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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임 과잉’?, ‘기사님 식당’과 ‘전화 오셨습니다’

by 낮달2018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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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데나 ‘높임’이 쓰이는 ‘높임 과잉’의 시대

▲ 언젠가부터 '기사 식당'은 '기사님 식당'이 되었다.

대량소비시대인 우리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가 ‘과잉’이 아닌가 싶다. 재화도 넘치고 그 공급과 소비도 넘친다. 그 소비의 방식도 넘친다. 흔히들 ‘냄비’로도 비유되는, 사람들의 특정 문제에 대한 천착은 온갖 방면의 붐을 낳았다. 아이들 교육도, 운동도 웰빙도 사람들은 마치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장사꾼이 넘치면서 일어나는 변화 중의 하나가 친절이다. ‘친절’은 ‘서비스의 기본’에서 ‘생존 전략’으로까지 평가절상되는 데 이르렀다. 당연히 이에 따르는 말의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전화번호를 물으려 114에 전화하면 안내원은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응대하고 집을 나서면 우리는 곳곳에서 ‘손님’으로 ‘고객님’으로 ‘아무개님’으로 불린다.

 

시장과 슈퍼마켓뿐 아니라 은행과 병원을 가도 우리는 ‘고객님’이다. 그러다 보니 엔간히 높여서는 성이 차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과잉 언어’의 일반화다. 경우는 다르지만 ‘원조 진짜 순 참기름’은 그런 ‘과잉’의 극단적 예가 될 수 있겠다. 그게 사이비, 가짜 범람에 따른 결과라 할지라도 말이다.

 

‘대대장님실’과 ‘기사님식당’

 

군대 때 얘기니 오래된 일이다. 대대 인사과 행정병이었던 나는 정확하게 대대장의 사무실을 ‘대대장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대부분 장교나 부사관들은 ‘대대장님실’이라고 그 방에까지 ‘대대장 예우’를 다한 것이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게 넘치는 존경심의 결과인데다 병 주제에 장교들의 언어습관까지 나무랄 형편이 아니어서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없어서 기업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말이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굴지의 재벌기업이라면 ‘사장’과 ‘회장’을 고작 대대장에 비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거기서 ‘회장님실’이라 부르지 않으리라는 걸 믿는 것은 그것이 사회 일반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밥을 파는 식당의 이름이 ‘기사식당’에서 ‘기사님식당’으로 바뀌는 추세인 듯하다. 70년대만 해도 대부분 ‘운전사 식당’이란 이름이 일반적이었다. 한데 모인 여러 개의 식당이 나름대로 차별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에서인지 모르지만, 그건 ‘대대장님실’과 진배없어 보인다. 비슷한 ‘높임의 과잉’인 것이다. 물론 고객을 공대하고자 하는 선의까지 나무라기는 어렵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그 과잉은 계속된다. 대체로 높임의 과잉이 일어나는 데는 우리말의 높임말 체계도 한몫을 한다. ‘있다’의 특수 어휘라 할 수 있는 ‘계시다’는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아무데나 마구 쓰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 무슨 고민이 계십니까?(×)

-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고민이 계십니까?’, ‘전화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화 왔다’고 해야 할 자리에서 ‘전화 오셨다’고 쓰기도 한다. 전화를 한 이는 사람이니 ‘전화하시다’로 쓸 수 있지만, 전화는 그냥 사물이므로 ‘왔다’고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전화 오셔서’, ‘전화 오시면’ 등으로 쓰는 예가 적지 않다.

 

자기의 살아 계신 부모를 가리켜 말하면서 “저의 아버님이···…, 저의 어머님이…···”처럼 ‘님’자를 붙여 말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잘못이다. 자기 가족을 남에게 높여 말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님, 어머님’은 남의 부모를 높여 말하거나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서 쓰는 말이다.

 

한편 요즘 우스개 중에 아들은 나중에 ‘사돈’이 된다고 하더니 ‘장인, 장모’를 높인답시고 ‘빙장 어른, 빙모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남의 처부모를 높여 부르는 말이니 삼갈 일이다(이는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장인’은 시대에 맞게 ‘아버님’으로 ‘장모’는 ‘어머님’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겠다.

 

한편엔 높임의 ‘과잉’이 있지만, 반대편에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욕설’이 있다. 한 방송의 보고에 따르면 청소년 사이에 이미 욕은 ‘중독’ 상태라고 한다. 과잉 높임의 이면에도 만만찮은 표리부동이 있기 마련이니 오늘날 말의 현실은 어지럽기만 하다.

 

 

2009. 3.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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