거나 뭇 교사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교사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전교조나 전교조가 지향하는 ‘참교육’이나 ‘참 교사’에 미치지 못하는 평균적인 교사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낸 지난 26년의 세월 동안 나를 움직인 원동력이 그런 ‘미치지 못함’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제대로 된 교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 때로 미치지 못하거나 모자라는 가운데 그것을 깁기 위한 노력과 성찰을 통해서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전교조 소속 조합원으로 살 수 있었던 게 내가 ‘평균적인 교사’로서 살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전교조가, 전교조가 추구했던 ‘참교육’의 강령이 아니었다면, 나는 교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살았을 터이다. 여느 샐러리맨과 다르지 않은 직장인으로, 적당히 향락적 소비문화를 즐기면서.
전교조가 아니었다면 ‘분단 조국’을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안에 살아 있는 파시즘, 가증스러운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도 이르지 못했으리라. 적당히 경력을 쌓고, 안일한 삶의 조건들을 챙겨가면서 승진의 기회나 자리를 기웃거리며 살지 않았던 것은 정녕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 말이다.
전교조 덕분에 ‘고민하는 교사’가 되었다
교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그뿐 아니라,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 아이들을 가르칠 준비를 하는 젊고 야무진 후배 교사들에게서도 배운다. 동료들의 바람직한 역할을 통해 나의 역할을 배우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으로는 반면교사 삼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한 여전히 나는 배우고 익히고 있다.
나는 1989년 전교조 결성 때부터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그때, 교원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4년 반 동안 학교를 떠나 있어야 했다. 그래서 현재 근무하는 학교의 마흔 몇 명의 교사 가운데 나이로는 위에서 세 번째지만 호봉 순으로는 십몇 위로 밀린다. 이른바 ‘잃어버린 4년 반’ 덕분이다.
그런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나는 1989년을 전후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학교를 떠나 있었던 수년간의 경험이 자신을 성장케 한 거름이라고 여기며, 외부의 시선을 통해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균형감을 찾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어렵고 힘들었던 ‘법외(法外)’ 시기를 지나 전교조가 합법 조직이 된 지 10년을 넘겼다. 그러나 전교조는 변화한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학부모나 여론의 신뢰를 잃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동네북인 양 전교조를 두드리고, 그걸 두드리면 표가 나온다고 믿는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그런 변화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데도 전교조가, 전교조가 추구하는 ‘참교육’,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의 대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전히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바지런을 떠는 성실하고 든든한 교사들의 발걸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전교조 교사들이 나누는 ‘교사 십계명’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항상 내 앞의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라.
서로 입장이 다를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세 편이 있음을 고려하라.
그것은 ‘나의 입장’, ‘학생의 입장’ 그리고 ‘올바른 입장’이다.”
어쩌면 전교조가 걸어온 지난 20년의 역사는 이런 ‘기본’과 ‘원칙’을 잊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전교조는 교사와 학교의 이해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이해를 우선하면서도 타협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기 위한 올바르고, 어려운 선택을 미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나는 조 의원의 명단공개 요구가, 교과부와 법제처가 주고받은 유권해석이 이미 그 명분과 정당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떳떳하고 당당한’ 것과 명단공개를 둘러싼 이 일련의 결정들은 ‘무관’한 일일 뿐이다.
전교조의 논평대로 “각 교원은 자신의 양심에 근거해 자신이 동의하는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므로 법제처가 주장하는 사상과 신조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원이 노조나 단체에 가입하는 근본 이유부터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전교조는 “명단 제출의 근거로 주장한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와 학부모의 알권리’는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에 대한 제반 사항 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원이 어떤 단체에 가입해 있는지에 따라 교사의 교육내용이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교육받을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라고 본 것은 법적 해석이 아닌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한 것은 당연하다.
나는 당당하다. 그러나 명단공개는 ‘나의 권리’다
나는 고등학교 국어와 작문을 가르치되, 법이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친다. 내가 가입한 교원단체가 전교조이기 때문에 내 강의와 수업 내용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그 기초 사실부터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며칠 전, 내가 맡은 아이들의 학부모에게 인사 편지를 보냈다. 나는 학부모들에게 현행 입시경쟁 구도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활동 기회’를 배려해 줄 것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가족의 유대’를 잊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책 읽기’를 격려해 줄 것과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소속 교원단체를 밝히는 것은, 내가 내 양심과 신념에 따라 전교조에 가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따라서 나는 편지에서 굳이 내가 ‘전교조 소속 교사라는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물론 만약 어떤 학부모가 그걸 궁금해하면 나는 기꺼이 내가 전교조 교사라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교과부가 나의 동의 없이 나와 내 동료 교사들의 명단을 결코 호의적인 의도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 고스란히 제공하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당사자인 나 자신과 전교조가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고, ‘교과부의 명단공개는 전교조 활동을 방해하고, 전교조 조합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전교조 논평)인 까닭이다.
2010. 3. 12. 낮달
* 이 사건은 조전혁 의원과 <동아닷컴>의 참패로 끝났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위키백과>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관련 글 : ‘떼법(法)’의 복수(?)]
1. 전교조 교사들이 낸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각급학교 교원의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가입 현황과 관련한 실명 자료를 인터넷 등에 공시하거나 언론 등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라고 결정하였다.
2. 법원의 공개금지 결정에도 조전혁 의원은 전교조에 소속된 교원의 명단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였다.
3. 전교조는 법원의 공개금지 가처분 명령을 어기고 인터넷상에 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을 공개한 조전혁에 대하여 법원에 다시 명단 공개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조전혁 의원이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계속하여 명단을 공개하면 하루에 3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전교조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4. 법원의 판결에도 조전혁 의원이 명단을 삭제하지 않자 조전혁 의원과 동아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5. 조전혁 의원은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이의를 신청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하였다.
6. 헌법재판소는 2010년 4월 23일 조전혁 의원이 서울남부지방법원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 사건에서 전교조의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의 결정은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할 가능성이 없다며 각하하였다.
다음은 <위키백과>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다.
· 2011.7.26.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교조와 소속 교사 3400여 명이 조전혁 의원과 <동아닷컴>을 상대로 2010년 4월 28일에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조전혁 의원은 교사 1인당 10만 원씩, <동아닷컴>은 교사 1인당 8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
· 2011.9.29. <동아닷컴>, 1심판결에 따라 손해배상액 2억 7512만 원 중 1억 8000만 원을 전교조에 지급함. 전교조는 조전혁 의원과 동아닷컴이 지급하는 배상금을 장학재단 설립에 사용하겠다고 공표.
· 2011.9.30 현재, 명단공개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 손해배상소송은 항소심에서 계속 중이며, 조전혁 의원은 1심판결에 의한 배상금 3억여 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최종 결과는 만용을 자랑한 조전혁과 <동아닷컴>의 참패로 마감되었다. 조전혁은 결국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고, <동아닷컴>도 나머지 배상금을 지급했다. 교원노조 명단공개를 둘러싼 이 한 편의 촌극은 한 우파 국회의원과 보수 언론의 상식과 순리를 거스른 도그마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반면교사였다. [관련 글 : 법은 ‘헌법기관’도 비켜 가지 않는다] / [관련 글 : ‘죽는소리’ 마라, 그건 당신의 선택이었다]
2020.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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