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변하는 언어 예절, 혹은 ‘가족의 변화’
곧 설날이다. 전국에서 창궐하고 있는 구제역 때문에 설날을 전후한 ‘민족대이동’의 규모는 예년 같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은 선물을 사고, 차표를 사서 귀향을 준비한다. 그것은 이 나라 사람이라면 피하지 못하는 몸에 밴 의례다.
연휴가 수요일부터여서 주5일 근무를 하는 이들에겐 이번 설날 연휴는 닷새가 옹글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명절 순례는 다소는 고달플지 모르지만, 피를 나눈 가족의 견고한 유대와 동질성을 확인케 해 줄 것이다.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언론도 명절 쇠기와 관련된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한다.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 ‘명절날 가족 간 다툼 피하는 법’ 같은 기사와 함께 ‘친척 간 호칭, 제대로 알자’ 따위의 기사가 눈에 띈다. 대체로 결혼 후 새 가족이 생긴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족에 대한 바른 호칭을 소개하는 기사다.
가족의 범위가 점점 좁혀지는 추세와는 달리 결혼과 함께 시가나 처가의 친인척들과 만나면서 호칭을 제대로 몰라 헤맬 수도 있겠다. 기사는 시부모 앞에서 남편을 ‘오빠’라 부르지 말 것, 아내는 ‘그 사람’으로 부를 것 따위를 안내하고 있다.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유용한 정보일지도 모르겠다.
언어 예절에도 ‘성차별’이 있다?
지칭어나 호칭어에 있어서 남녀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편차가 있어 보인다. 기사 가운데 한 단락을 읽으면서 나는 잠깐 미소를 깨물었다. 글쎄, 경상도 지방에서 흔히 이르는 ‘처가 촌수는 개 촌수’라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 예절 속에까지 스며있는 뿌리 깊은 차별의 상징적 표현이다.
남자는 혼인을 해도 처가의 식구를 아내와의 서열에 따라 대접하지 않고 자신과 나이 차이로 상대하게 된다. 손위 처남이나 처삼촌, 손위 동서라도 나이가 친구같이 지낼 정도면 친구로 사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손위 처남은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처남’이라고 부른다. [☞ 기사 보기]
요즘이야 동서 간에, 또는 처남 매부 간 호칭은 ‘형님·동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내 주변의 윗사람이나 우리 벗들은 기사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호칭을 썼던 것 같다. ‘아내와의 서열’이 아니라 ‘연령 차이’가 남자의 위계를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큰 자형은 내 맏형보다 손아래고 연하였지만 나이가 비슷해 서로 ‘처남’, ‘김 서방’이라 부르며 말을 트고 친구처럼 지냈다. 큰 자형과 작은 자형도 스스럼없이 ‘동서’라 부르며 지냈지 ‘형님, 동생’ 사이로 지내지는 않았다. 형님은 항렬로 아저씨뻘[숙항(叔行)]이라도 나이가 같거나 적으면 ‘아재’라 부르면서 말을 놓고 지냈다.
결혼해 처가를 드나들면서 나도 자연스레 그런 호칭과 관계를 따랐다. 맏사위여서 형님이라 부를 처남은 없었지만, 손위의 처사촌도 존댓말을 쓰되 ‘처남’이라고 불렀다. 동갑이거나 연하인 아내의 당숙에게도 ‘아재’라 지칭할 뿐, 말은 놓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언어 예절은 그 시대의 감각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위 기사와 달리 요즘은 아내의 오빠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님’, 나이가 적으면 ‘처남’이라 부르는 게 일반화되었다. 처가 쪽 식구를 낮추어 보는 듯한 이 전근대적인 언어 예절은 평등한 호칭어로 극복된 셈이다.
남자들의 서열에서 ‘형님’으로 부르는 경우는 상대방이 (1) 손위이면서 (2) 나이가 많을 때 한한다는 원칙이 있다. 아내 여동생의 남편, 곧 손아래 동서는 ‘동서, ○ 서방’이라고 부르지만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면 ‘동서’라고 칭한다. 나이가 많더라도 서열상 손아래이므로 ‘형님’이라고 하지도 않고, 또 손아래이긴 해도 나이가 많으므로 ‘○ 서방’처럼 낮추어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언어 예절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처가에 가면 손아래 동서 둘은 나를 ‘형님’이라며 깍듯이 모신다. 글쎄, 내가 만약 그들이었다면 쉽게 ‘형님’을 입에 달 수 있었을까. 여전히 ‘장모님’이라는 호칭을 고수하는 나는 꽤 ‘보수적’인 사람 같다. 동서들은 아주 편하게 장모님을 ‘어머니’라 부르는데 그게 나쁘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우리 세대만 해도 시골에서는 완고한 예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갓 장가들었을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처제에게 말을 놓았더니 장모님께서 흉을 보시던 게 기억난다. 나는 두 처제가 결혼함과 동시에 말을 고쳤다. 그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손아래 동서는 여전히 막내 처제에게 말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듣기가 거북했는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조차 하니 나도 변한 모양이다. 요즘 나는 처제들과 아주 무던해져서 반말과 농을 섞어서 아주 편하게 얘길 나누고 있다.
