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국어 능력, 변변치 않다
국립국어원의 2013 국어능력 평가 결과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이 실시한 ‘2013년 국민의 국어능력 평가’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국어능력은 ‘보통 등급과 기초 등급의 경계선’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국민의 국어능력 수준을 진단하고 국어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실시된 이번 조사는 전국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원이 직접 가구를 방문하여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문법 등 5개 영역별로 엄선된 문제를 풀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립국어원 보도자료 바로가기]
그런데 이 결과가 좀 심상찮다. 전체 평균은 1,000점 만점에 579.62점, 급별로는 우수 등급 11.9%(347명), 보통 등급 33.4%(975명), 기초 등급 45.9%(1,338명), 기초 미달 등급 8.8%(256명)다. 이 결과는 보통 이상의 국어능력을 지닌 국민은 45.3%에 불과하고 54.7%에 이르는 국민이 기초 이하의 국어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기초 등급 이하 54.7%, 특히 말하기·쓰기 능력 부족
영역별로도 편차가 적지 않다. ‘듣기, 읽기, 문법’은 보통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말하기, 쓰기’는 기초 수준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말하기’와 ‘쓰기’는 기초 이하가 각각 64%, 73.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이 분야의 능력 향상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국어능력 수준 등급의 분포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학력 군별 분포와 직업군별 분포다. 대체로 학력이 높을수록 국어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차이는 기초와 기초미달 비율에 가면 의미가 바래진다. 대학 재학 이상의 기초 및 기초미달 비율이 49%에 이르러 고학력자의 국어능력 수준도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직업군별 분포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정신노동 종사자와 기타 직업(학생과 주부 포함) 종사자가 육체 노동자보다 국어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신노동 종사자의 기초 및 기초미달 비율도 48.3%에 이르러 문서 작업이 많은 직업군의 국어능력도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글쎄, 정부 기관 그것도 국립국어원의 발표니 그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뜻밖의 결과 앞에서 좀 어리둥절해진다. 토박이말 사용자로서 자신의 국어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그런데 그 ‘능력’의 범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국어능력을 ‘의사소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거기에다가 가장 기본적인 ‘읽기’나 ‘듣기’ 능력을 고려하면 같은 한국어 사용자 누구와도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학자와 전문가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은 가외로 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할 것이고.
그런데 이번 국어원의 발표는 좀 충격적이다. 국어능력 평가 문항 예시문을 보면 대단히 수준 높은 언어 능력을 요구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췄을 때 대처 방법’이나 ‘낯선 사람이 친절을 베풀며 같이 가자고 할 때의 대처 방법’은 요령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문항이지, 대단히 고차원적인 언어 능력을 요구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읽기'와 '듣기'에 치우친 국어교육의 현주소
기본적으로 언중들이 가진 ‘말하기’나 ‘쓰기’ 능력이 ‘읽기’나 ‘듣기’보다는 더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다. 우리 국어교육도 ‘읽기’나 ‘듣기’에 치중할 뿐 ‘말하기, 쓰기’ 쪽은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말하기’를 하며 살지만, 정작 필요한 ‘말하기’에는 대부분 입을 닫아 버린다. ‘쓰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방송고 졸업을 앞두고 교지를 만들고자 지난 3년을 되돌아보는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잘 짜인 글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4, 50대 시니어들에게 이 과제는 무척 어려웠나 보다. 제대로 기승전결을 갖춘 글은 드물고, 대부분이 단순한 사실과 느낌의 기록에 그친 것이다.
지난주에는 학급별로 모여 돌아가면서 졸업의 감회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서툴지만, 백화제방(!)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양을 거듭하다가 몇 마디 말로 서둘러 자기 차례를 넘기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표현력이 뛰어난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블로그를 고정적으로 찾아오면서도 ‘댓글’ 달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거기 댓글을 다는 것은 만만찮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국어교육, ‘쓰기’ 교육의 현주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편지를 잘 쓰지 않는 이유도 멀리서 찾을 게 없는 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글을 쓸 때면 절로 손이 오그라드는 것이다. 말하기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는 걸 사람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하면서 새삼 깨닫고는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수가 넘는 국민의 언어 능력이 ‘기초 이하’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은 이 능력 평가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게 될까. 지난해에는 방송고 수업에 ‘글쓰기’를 하려고 괘선지를 잔뜩 인쇄해 두고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올해는 제대로 된 ‘쓰기’ 시간을 운영해 볼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다.
2014. 2.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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