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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봄, 혹은 심드렁함

by 낮달2018 2021.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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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지만 심드렁한 3월

▲ 연못 가의 매화는 상기도 피지 않았다. 그래서 남도의 봄소식이 아련하다.

남부라곤 하지만 안동은 경북 북부 지역이다. 봄이 더디다는 뜻이다. 4월에도 이 지방 사람들은 겨울옷을 벗지 못한다. 연일 신문 방송으로 전해지는 꽃소식도 남의 이야기다. 섬진강 근처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제철이라던가. 그러나 주변은 온통 잿빛일 뿐이다.

 

빈 시간에 잠깐 교사 뒤편의 산기슭을 다녀왔다. 옥련지(玉蓮池) 연못가의 수달래는 아직 꽃눈조차 보이지 않고, 남녘에는 한창이라는 매화가 겨우 꽃눈을 내밀고 있다. 사진기를 들고 상기도 쌀쌀한 산 중턱을 기웃거렸다. 어디선가라도 푸른빛의, 새싹 새잎을 만나고 싶었다.

 

▲ 돌나물 새잎이 새끼손톱만큼 자랐다.

산 중턱의 낙엽 더미에서 새잎을 만났다. 이제 겨우 새끼손톱만큼 자라고 있는 돌나물이었다. 안으로 말린 도톰한 잎의 질감이 싱그럽게 마음에 닿아왔다. 3월 중순, 그러나 3월의 햇볕은 하루가 다르게 이 사위의 빛깔을 바꾸리라.

 

3월 셋째 주는 여전히 느림보 걸음이고, 딱히 그래서가 아니라, 블로그는 개점 휴업 중이다. 무엇을 쓰고 싶은 생각도 써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모든 게 심드렁하다. 사흘거리로 글을 올리던 지난해가 마치 거짓말처럼 떠오를 뿐이다.

 

어쩌다 들어와 보는 블로그, 나날이 떨어져 가는 조회 수를 무심히 바라보고 만다. 시스템 불안정 때문인지, 자기 블로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요즘 오블 상황도 그러려니 할 뿐이다. 블로그질 1년여 만에 이른 권태기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면 어떤가.

 

어떤 각성감도 없다. 퇴근하면 멍청하게 텔레비전을 보다 졸다 깨다 잠자리에 들고, 가끔 컴퓨터를 켜곤 하지만 이내 꺼버리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 잃었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다음 주로 다가온 철 이른 수학여행에 대한 느낌도 심상하기만 하다.

 

유일하게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는 시간이 살아 있는 시간이다. 눈을 반짝이면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지적 갈증이 손에 잡히고 그것을 명료히 인식하는 것 자체가 유일한 즐거움이다. 허공을 떠도는 듯한 언어들이 아이들과의 교감의 공간에 나붓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은 아주 생생하게 손에 잡히는 듯하다.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이웃들에게도 자주 드나들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오마이뉴스 블로그의 분위기도 비슷해 보인다. 이 봄을 모두가 함께 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새 교과서의 책장을 넘기면서 물러가고 있는 겨울, 그리고 이미 저만큼 다가온 봄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2008. 3.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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