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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과서와 박근혜 교과서, 혹은 ‘교육부의 쓸모’

by 낮달2018 202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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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초등 교과서에 한자 병기 시도

▲ 한글 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관철하려 한다 .

기어코 정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倂記)하려는 정책을 관철하려는 모양이다. 교육부는 2019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전 교과서(국어 제외) 일부 단어의 한자음과 뜻을 적는 ‘한자병기’를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 교과서에 병기할 수 있는 ‘초등용 한자 목록 300자’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육부의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문제는 2014년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시안)에서 “초등학교에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병기의 확대를 검토한다.”라고 밝히면서부터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에 한글시민단체와 교육단체 등은 한자병기 정책 폐기 운동으로 맞섰다.[관련 기사 : 교과서 한자병기 ‘이해력’ 신장? 사교육 아니고?]

 

교육부,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2019년부터 적용

 

이듬해 9월, 교육부가 확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한자병기 확대 관련 문구를 삭제하고 이를 2016년 말로 연기하면서 이 문제는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초등학교 수준에 맞는 한자 300자 선별해 국어를 제외한 5·6학년 모든 교과서에 2019년부터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를 ‘한글전용 문자 정책을 파괴하는 것’인데다 ‘국어기본법 및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위배’된다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올해 들어 1월 말에는 전국의 교육대학 교수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려는 정부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서울교대, 경인교대, 춘천교대 등 전국 10개 교대의 교수 196명은 성명을 통해 “교육부는 근거도 없고 불합리한 ‘초등 교과서 한자 표기 목록 300자’ 공표를 즉각 중단하라”라고 밝혔다. 이들은 “1970년 이후 한글 전용 초등 교과서와 한글 전용 교육으로 우리 학생들이 거의 세계 최상위 수준의 문해력을 갖게 됐는데도 정부가 초등 교과서에 어려운 한자를 표기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교대 교수들의 움직임은 2015년 9월에 전국 12개 교육대학교 교수 410명이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힌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이 초등교사를 양성하고 있는 교육대학 교수들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지만 정작 교육부(정부)는 오불관언이다.

 

이들이 한자병기를 반대하는 근거는 굳이 밝힐 필요도 없다. 한글 전용 정책을 뒤집는 한자 교육에 관한 한 지금까지 한글 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대 논거는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온 일이니 말이다.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교육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한자 알아야 한자어 이해’는 통념일 뿐

 

한글전용이 이미 우리의 언어생활에 정착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세대들에게 한자는 이미 영어나 일어 같은 외국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 기대어 한자를 모르면 한자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통념은 살아 있다.

 

수십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 통념에 기댄 한자 옹호론자는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한글문화연대에서 초등 교과서를 연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구성 한자의 뜻과 연결해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는 전체의 32%에 그쳤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관련 자료]

 

한글문화연대에서는 한자 어원과 맺는 상관성에 따라 한자어를 크게 네 무리로 나눴다. ‘부모’(아비 부, 어미 모)처럼 어원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 ‘사회’(모일 사, 모일 회)처럼 어원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 ‘헌법’(법 헌, 법 법)처럼 어원이 동어반복인 한자어, ‘우주’(집 우, 집 주)처럼 어원 상관성이 없는 한자어 네 가지다.

 

초등 3~6학년 국어, 사회, 과학,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11,000여 개 한자 말을 구성 한자의 뜻과 연결해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는 위 통념이 통념일 뿐이라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한자 말 가운데서 한자 어원과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는 16%, 어원이 동어반복인 한자어는 46%, 상관성이 전혀 없는 한자어도 6%를 차지한 것이다.

 

또한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의 구성 한자 가운데 중고교용 기초한자 1,800자에 포함되지 않은 한자가 620자나 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는 한자를 알아야 한자어를 이해한다는 통념을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자료인 셈이다.

 

‘박근혜 교과서’, 혹은 교육부의 ‘쓸모’

▲ ‘박근혜 교과서’로도 불리는 국정 중고교 역사 교과서의 현장 검토본

비단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문제만은 아니다.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 간신히 만들었지만 정작 오류투성이의 국정 역사 교과서를 교육부는 끝내 학교에 내보내겠다고 한다. 국립학교에서마저 채택을 거부하고 있는 현실에조차 눈을 감은 것이다.

 

교육부 무용론, 또는 교육부 폐지론이 입길에 오르내릴 이유는 차고 넘친다. 국가의 교육을 관장하는 정책부서로서 현실에 대한 이해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힘의 향방에 따라 운신하는 게 고작인 교육부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다.

▲ 한글의 서머힐로 불렸던 경남 거창고등학교. 원내는 전성은 교장

교사 운동이 막 태동할 무렵인 1980년대 이야기다. 당시 경남의 거창고는 학생 자치활동과 교사의 기본권을 인정하는 등 열린 학교를 운영함으로써 이른바 ’한국의 서머힐(Summerhill)’이라 불리고 있을 때였다. 선진지 견학이라 하여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거창고를 찾는 일이 잦았다.

 

이때, 방문 교사들이 학교 운영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자, 그 당시 학교장의 답변이 두고두고 교사들에게 회자되었다. 뒷날, 참여정부 때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게 되는 전성은 교장의 답변은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간단해요. 문교부(당시 교육부의 이름)에서 하라는 것 반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답은 간단했지만, 서슬 푸른 신군부 집권 당시에 어느 교장이 정부 지침의 반대로 갈 수 있었을까. 전성은 교장의 일갈은 방법론이 아니라, 당시 교육부 운영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걸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언 반세기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교육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별로 발전한 게 없다. 국가백년대계인 교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를 폐지할 순 없는 일이지만 그걸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것은 그만큼 교육부와 그 관료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장관 벼슬이 그리 대단한 자리인지 역대 장관들은 소신과는 무관하게 임명권자의 뜻을 따라 납작 엎드렸다가 물러나곤 했는데 이준식 장관도 거기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직무가 정지된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는가, 아니면 풍비박산이 된 여당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소관부처의 장으로서의 재량도 권한의 행사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2017. 2.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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