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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한글날 관련 글 모음] 562돌부터 569돌까지

by 낮달2018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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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돌 한글날] ‘가짜’가 ‘진짜’처럼 쓰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각각 우리말 교육 프로그램을 하나씩 방영하고 있다 .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는 각각 시청자들의 바른 언어생활을 이끌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고 있다. ‘바른 말 고운 말’(KBS)과 ‘우리말 나들이’(MBC)가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모두 아나운서가 진행한다. 그러나 양 방송사가 이런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과 정작 아나운서들이 쓰는 언어는 별개의 것이다.

 

바른말·고운 말, 구호와 실제 사이

 

일간지마다 제각각 이런 말글 관련 꼭지를 하나씩 두고 있는 것이 지면에 쓰이는 언어가 모범적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쪽에선 바른 말글 생활을 강조한다고 해도 정작 그것을 기사나 방송에서 실현하는 건 절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글날이다. 신문과 방송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날을 기리고 있지만, 어쩐지 그게 의례적인 체면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바른 말글살이란 구호가 아니라 실제 언어생활에서 제대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바른말 타령을 하는데도 다른 쪽에선 오불관언인 형국이 좀 많은가 말이다.

 

‘한가위 되세요’ 따위의 엉터리 우리말은 가히 정착 단계라고 우겨도 될 정도다. 지난 한가위에 돌아본 우리 주변의 풍경[관련 글 : “‘한가위 되세요’, 진보 진영의 동참(?)”]은 이제 그걸 되뇌는 것만으로는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현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는 걸 증빙한다.

 

한동안 바른 말글 쓰기의 모범을 보여 왔던 <한겨레>마저 제호 아래에 ‘한가위 되세요’를 당당하게 붙이고, 진보 매체와 시민사회단체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이미 ‘가짜’가 진짜처럼 통용될 만큼 대세가 바뀌었다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블로그에 ‘가겨 찻집’이라는 방을 내고 거기에 우리 말글살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게 2007년이다. 두 번째 기사로 쓴 글이 “무슨 말이 이래? -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들”이다. 고등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식, 영어식 표현을 다룬 것이었다.

 

영어를 직역한 표현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같은 표현은 이제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준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가리지 않고 쓰이는 표현으로 ‘-에 다름 아니다’가 있다. 이는 일본어 번역 투의 표현인데 그게 자주 쓰이는 이유는 그렇게 쓰면 멋지다고 여기는 심리적 태도가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다름 아니다’로 검색하면 ‘뉴스’에서만 해도 이런 표현을 쓴 기사가 줄지어 뜬다. 매체도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일간지 사설에도, 정당의 성명서에도, 정치인의 간담회에서도, ‘다름 아니다’는 넘친다. (아래 기사의 출처는 생략했다.)

 

·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교과서 전쟁’은 유신 시대의 유물을 되살려냄으로써 부친을 역사적으로 복권시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 정권 말기 미래권력으로 권력이 분산되는 양상 속에서 대통령 권력을 뒷받침할 인사들을 국회에 ‘내리꽂기’ 위해 전략공천을 활용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 이는 심하게 말하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합의하에 병합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는 나라를 빼앗긴 것이지, 다른 나라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혼돈으로 몰고 갔던 백색 테러가 고영주 이사장의 입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야당 의원들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고, 사법부 내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는 고영주 이사장의 극단적 언사는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가려는 이적 선동에 다름 아니다.

· 새누리당 의원들이 거듭 아들 문제를 거론하자 “이미 국가기관이 여섯 번 확인했고 병무청장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 사안인데, 국가기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대추구’라는 근사한 용어로 지칭하지만, 토지가치는 무릇 공동체의 소산이다. 실은 도시 공동체가 이뤄낸 가치를 소유권자가 가로채는 일에 다름 아니다.

