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맹세’로 ‘국가 정체성’을 기른다고?

by 낮달2018 2021. 3. 15.
728x90

‘국기에 대한 맹세’로 ‘국가 정체성’ 기른다는 부산 교육청

▲ 1977년 10월 18일 오후 6시 중앙청 앞의 국기하강식 장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뜬금없이 ‘국기에 대한 맹세’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부산시 교육청발 소식이다. 내용인즉슨 부산시 교육청이 관내 초중학교에 공문을 보내 매일 조회 때마다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기사  바로가기]

 

이에 대해 교원단체 등이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빼앗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육청이 밝힌 이 지침의 목적은 자못 거룩하다. 가정과 학교에서의 자기 정체성·국가 정체성 교육이 미흡해 의식행사에서 학생들의 참여 태도가 진지하지 못하니 “학생들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부산시 교육청, 매일 아침 ‘국기에 대한 맹세’ 시켜라

 

국가 정체성이나 애국심이 ‘국기에 대한 경례’나 ‘맹세’를 통해서 길러지는 것인가. 어찌 된 셈인지 이 나라 국민은 지난 세기에 일제의 지배를 받던 시기부터 무슨 ‘맹세’에 잔뜩 골병이 들었다. 일제는 1937년부터 공식화된 ‘황국신민의 서사’를 모든 조선인에게 외우기를 강요하였다. 이 ‘맹세의 말’은 각급 학교의 조례, 모든 집회에서 제창하여야 했고 모든 출판물에 이를 게재하도록 하였다.

 

‘황국신민의 서사’는 성인용과 아동용이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그걸 외우고 있는 소학생들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안쓰럽다. ‘황국신민의 서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성인용

1. 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다. 충성으로서 군국(君國)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협력(信愛協力)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련다.

 

▶ 아동용

1.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3. 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졸업한 신생 대한민국의 국민은 1968년 충남에서 보급되기 시작했다가 1972년에 전국으로 확대 시행한 ‘국기에 대한 맹세’로 또다시 ‘맹세’를 외게 되었다. 물론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기의 그것과 신생 독립국에서의 그것은 다를 터이다. 국민의례 때마다 낭송하게 된 ‘국기에 대한 맹세’ 문안도 발전했다.

 

충남에서 실시된 최초의 문안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였다. 이 문안은 1972년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

▲ 조선 신궁(神宮)에 강제 참배하는 학생들. 1920년 ⓒ 민족문제연구소

국기에 대한 경례 의식 때 왼편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자못 비장하고 경건한 목소리의 ‘맹세문’ 낭송을 들으면서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의 충일(充溢)을 느꺼워했던 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철든 이래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들으면서 그게 무슨 ‘신파’나 ‘만화’ 같아서 쓴웃음만 짓곤 했었다.

 

5공 시절, 극장의 ‘애국가 연주’는 ‘맹세’의 극장판

 

‘5공 시절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애국가를 연주하고 관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하는 풍경은 이 ’국기의 맹세’의 극장판 버전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황지우 시인은 이 암울한 현실과 그로 인한 좌절, 군사 정치 문화에 대한 냉소적 태도와 무력감 등을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노래했다. [관련 글 : 그런 ‘애국’은 싫다]

 

애국가가 연주되면서 스크린에 상영되는 ‘아름다운 조국’의 모습과 ‘을숙도에서 비상하는 새’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한 군부독재 시절의 뒤틀린 풍경이었다. 그보다 앞서 70년대 초반에 고교에 다녔던 우리들은 금요일마다 군대식 ‘국기 하기식’에 동원되었고, ‘받들어총’ 경례로 조국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7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하기식’은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행되었던 것 같다. 여섯 시 사이렌이 울리면 버스도 택시도 정지하고 행인들도 멈추어 섰다. 차도 사람도 애국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마치 경직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역사 발전은 물론 시간마저 멎어버린 시대의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말도 많던 ‘국민교육헌장’(1968년 제정)이 20여 년간 명맥을 이어오다 1994년에 사실상 폐기된 이래, 민주화 진전에 따라 ‘국기에 대한 맹세’도 그 명운을 다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2007년 이 ‘맹세’는 새롭게 부활했다.

 

지금은 어법에 어긋난 ‘자랑스런’이 ‘자랑스러운’으로 바뀌었고 ‘조국과 민족’이라는 문구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변경되었으며,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는 삭제된 형태의 새로운 형태의 맹세문이 사용되고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형식과 의례에 대한 집착도 군사문화의 일부

 

민주화는 물론이거니와 시대적 추이와 무관하게 다시 살아난 ‘국기의 맹세’는 우리 시대와 민주주의 역량의 한계를 일정하게 드러내 주는 표지인 듯하다.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여전히 온존하고 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그림자인지도 모르겠다.

 

부산시 교육청에서 시작된 이 논란이 어떤 형식으로 진전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산교육청의 이 지침은 ‘시대착오적’이며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빼앗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 앞에서 별다른 항변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지금이 군사정권 시대’냐는 시민·교원단체의 힐난도 마찬가지다. 국가 정체성이든 애국심이든 의식 때 낭송하는 ‘맹세’로 그것이 길러지고 고양된다고 믿는 것은 시대착오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형식과 의례에 집착하고 그것을 통하여 ‘나라 사랑’을 계량하려는 생각이야말로 전근대적이고, 군사 문화적 사고인 것이다.



2010. 3. 15.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