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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새로 만난 학교와 아이들

by 낮달2018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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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옮긴 학교에서

▲ 새로 부임한 남학교. 80년대에 개교한 이 학교는 규모로는 도내 최대이다.

지난 2월 16일 자 인사에서 구미 시내의 한 남자고등학교로 발령받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여기가 내가 근무할 마지막 학교가 될 터이다. 1989년 여름에 타의로 떠난 학교가 남학교였으니 23년 만에 남학교로 돌아온 셈이다. 여학교에서 시작한 교직 생활, 남학교에서 마치게 되겠다.

 

23년 만에 ‘남학교’로 돌아오다

 

특별한 감회는 없다. 밤낮으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시행되는 등 입시교육의 살풍경은 지역을 가리지 않으니까. 몇 해 걸러서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수십 년 경력에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아이들은 그나마 수업하면서 이내 친해지지만, 동료 교사들과 격의가 없어지려면 꽤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까지는 집에서 차로는 15분쯤, 걸어서는 한 40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다. 일단 사는 곳의 반경 5Km을 넘지 않은 것은 행운이다. 발령받고 소집일에 학교에 다녀왔는데, 학교의 규모에 놀랐다. 학년당 12학급씩, 그것도 학급 정원이 37명쯤 되니 전임 학교에 비기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국어 교사만 열둘, 뜻밖에 젊은 교사들이 많다. 그중 연장자가 이제 갓 마흔의 남교사, 그리고 대부분 30대 초중반, 2000년대 학번의 20대 여교사도 있다. 2학년 문학 수업을 하면서 3학년 논리학 수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래도 수업은 지난해보다 많아졌다. 주당 8시간의 보충까지 해야 하니 종일 수업하기에 바쁠 공산이 크다.

 

담임은 원하지 않았고 ‘기숙사 관리’ 업무를 받았다. ‘한직’이라 배려 차원이라는 동료들의 설명이다. 그밖에 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의 3학년 담임도 맡았다. 수업(격주 일요일) 지원만 할 생각이었는데 담당자의 간청에 지고 만 결과다.

 

사내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게 많다. 이른바 ‘지역 명문’이라는 이 학교엔 인문반보다 자연반이 많다. 달리 말하면 ‘국어’와 같은 인문 교과보다는 ‘수학’ 같은 교과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뜻이다. 국어과 동료 여교사 한 분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해 주었다. 아이들이 국어 수업에 심드렁하다는 말이겠다.

▲ 늘 비어 있는 여학교와 달리 남학교 운동장은 늘 활기차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뛰고 구른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열등반 아이들도 데리고 수업한 사람이다,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가 내 답변이었다. 그렇다. 사내아이들이란 여자아이들처럼 감성적이진 않으니까, 여학교 국어 수업 같은 걸 상상하는 건 무리겠다. 그러나 그걸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긴데, 아이들은 인문, 자연 가리지 않고 죽으라고 ‘수학’만 판다고 했다. 모의고사를 치면 인문반인데도 국어보다 수학 1등급 받은 아이들 수가 더 많다니 알조다. 여학교에 비기면 머리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얘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한가, 하고 뜬금없이 농을 하고 말았다.

 

‘국어’보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

 

개학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랜만에 하는 수업은 좀 벅차다. 토요일이 휴업일이 되면서 평일 수업이 늘 수밖에 없다. 어제는 출장 교사와 수업을 교체했더니 무려 7시간을 해야 했다. 하루 평균으로 치면 다섯 시간을 훌쩍 넘는다.

▲ 역사가 짧아서일까. 학교는 비교적 깨끗하다. 대신 커서 반 찾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어떤 반은 수월하고 어떤 반은 좀 힘이 든다. 어쨌든 아이들을 껴안고 재미나지는 않더라도 지겹지 않게 수업을 이끌어야 할 책임은 내게 있다. 아이들의 협조를 구하는 당부를 여러 번 했다. 철이 난 아이들이라 비교적 잘 따라와 주는 편이다.

 

경황이 없어서 아직 교정을 다 둘러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전임 학교와 다른 점은 사내아이들의 활기가 온 학교에 넘친다는 점이다. 체육수업도 강당에서 때우는 여학교와는 달리 운동장에는 체육수업이 요란하고 점심시간에도 넓은 운동장이 비좁다. 운동하는 아이들의 운동장 점유 경쟁이 뜨겁다고 한다.

 

피가 뜨거워서일까. 몇몇 녀석들은 벌써 반바지 바람으로 교정을 쏘다니고, 교실에 들어가면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도 가끔 눈에 띈다. 반바지 차림으로 가는 녀석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젊으니까요.’하고 대답한다. ‘젊은 게 아니라 어린 거 아닌가?’하고 되물었더니 씩 웃고 만다.

 

아이들보다 더 흥미롭게 기다려지는 건 이번 일요일 입학식을 거쳐 내가 맡을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학년별로 3반씩인데 내가 맡은 반은 40여 명 가까이 된다. 방통고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대체로 30명 남짓이 학교에 나올 거라고 한다. 때를 놓친 이들이 하는 공부라 등교와 수업을 챙기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출석 미달로 제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방통고의 ‘나이 든 학생’들에 대한 기대

 

천주교 안동교구가 운영하는 야간학교의 땜빵 수업을 한 경험밖에 없지만, 이들과 꾸려가는 1년은 무척 흥미로울 듯하다. 비록 격주에나 만날 수 있긴 하지만 달고 쓴 삶을 겪어낸 이십 대에서 50대에 걸친 다양한 세대의 학생들과 엮어갈 관계에 대한 기대는 적지 않다.

 

글쎄, 어쩌면 그것은 내가 기왕에 맺고 있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도 될지도 모르겠다. 같은 학교에서 만나 이루는 아이들과의 의례적인 사제관계와는 달리, 사회인으로서 새롭게 만나게 될 방통고의 인생 선후배들과의 교유가 훨씬 더 분명하게 자신의 자리와 의미를 확인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2012. 3.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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