· LGBT와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간증’하는 것은 그들에게 동성애를 그만두지 않으면 지옥에 갈 거라고 떠들며 LGBT를 괴롭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그런 점에서 현 정권의 ‘사이버 감청’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언론장악과 사전 검열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 수년째 반복해 온 경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북한이 당장 10월 중에 로켓 발사나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미중 양국이 한반도 긴장 완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행동 대안 없이 단순한 경고 메시지만 표명한 점은 우리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기를 포기하고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의 성실한 ‘거수기’가 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 그것은 오로지 눈앞의 지지율과 선거 승리를 위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박을 강행한 것에 다름 아니다.

 

언중들의 바른 말글살이를 오도하는 이러한 잘못된 표현이 신문과 방송 매체를 통해서 아무 반성 없이 유포되는 한 ‘한글날’과 한글을 기리는 이 연례행사는 행사에 그칠 뿐이다. 8년 전에 쓴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569돌 한글날을 보낸다.

 

 

2015. 10. 9.


566돌 한글날, “한글, 함께 누리다”

▲ 올 한글 주간의 주제어는 ‘한글 함께 누리다’다.  ⓒ  한글날 공식 누리집

길거리의 이정표에는 한자가 나란히 씌어 있지만, 우리 시대가 ‘한글 시대’라는 걸 부정할 도리는 없어 보인다. 국어기본법을 고쳐 ‘국어’를 ‘한글과 한자로 표기되는 한국어’로, ‘공문서에 한자를 병기해야 한다’로 바꾸려는 잘난 선량들의 시도도 결국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만큼.

 

‘한글 시대’는 대세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한글 전용이냐 국한 혼용이냐며 다투기도 했지만, 민간에서 국한문 혼용을 계속하는 동안에도 한글 전용은 교과서와 공문서가 선도해 나가면서 대세가 되었던 것 같다. 일간지와 잡지 따위에 한글 시대를 연 건 역시 <한겨레신문>의 창간이었다.

 

1988년에 창간된 <한겨레>는 그야말로 한글 전용뿐 아니라, ‘구태의연’하게 쓰고 있던 ‘세로쓰기’를 없애는 데 앞장섰다. 창간 20년을 넘긴 <한겨레>는 여전히 ‘한글 전용’의 창간 정신을 지켜가고 있다. 정말로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이 신문은 ‘한자 병기’도 피한다. 그리고 그것이 독해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일간지는 한자를 그야말로 ‘애용’한다. 일간지들이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자를 살펴보면 대체로 ‘美日(미일)’, ‘中日(중일)’ 따위의 나라 이름이거나 ‘安(안)’이니 ‘文(문)이니 하는 주요 인사들의 성씨가 고작이다.

▲ 인터넷이든 종이신문이든 한문 섞어 쓰기는 관행이다.

중앙 일간지 가운데 대부분은 제호도 한글로 바뀌었으나 아직도 구태의연, 한자로 된 옛 제호를 버리지 않고 있는 신문도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다. 조중동 3형제 가운데 <중앙일보>만이 한글 제호를 쓰고 있는데 글쎄, 그게 ‘보수 원조’, 조선과 동아의 자존심이고 고집일까. 대구·경북 지역의 ‘작은 조선일보’라 불리는 <매일신문>도 그 말석에 이름을 디밀고 있다.

 

정작 두 신문의 인터넷판은 ‘조선닷컴’과 ‘동아닷컴’, 아예 영자를 제호로 쓰고 있다. 종이 신문은 화려한 국한문 혼용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첨단의 글로벌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제호와 본문에다 한자를 쓰는 지면과 인터넷의 영자 화면 사이의 부조화는 이들 신문이 벗지 못하는 시대 지체(遲滯)처럼 보인다.

 

기껏해야 나라 이름이나 개인의 성씨, 여야(與野) 따위나 한자로 표기하는 게 이른바 ‘가독성(可讀性)’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미 50대는 물론 60대 초반까지 한글세대다. 국한 혼용이 편안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한글 본문에 어쩌다 한두 자 눈에 띄는 한자는 좀 생뚱맞아 보이는 것이다.

 

생뚱맞은 신문, 방송의 ‘한자 섞어 쓰기’

 

생뚱맞은 느낌은 신문 지면에만 있는 게 아니다. 텔레비전 뉴스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지 TV 화면에서도 심심찮게 한자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가끔 부르대는 ‘한문 교육 강화론’ 따위와 궤를 같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생뚱맞은 한자 섞어 쓰기는 방송 화면에서도 어느덧 관행이 되어가고 있다 .

