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되라’라는 기사의 ‘오탈자’ 지적에 부쳐
내가 쓴 기사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명절 인사 잘못하셨습니다”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것은 한가윗날 밤이었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여기저기 이 ‘한가위 인사’가 펼침막으로 붙고, 이웃끼리 이 엉터리 인사말로 정겹게 안부를 주고받을 걸 생각하면서 안 되겠다, 헛발길질이라도 해야겠다고 하면서 쓴 기사였다.
다음 날 아침에 확인했더니 이 기사의 조회 수는 3천이 채 되지 않았다. 한가윗날 밤이야 가족, 친지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낼 때니 <오마이뉴스> 기사에 관심을 둘 일은 없을 것이었다. 정오 못 미쳐서 당직 편집 기자가 이 기사의 ‘오탈자 신고’가 들어왔다는 쪽지를 보내왔다.
‘오탈자’? 확인해 보니 기사 중간쯤에 있는 문단에 쓴 ‘되라’가 잘못 쓴 게 아니냐는 신고였던 듯했다. 아래가 문제의 문장이다.
그런데 ‘한가위 되라’는 덕담을 건네면서 아무도 상대를 한가위로 만들 의도는 없다. 화자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이 오탈자를 신고한 이는 ‘되라’가 잘못 쓰인 거 아닌가, 명령형이면 당연히 ‘되어라’ 또는 그 준말인 ‘돼라’라고 써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단박에 문제의 단어를 ‘간접명령’으로 쓴 걸 확인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며,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편집부로 보냈다.
직접명령과 ‘간접명령’
화자가 청자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하게 요구하는 문장이 ‘명령문’이다. 명령문은 직접명령과 간접명령으로 나뉜다. 직접명령은 말 그대로 얼굴을 맞대고 명령하는 형식으로 동사 어간에 명령형 종결어미 ‘-아라/-어라’가 결합하여 실현된다.
(1) 알맞은 답을 골라라. (고르 + 아라 → 골라라)
(2) 적절한 낱말을 써라. (쓰 + 어라 → 써라)
(3) 너 자신을 알아라. (알 + 아라 → 알아라)
(4)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마라). (말 + 아라 → 말아라, ‘마라’와 복수 표준어임.)
(5) 시급히 대책을 세워라. (세우 + 어라 → 세워라)
(6) 남의 말을 잘 들어라. (듣 + 어라 → 들어라)
간접명령은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체를 통해 불특정 다수나 단체에 사용하는 명령이다. 담화 현장에 없는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것인데, 신문 사설, 시위 구호, 문제지의 문항 진술 등 공적 담화 상황에서 쓰인다. 간접명령은 어간에 어미 ‘-(으)라’를 붙여서 사용한다.
(1) 신문 사설 : 정부는 시급히 대책을 세우라. (세우 + 라 → 세우라)
(2) 시위 구호 : 노동삼권 보장하라. (보장하 + 라 → 보장하라, 직접 명령은 ‘-하여라’)
(3) 문제지의 문항 진술 : 다음 중 알맞은 답을 고르라. (고르 + 라 → 고르라)
편집부에 ‘간접명령’이라고 회신하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니 이 문장을 ‘간접명령’으로 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에 명절 인사로 두루 쓰이는 ‘한가위 되세요’를 간접 인용하면서 작은따옴표를 붙인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았다.
앞에서 든 문장에 쓴 ‘한가위 되라’는 ‘한가위 되세요’를 간접 인용한 것이었다. 직접 인용의 경우에는 큰따옴표로 묶어서 ‘한가위 되세요’라고 쓰겠지만, 간접 인용이어서 그 요지만을 ‘한가위 되라’라고 줄인 것이었다.
(1) 선생님께서 내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2) 어머니께서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으라고 하셨다.
위 문장들은 간접 인용문이다. 직접 인용은 화자가 한 말 그대로를 큰따옴표로 묶지만, 간접 인용은 위 문장처럼 따옴표를 쓰지 않고 그 요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쓴다. 문장 (1)에서 선생님은 “정직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했고, 이를 간접 인용하면서 ‘사람이 되라’로 줄인 것이다.
문장 (2)에선 “손을 씻어라”라고 한 어머니의 말이 ‘씻으라’로 바뀌었다. 위 문장들에서는 모두 간접명령에 쓰는 어미 ‘-(으)라’가 쓰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미 ‘-라’를 간접명령과 간접 인용절에 쓴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한가위 되라’라고 쓰면서 따옴표를 썼다. 따옴표만 쓰지 않았다면 간접 인용으로 금방 이해가 되었을까. 내가 굳이 따옴표를 쓴 것은 ‘한가위 되세요’라는 인용절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다시 문제의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한가위 되라’는 그걸 간접명령으로 보든, 간접 인용으로 보든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한가위 되어라’라고 쓰는 게 더 어색할 수도 있다. 우리말 표현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층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의 기사는 다음날 오후에 메인 화면에서 내려갔지만, 꾸준히 읽히었던 모양이다. 3일 11시 현재, 이 기사의 조회 수는 1만1천을 넘겼다. 조회 수만큼 바르게 쓰기를 실천할 이들이 느는 건 아닐 테지만, 요즘 현수막은 ‘되세요’와 ‘보내세요’가 반반 정도로 보이는 것 같다는 댓글을 읽으면서, 그걸 조그만 희망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2020. 10.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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