남자와 달리 여자의 서열은 남편들의 서열에 따라 정해진다. 남편의 형은 ‘아주버님’으로 그 아내는 ‘형님’으로 부르되, 자기보다 나이가 어려도 그렇게 부르고 존댓말을 써야 한다. 남자의 경우에 비하면 훨씬 차별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금도가 있다. 비록 서열로는 윗사람이라도 손아랫동서가 나이가 많을 수가 있는데, 이땐 상대방이 아무리 자신을 ‘형님’으로 부르고 존대해 주더라도 자신도 그에게 ‘동서’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하여야지 하대해서는 안 된다. ‘나이는 상놈 벼슬’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에서 위계를 정하는 데 있어서 연령은 만만치 않은 잣대인 것이다.
언어 예절도 일정하게 시대 변화를 반영하였겠지만, 원칙과 실제의 차이는 적지 않다. 기사에 붙은 매우 논쟁적인 댓글이 그걸 웅변으로 증명한다. 무려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원칙론에 대한 논박이 중심인 듯하다.
‘남편 동생들한테는 존대하고, 부인 동생들한테는 반말을 하는 한국의 존대법…, 동방예의지국? 웃겨!’라고 일갈한 댓글이 인상적이다. 맞다. 초점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시동생들에게 존대가 예절이라면 처제들에게도 같은 형식의 예절이 필요하겠다.
전통 예절에서 형부가 처제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한 것은 처제는 다른 가문의 안주인이 되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거기엔 ‘출가외인’이라는 도덕률이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피를 나눈 혈족이 아닌 처제에게 ‘해라’할 권리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부모님 또래인 고모부께서 우리 형제들에겐 말을 놓으면서 누나들에겐 깎듯이 공대하시는 걸 들으면서 나는 참 헷갈렸다. 고모부는 누나들을 부를 때도 ‘김 서방댁’, ‘이 서방댁’이라며 매우 정중한 말법을 구사하셨다. 그 까닭을 나이 들면서 나는 스스로 깨쳤다. 고모부는 고모와 혼인함으로써 우리와 친척이 되었을 뿐, 우리와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 밖에도 댓글에는 논쟁적인 내용이 꽤 있다. ‘자형’이 맞는가, ‘매형’이 맞는가에서부터 손위 처남을 왜 ‘형님’으로 부를 수 없느냐는 등이 그것이다. 허철구 교수(창원대)의 “언어 예절”은 이런 경우의 시비를 간단히 정리해 준다.
“언어 예절”은 여러 가지 혼란을 바로잡고 우리말의 예절을 바로 세우고자 1992년 10월 19일에 심의·확정한 <표준화법>을 바탕으로 한 글이다. 언어 예절의 기본은 두말할 필요 없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배려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에 충실하면서 쓴 이 글은 우리의 언어생활을 새삼 돌아보게 해 준다.
언어 예절의 기본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건성 읽고 말다가 정독을 하니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게 꽤 많다. 처부모를 ‘장인, 장모’ 대신 ‘빙장(聘丈)어른, 빙모(聘母)’라 부르는 게 높임 표현인 줄 알았더니 이는 남의 처부모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자네 빙모는 안녕하신가’처럼 쓰는 말이라는 얘기다.
남에게 살아 계신 자신의 부모를 가리켜 말할 때 ‘아버님, 어머님’과 같이 ‘님’ 자를 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자신의 가족을 남에게 높여 말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버님, 어머님’은 남의 부모를 높여 말하거나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서 쓰는 말이다.