TV 화면에 쓰이는 한자도 신문 지면의 그것과 거의 같다. 역시 한일, 미중, 북미 따위의 국호,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른 인물의 성씨 등이다. 그걸 한글로 쓴다고 해서 독해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 터이다. 우리는 한글로 표기한 <한겨레>를 보면서도 그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렇게 생뚱맞게 한자를 박아 넣는 이유는 무얼까. 습관적으로 영어나 일본어를 섞어서 말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말글살이의 습관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한자 쓰는 게 일상인 사람들은 하다못해 영수증을 써도 한자로 깨알같이 박아 넣는 것처럼.

 

▲ 2012 한글날 앱. 구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한글은 자타가 두루 인정하는 최고의 문자다. 그런 문자를 가진 나라의 국회 로고 속에 든 문자도 한자다. 그것도 ‘나라 국(國)’자가 ‘혹시 혹(或)’자로 읽히기 쉬운. 지방의회의 로고에도 ‘의논할 의(議)’자가 큼직하게 박혀 있다. 얼마 전 국회 로고를 바꾼다는 얘기가 들리더니만 그것도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국회의원 명패를 한글로 바꾸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남의 나라 글자로 된 명패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한자가 왜 남의 나라 글자냐고 반문하겠지만 우리나라 국자는 ‘한글’이다.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던 시대나, 시대적 한계를 넘을 수 없었던 전근대에야 부득이 나라 글자에 버금가는 지위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글 시대, 더는 아무도 한문으로 문자 생활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한자는 타국의 문자일 뿐이다.

 

요즘은 학교 생활기록부에도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 한자로 쓴 이름이 신분을 확정하는 주요한 구실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더는 아니라는 얘기다. 일부 성씨에서 두음법칙과 무관한 글자로 성씨를 표기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한글 시대의 풍경 가운데 하나다.


566돌 한글날, 그리고 ‘한글, 함께 누리다’

내일은 오백예순여섯 돌 한글날이다. 언제나 그렇듯 학교도 사회도 심상하게 이날을 맞는다. 학교에 한글날 조회나 훈화가 없어진 지도 오래다. 예년처럼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부 주관의 기념식이 베풀어질 것이고, 한글학회 등 관련 단체들의 기념행사가 그만그만하게 펼쳐지고 방송도 체면치레로 한글날 특집을 한두 개 준비할 테고…….

 

한글날 공식 누리집에 가 보았다. 마음 탓일까, 그곳도 어쩐지 스산해 보인다. 스마트 시대의 변화라곤 한글날 앱 받기가 안내되고 있다는 것뿐. 구글 플레이 스토어 검색창에서 ‘566 한글날’ 또는 ‘한글 주간 566’ 입력하면 한글 주간 앱을 내려받을 수 있다.

 

한글날 공휴일 지정은 설만 무성했을 뿐 올해도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한뜻을 모았다는데, 그것도 두고 볼 일이다. 올 한글 주간(10. 5~10. 11)의 주제어는 ‘한글, 함께 누리다’다. 그러나 어쩐지 그 ‘함께’가 마음에 자꾸만 걸리는 것은 웬 까닭일까. [관련 글 : 한글날, 공휴일 복원]

 

 

2012. 10. 8.

 

 


564돌 한글날을 맞으며

▲ 모어 사용자 수에 따른 상위 20개 언어 ⓒ 국립국어원 소식지 <쉼표, 마침표>에서

‘한글날’로 쉴까, ‘놀토’로 쉴까?

 

내일이 564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국경일의 지위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공휴일’은 아니다. 다행스럽게 내일은 휴무 토요일이니 사람들은 한글날을 집에서 쉴 수 있겠다. 아니, 그러나 사람들은 ‘한글날’을 쉬는 게 아니라 ‘놀토’를 쉰다고 여길 것이다.

