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학년도 시작, 학부모에게 편지
2005년 새로 담임을 맡은 이래 올해로 5년째 내리 담임 노릇을 하고 있다. 해마다 3월이면 짬을 봐 아이들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흔히들 말하는 가정통신이다. 며칠 전에 인쇄해 둔 편지를 봉투에 넣어 봉하고 주소 라벨을 붙여서 행정실에 넘겼다.
아이들 편에 부쳐도 되지만 늘 우편으로 부쳤다. 아무래도 그게 예의에 맞은 듯해서다. 아이들은 나중에야 담임이 부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안다. 아, 우리 담임이 집에 편지를 보냈구나……. 그리고 그게 다다. 나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모두 심상하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아이를 맡았으니 마땅히 부모들에게 고하는 것이 고작이다. 나이로 따지면 학부모 중에서 나보다 연장인 이는 없다. 그래도 어쩌나, 부모들이 아이를 맡겼으니 이러저러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급을 운영하겠다, 문제가 있으면 연락해 달라. 굳이 학교에 오지 않아도 전화 통화로도 의논할 수 있겠다.
삭막한 교실에서 교과서와 참고서만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향한 ‘포부와 계획’ 못지않게 여고 시절을 빛낼 소담스러운 ‘꿈과 희망’이 아닐까 싶다. ‘정서적 활동 기회’와 ‘가족의 유대’를 잊지 않도록 해 주시면 좋겠다…….
아이들이 커서인지 중고등학교의 학부모들은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나는 지난 네 해 동안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답장은커녕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다. 그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나는 학부모들이 내 생각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아이들에게 농조로 ‘지난 4년 동안 나는 열심히 편지를 보냈는데 너희들 부모님은 한 번도 답장을 안 주는구나’라고 하고 아이들과 같이 웃고 말았다. 며칠 후에 반장의 어머니가 화분을 하나 보내왔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셈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와 달리 중고등학교에서는 담임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초등과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교과마다 교사가 다르고, 담임이라고 해도 과목에 따라 자기 반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들쭉날쭉하다. 초등학교 때에 비기면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넉넉하게 벗어나는 셈이다.
아이들이 머리가 굵어지면서 담임의 영향력도 초등학교 같지 않다. 어떻게 보면 중등의 담임교사는 초등에 비하며 다소 사무적인 역할을 더하는 것 같다. 학부모도 은연중에 그걸 이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인가, 학부모들은 학교에 오기를 꺼린다. 그게 부담스럽기는 초등학교 때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대도시에는 어떤지 몰라도 여긴 ‘촌지’도 남의 얘기다. 중학교 근무할 때 딱 한 번 학부모로부터 양말 세트를 선물로 받았는데 집에 가서 보니까 상품권이 든 봉투가 있었다. 뭐라고 할까, 기분이 몹시 상했다. 결국 편지를 써서 돌려보내고 말았다.
편지 안에 촌지나 선물을 사양한다는 내용을 굳이 넣지 않는 이유다. 괜히 없는 일을 있는 듯이 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권장 도서 목록을 동봉하려다 말았다. 이미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편지는 같은 내용을 복사해서 보내다가 올해는 메일머지를 이용해 맨 앞에 아이 이름을 넣었다.
역시 올해도 예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로 대화나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게 내 역할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내 담임 1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 데 닷새가 걸렸다. 아이들 숫자에 비기면 진도가 빠른 셈이다. 이제 아이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들의 숨겨진 내면 같은 것도 언뜻언뜻 눈에 띄기도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고 건강하다. 이 아이들을 만난 것도 내겐 적지 않은 행운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2009. 3.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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