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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 ‘세배’로도 충분하다

by 낮달2018 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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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께 드리는 새해 인사, ‘인사말’ 없어도 된다

▲ 세배만으로도 새해 인사는 충분하므로 굳이 인사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 부천시 블로그

바야흐로 ‘말’이 넘치는 시대다. 말이 넘치면서 쓸데없는 존댓말도 덩달아 넘친다. 이 말의 범람이 드러나지 않게 나누는 사람들 간의 정리조차 헤프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아니 해도 좋을 말을 굳이 하다 보니 은근히 나누는 교감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형식처럼 느껴지게 한다.

 

“다른 인사말은 필요 없다. 그냥 절만 하여라.”

 

설날에 어른들께 세배하려는 아이들더러 내가 굳이 한 마디를 건넨 이유다. 조그만 녀석들이 세배하면서 잔망스럽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니 ‘올해도 건강하세요.’ 같은 인사를 어른처럼 건네는 걸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세배가 곧 ‘새해 인사’다

 

아이들은 내 말에 담긴 뜻을 잘 헤아리지 못했는지 세배를 하고 나더니, 다시 또 ‘새해 어쩌고’ 하면서 구시렁댄다. 아이들은 말없이 절만 하는 걸 어색하게 여기는 것일까. 하긴 요즘 아이들에겐 무언으로 마음을 전하거나 예를 갖추어 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세배를 하는 것만으로도 새해 인사는 충분해. 어른께는 다소곳이 절만 해도 되니까 앞으로 따로 인사하지 않도록 해라.”

 

아이들은 입을 모아 대답을 했지만, 글쎄다. 내 말뜻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는 달리 제 할 말은 다 하고 자란다. 어른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훈련 대신 자기표현에는 적극적이게끔 길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어릴 적엔 달랐다. 세배드린다고 어른 앞에 서면 쑥스러워 넙죽 절을 하는 게 고작일 뿐이었다. 감히 ‘새해 복’과 ‘건강’, ‘만수무강’ 따위를 입에 올리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그저 절하고 난 뒤에 무릎을 꿇고 어른이 해 주시는 덕담을 다소곳이 듣는 게 다였기 때문이다.

 

우리말 인사말은 어법으로 따지면 불합리한 점이 적지 않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는 말할 것도 없고, ‘안녕히 계십시오’ 같은 흔한 인사도 사실은 명령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분명 윗사람에게 드리는 말인데도 그게 다분히 명령조를 띠고 있으니 따져 보면 민망한 인사말이다.

 

의례적인 인사보단 마음을

 

국립국어원의 <표준 언어 예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도 그 점이다. 세배에 앞서 ‘절 받으세요.’나 ‘앉으세요.’ 따위의 말을 함부로 해서 안 되는 까닭도 같다. 명령조의 말은 결례가 되니 상대가 좌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얌전히 절을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인사말을 아주 못하는 건 아니다. ‘어른의 덕담이 곧이어 나오지 않을 때나 덕담이 있은 뒤’에는 적당한 인사말로 존경의 뜻을 표할 수 있다. 유의할 점은 ‘상대방의 처지에 맞게’다. 이때도 의례적인 인사보다는 실질적인 내용을 담는 게 좋다.

 

건강을 비는 인사는 조심해야 한다. ‘만수무강하세요’나 ‘장수하세요’는 인사말로 적당하지 않다. 지나치게 의례적인 인사말이어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데다가 건강하지 못한 상대일 경우, 이런 인사를 꺼리기 때문이다.

 

지병이 있어 편찮은 노인들도 세배받기를 꺼린다. 아픈 사람이 절을 받으면 좋지 않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도 굳이 ‘건강’ 관련 인사를 받는 게 마뜩지만은 않다. 아랫사람으로부터 그런 걱정을 듣는 건 고맙기보단 불편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세배는 새로 한 해를 맞으면서 새해의 기원과 다짐을 따뜻하게 나누는 의례다. 그것은 말로써 짓는 인사라기보다는 절을 하고 나서 마음으로 나누는 안부다. 진실한 마음을 담아 정중하게 올리는 큰절로도 인사는 이미 나누어진 것이다. 공연히 서툰 인사말로 웃어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다.

연말 연시


집안에서 친척, 친지에 대한 신년 인사는 세배라는 형식을 통해서 하게 된다. 요사이 젊은 층에서는 세배를 할 때 절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어른에게 으레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말은 불필요한 말이고 좋지 않은 말이다. 이런 명령조의 말을 하는 것은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절 받는 어른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말없이 그냥 절을 하는 것이 공손하다. 다만 나이 차가 많지 않은 어른이 절 받기를 사양할 때 권하는 의미로 ‘절 받으세요’나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다.

세배는 원칙적으로 절하는 자체가 인사이기 때문에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절만 하면 그걸로 인사를 한 것이며 어른의 덕담이 있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 예절이다.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덕담은 ‘소원 성취하게.’가 정형이라 할 만하다. 이 밖에 상대방의 처지에 맞는 덕담을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장가 안 간 총각에게 장가가기를 빌어 주는 덕담으로 ‘자네 올해 장가들었다지.’ 하고 이미 이루어진 일인 것처럼 말했지만 오늘날에도 이를 표준으로 삼기는 어렵고 ‘자네 올해는 장가가야지.’ 정도로 덕담을 하는 것이 좋다.

절을 한 뒤 어른의 덕담이 곧이어 나오지 않을 때나 덕담이 있은 뒤에 어른께 말로 인사를 할 수 있다. 이때 상대방의 처지에 맞게, 이를테면 ‘올해는 두루두루 여행 많이 다니세요.’나 ‘올해는 테니스 많이 치세요.’와 같은 기원을 담은 인사말을 할 수 있다. 요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윗사람에게 건강을 비는 인사를 많이 하는데 이때 듣는 이의 기분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건강을 비는 말이 오히려 듣는 이에게 ‘내가 벌써 건강을 걱정해야 할 만큼 늙었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만수무강하십시오.’나 ‘오래오래 사세요.’ 같은 인사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어른에게 서글픔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 말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표준 언어 예절>(국립국어원, 2012) ‘특정한 때의 인사말’ 중에서

 

 

2015. 2.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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