 

어제부터 오늘 수업에서 다룰 한글날 자료를 찾아보았다. 2007년도 <한겨레>에 실린 곽병찬 기자의 “답 한글”이란 칼럼과 국립국어원 소식지 <쉼표 마침표>의 자료 외에 마땅한 게 없다. <쉼표 마침표>는 한글날 특집으로 ‘숫자로 살펴본 우리말 2010’을 싣고 있는데, 이는 우리말의 위상을 각종 통계 등의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한국어 사용자 수를 7천7백만으로 보면 우리말은 세계 13위의 언어다. 조동일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다수가 쓰는 언어의 말석, 소수가 쓰는 언어의 선두’이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어어보다 순위는 앞선다. 세계 1위는 당연히 중국어(푸퉁화)다.

 

우리말 사전은 모두 125종이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단어는 모두 51만 개다. 그러나 사전에 관한 한 우리나라의 수준은 그리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닌 듯하다. 사전과 관련해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지난 6년간 남북한이 함께 추진해온 ‘겨레말 큰 사전’ 편찬사업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

 

그간 공정의 50%를 넘긴 사전 사업은 통일부가 편찬사업비 13억여 원을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무산될 위기에 빠지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은 시인은 4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내는 사태에 이르렀다. 정말, 현 정부는 ‘여러 가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겨레말큰사전’의 위기와 한글날

▲ 국립국어원 소식지 <쉼표, 마침표> 가운데에서 발췌한 내용

문해율(文解率) 98.3%는 상당히 높은 수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키 백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해율 순위는 30위다. (국제 연합 개발 계획 2007/2008년 리포트). 1위는 쿠바고,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소련 붕괴 이전의 사회주의권 국가는 물론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일본도 우리보다 앞 순위다. 스위스, 영국, 미국이 각각 38~40위권이다.

 

국어 분야 예산은 192억 원이라지만 프랑스 등 자국어 보호와 발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나라에 비기면 별로 명함을 내밀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엔간한 ‘영어마을’ 조성이나 운영 예산에도 미치지 못하니 말이다.

 

출근하며 오랜만에 노타이에 양복을 입었다. 해마다 한글날이면 나는 아침에 국기를 걸고, 양복을 입고 출근하며 한글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곤 한다. 그게 국어 교사로서 내가 자신의 정체성과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인식을 가지런히 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수업에 들어가서 “답 한글”을 한 차례 읽어 주었다. 마지막 문장(“그런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그 귀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문자는?”)은 읽고 살피니 미소를 깨물고 있는 아이들 표정이 좀 곤혹스러워 보인다. 나는 다음 주에 열 백일장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일이 놀토인 관계로 교내 한글 백일장은 다음 주로 미루었다. 4년 전 부임하니 어떻게 된 일인지 한 해 내내 한글 백일장 행사 한번 없었다. 고등학교에 한글날 기념식 따위가 사라진 지는 꽤 되었다. 오로지 입시를 위한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으로 날이 새고 지는 세상이다.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그 귀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문자는?

 

이듬해, 예산을 신청하여 백일장을 열기 시작했다. 올해는 세 번째다. 심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감수성을 확인해 보는 건 가외의 소득이다. 그런데 기념식은 못하더라도 백일장은 한글날 앞뒤의 날을 택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토요일에 몰아놓은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하려니 꼼짝없이 1, 2주일이 넘게 미뤄지는 것이다.

 

수업을 마친 후에는 “틀리기 쉬운 말”을 B4로 편집 인쇄하여 학급별로 1장씩 붙이게 하였다. 학급 대표를 불러 칠판에 내일 ‘한글날 국기 게양’을 써 놓으라 하고 자료의 내용은 기말시험에 반영하겠다고 하였다.

 

어쩌다 보니 모든 걸 성적과 이어야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되도록 성적으로 아이들의 노력과 관심을 끌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나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켜서 내 말이 흰소리가 되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몇 가지 자료를 더 챙기고 나니, 국어과 후배 교사가 백일장이 다른 행사와 겹쳐서 부득이 18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거의 열흘 후다. 그러나 어쩌랴. 그러자고, 대신에 상품이나 입상자는 넉넉하게 챙기니까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한글날을 기다린다.

 

 

201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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