누나의 남편을 부르는 말로 경상도 지방에서는 주로 ‘자형’을 쓴다. ‘자매(姉妹)’에서 ‘자(姉)’는 ‘손위 누이’, ‘매(妹)’는 ‘손아래 누이’를 이르기 때문이므로 나는 당연히 손위 누이의 남편은 ‘자형’이 바른 표현이라고 여겨왔다. ‘매형’이라는 호칭은 앞뒤가 어긋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언어 예절”에서는 이를 뒤집는다. 예부터 써온 말은 ‘매부, 매형’이고 오히려 ‘자형’은 쓰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 ‘자형’이 많은 세력을 얻었으므로 현실을 인정하여 표준으로 삼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이 글은 전통적으로 남의 누이를 높여 부르는 말은 손위 손아래 구분 없이 ‘매씨(妹氏)’라고 쓴다는 점을 든다.
매씨가 손위, 손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쓰듯이 형수를 가리키는 ‘수(嫂)’도 ‘제수(弟嫂), 계수(季嫂)’에도 쓰인다. 따라서 단순히 한자의 뜻에 얽매여 ‘매부, 매형’이 잘못된 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말 ‘누이’가 손위, 손아래 모두를 가리키느냐, 손아래만 가리키는 말이냐를 두고 벌이는 논쟁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며칠 전에 보도된 기사가 이런 우리의 논의를 한갓진 얘기로 만들어 버린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의 범위’에 대한 통계조사 결과, 두 명 중 한 명이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이 아니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배우자의 형제자매가 가족이 아니라고 응답한 이는 셋 중 둘이란다.
‘가족’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으로 풀이한다. 배우자의 부모나 형제자매를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족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약화를 보여주는 것일까.
글쎄, 그러나 나이 들면서 친부모와 처부모를 달리 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훨씬 커졌다. 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홀로 남은 장모님 생각이 더욱 애틋해진 것이다. 같이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친부모와 처부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계는 흐릿해지는지도 모른다. [관련 글 : ‘처부모’와 ‘친부모’가 다르지 않다?]
유난히 추웠던 날씨가 설날 전후해 풀린다고 한다. 설날, 성묘를 마치고 장모님을 뵈러 간다고 생각하면서 아내와 내가 나눈 세월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마음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친부모께 못다 한 봉양을 처부모께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새록새록 드는 것은 한 살 더 먹게 될 나이가 선사하는 마음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부모께 아내를 가리켜 말할 때
부모에게 아내를 가리켜 말할 때는 ‘○○ 어미(어멈)’이라고 하고, 아이가 없으면 ‘이 사람, 그 사람, 저 사람’으로 쓴다. 부모 앞에서는 아내를 낮추어야 하므로 ‘○○ 엄마’라고 하지는 않으며 ‘집사람, 안사람, 처’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걔, ○○[이름]’라고까지 낮추어서도 안 된다.
처남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
아내의 오빠의 아내(손위 처남의 댁)를 호칭하는 말은‘아주머니’이다.당사자 외 남에게 가리켜 말할 때는‘처남의 댁’등으로 한다.아내의 남동생의 아내(손아래 처남의 댁)을 호칭하는 말은‘처남의 댁’이다.
처남의 댁은 시누이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호칭어가 없었다.그러나 역시 시속이 변하면서 호칭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댁’하는 것은‘충주댁,안성댁’하듯이 다소 낮추는 느낌이 있어‘처남의 댁’이라는 호칭어가 손위 처남의 부인에게는 적당치 않다.그래서 일부 지방에서 쓰는‘아주머니’를 표준으로 정한 것이다.
새해 인사, ‘절 받으세요’는 결례
새해 인사로 가장 알맞은 것은“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이다.상대에 따라“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게”, “새해 복 많이 받아라”등으로 쓸 수 있다.이 말은 집안,이웃,학교 등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인사말이다.
세배할 때는 절하는 것 자체가 인사이기 때문에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와 같은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공손히 절만 하면 그것으로 인사를 다 한 것이며 어른의 덕담이 있기를 기다리면 된다.
한편 절하겠다는 뜻으로 어른에게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예의가 아니다. 가만히 서 있다가 어른이 자리에 앉으시면 말없이 그냥 공손히 절을 하는 것이 옳다. 다만 나이 차가 많지 않아 상대방이 절 받기를 사양하면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덕담은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게”, “소원 성취하게”가 가장 일반적이다. 이렇게 어른의 덕담이 있은 뒤에 “과세 안녕하십니까?”와 같이 말로 인사를 한다.
이때 특별히 “만수무강하십시오”,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와 같이 건강과 관련된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의도와 달리 상대방에게 ‘내가 그렇게 늙었나?’ 하는 서글픔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등산 많이 하세요”와 같이 기원을 담은 인사말이 좋다.
- 허철구 “언어 예절” 중에서 발췌
2011. 1.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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