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논란 낱말 ‘닭도리탕’
얼마 전, 작가 이외수가 ‘닭도리탕’은 일본식 이름이 아니라는 의견을 트위터에 올려 논란이 되었다. 그는 한 누리꾼의 주장을 좇아 ‘상식의 허실’이라며 이 주장에 동의를 표시한 것이다. 예의 누리꾼이 편 주장의 근거는 “외보도리(오이를 잘게 썰어 소금에 절인 뒤 기름에 볶아 만든 음식)에서 보듯이 ‘도리’는 순수 우리말로 ‘잘라 내다’라는 말”이라는 것이다.
일백수 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유명인사의 의견이니 논란이 아니 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이 공식 트위터를 통해 논란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 ‘とり’에서 온 것이라 보고, 이를 ‘닭볶음탕’으로 다듬었습니다. ‘도리’의 어원에 대해 다른 견해가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분명한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닭도리탕’ : ‘닭볶음탕’
국립국어원의 공식 입장은 완곡한 반대로 보인다. ‘완곡’인 까닭이야 딱 부러지게 ‘기다, 아니다’를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언론이 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중계하는 데 그쳤는데 유독 <조선일보>만은 “이외수 ‘닭도리탕은 순우리말’ 주장했다가 망신”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일본어에도 까막눈일 뿐 아니라 이 말의 어원에 관해서 어떤 의견을 낼 만한 어학적 식견이 없는 나로서는 상반된 두 의견 어디에도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그러나 이외수가 인용한 주장을 낸 누리꾼이 그 방면의 전문가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니 일단은 국립국어원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따르는 게 옳지 않나 여길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 다음 아고라에 오른 한 누리꾼의 의견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외수 님의 닭도리 정보는 잘못된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오늘까지 무려 8백 개 가까운 댓글이 붙었고 추천과 반대가 각각 574, 331이다.
이 글은 이외수가 알린 정보가 사실과 다른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든 것은 이외수가 중계한 주장의 근거로 사용된 예의 ‘외보도리’다. ‘도리’가 ‘잘라내다’라는 뜻이라고 한 데 대해 이 누리꾼은 ‘외보도리’가 ‘외 + 보도리’의 합성어로 보고 ‘외’는 ‘오이’의 줄임말이고(사실 내 어릴 적에는 오이를 ‘물외’라고 했다) ‘보도리’는 ‘작은 것을 잘게 쪼갠 것을 의미하는 일본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누리꾼은 이 주장의 근거로 ‘닭은 일본어의 정식 명칭으로 니와도리’인데 줄여서 ‘도리’라고 한다는 사실을 든다. 우리나라에서 ‘도리’를 자꾸 ‘새’라고 하는데 ‘니와도리’에서 ‘니와’ 대신에 ‘닭’을 붙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든 일본어가 사실과 부합한다면 가장 신빙성 있는 의견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이의 주장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일본어’를 전혀 모르니 말이다. 궁금한 것은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왜 국어원의 연구자들은 몰랐는가다.
‘토시’는 일본말이 아니라 우리말이다
최근에 나는 이 ‘닭도리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우로 잠깐 헷갈렸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토시’가 일본말이고 이는 ‘덧소매’로 순화해 써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온라인 신문의 기사에서 ‘토시’가 어엿이 쓰인 사실을 발견하고 머리를 갸웃거려야 했다.
혹시나 해서 국어원 누리집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세상에, ‘토시’는 우리말이란다. 인터넷에서 ‘덧소매’를 찾아보았더니 내가 알고 있었던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동료 일본어 교사에게 물었더니 일본어로 ‘토시’라는 단어는 ‘년(年)’, 즉 ‘나이’라는 의미 정도로 쓰이는 말이란다.
약간 홀린 느낌이 있었다. ‘민소매’로 순화해 쓰는 일본어 ‘나시’에서 ‘시’가 소매라는 뜻인가 보다 했는데 동료의 설명을 듣고 그것도 내 임의의 추측일 뿐이었음을 알았다. 동료는 ‘나시’가 ‘없다(無)’의 뜻이 있는데 민소매를 말하는 ‘나시’는 ‘소데나시(袖無し)’를 줄인 말인 것 같다고 했다.
잔뜩 헷갈린 나는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국어생활 종합상담(온라인 가나다)’에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달렸다.
“안녕하십니까?
말씀하신 대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토시’를 순우리말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한민족 언어 정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민족 언어 정보’에서 제시하고 있는 설명을 아래에 제시해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토시’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은 한자로 된 ‘套手’이다. ‘套手’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17세기 말에 나온 중국어 대역 어휘집이다. 따라서 ‘套手’가 중국어에서 온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套手’의 한글 표기로는 ‘토슈, 토시, 토수’가 있었으나, ‘토시’로 정착되었다. ‘套手’의 한국식 독음이 ‘투수’이었을 것을 감안하면, ‘토슈, 토시, 토수’는 ‘套手’의 한국 한자음식의 발음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것이다.
또, ‘토슈, 토시, 토수’의 한자 표기가 ‘暖韝, 手套, 吐手, 套手’로 다양하다는 것도 ‘토시’라는 단어가 한자 표기를 직접 한글로 읽었다기보다는 ‘토슈’와 같은 외래 단어를 한글로,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현대에 ‘토시’는 대부분 소매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혹은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팔에 덧대는 의복의 한 장구로만 인식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매사냥을 위해서나, 팔이 옷에 쓸리지 않게 하기 위해 등나무로 만든 것도 ‘토시’였으므로, 현대에 와서 그 쓰임이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게 말하자면 ‘상식의 허실’일지도 모르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는 ‘토시’의 뜻은 네 가지다. ① 추위를 막기 위한 것, ② 일할 때 소매를 가뜬하게 하기 위해 끼는 것, ③ 사냥꾼들이 매를 앉히는 것, ④ 기계에 덧씌우는 것 등이 그것인데, 우리가 흔히 쓰는 뜻은 ②이다. 관공서나 은행의 사무원들이 양복 소매에 덧씌워 끼는 물건 말이다.
순화어를 찾아보았더니 레그 워머, 머프, 앵클 워머 등의 외래어를 각각 다리토시, (방한)토시, 발목토시 등으로 순화해 놓았다. 내가 지지난 겨울부터 자주 발목에다 신는 방한 용구도 ‘발목토시’라 부르면 되겠다. 사실은 그렇게 부르면서도 뭔가 찜찜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토시’의 뜻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 것, ‘사냥꾼들이 매를 팔에 앉혀 가지고 다니기 위하여 팔뚝에 끼는 물건.’이다. 수년 전에 공중파에서 방영한 ‘매잡이’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본 가죽 토시가 기억난다. 가죽 토시 가운데 ‘검은담비의 털가죽을 붙여 만든 토시’는 ‘잘토시’라고 부른다고 한다.
매사냥이 끊긴 지금, ‘토시’는 옷의 소매를 보호하기 위해 끼거나 방한을 위해서 목이나 발목, 다리 등에 두르는 방한 용구로 이어지고 있다. ‘토시’가 일본말이므로 ‘덧소매’로 순화해 써야 한다고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나는 본의 아니게 엉터리를 가르친 셈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친구가 있으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2012. 2.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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