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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치법규에서도 ‘사리(砂利)’는 ‘자갈’로

by 낮달2018 202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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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법규에 남은 일본식 한자어 23개 일괄정비

행정안전부는 지난 8일, 한글날을 맞아 자치법규에 남아있는 일본식 한자어 23개를 정비한다고 밝혔다. ‘자치법규’에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일본식 한자어를 정비함으로써 행정 용어에서 바람직한 표준어 사용을 확대하고 국민이 자치법규 용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개선하자는 차원’에서다.

 

자치법규는 자치단체에서 제정하는 조례와 규칙인 자치법규에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일본식 한자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는데 이를 일괄정비 한다는 것이다. 일괄정비란 관련성 있는 자치법규를 함께 개정하는 입법기술로, 개별 자치법규를 일일이 개정하지 않고 ‘일괄개정 조례(규칙)안’을 만들어 본칙에서 쉽게 개정하는 방법이다.

 

이에 따라, 여러 자치법규에서 쓰이는 ‘사리(砂利)’는 ‘자갈’, ‘구배(勾配)’는 경사, ‘부락(部落)’은 ‘마을’, ‘녹비(綠肥)’는 ‘풋거름’, ‘주말(朱抹)하다’는 ‘붉은 선으로 지우다’, ‘구좌’는 ‘계좌(計座)’, ‘불입(拂入)’은 ‘납입(納入)’, ‘게기(揭記)하다’는 ‘규정(規定)하다’로 바뀌게 된다.

 

한자어를 일본식에서 우리 식으로 바꾼 것이지만 이 가운데 순우리말로 바꾼 것은 ‘마을’, ‘잠금’, ‘풋거름’, ‘자갈’, ‘알게 되다’ 등에 그치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며칠 전에 발표된 것이지만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이라고 느끼시는가. 이는 2014년 8월, 법제처에서 “알기 쉬운 법령 정비 기준”과 관련하여 중앙부처 대상으로 일본식 한자어의 정비를 추진(법령정비총괄과)하여 모두 37개 일본식 한자어를 순화한 것 가운데 일부다. [관련 글 : ‘사리(沙利)’가 ‘자갈’이라고?]

 

행정안전부에서는 정비대상 용어 23개를 선정하고, 자치법규정보시스템을 통한 전수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이들 낱말이 쓰인 자치법규 3,423건을 확정했고 이번 한글날에 지방자치단체에 정비계획을 시행한 것이다.

 

한글날, 문자 정체성과 규범 성찰의 계기

 

법제처에서 정비한 일본식 한자어 가운데 23개를 골라 이제야 일괄정비 한다는 것인데, 그게 우리나라 행정의 속도인지 모르겠다. 대상 용어 목록을 보면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해득이 불가능한 낱말들이 많다.

 

그런 낱말들이 자치법규에 버젓이 쓰이고 있는 게 2017년 한국이다. 광복을 기준으로 하면 72년 만이다. 자치법규 가운데는 1900년대 말은 물론 2000년대 들어서 제정된 것도 적지 않을 터인데, 그게 전혀 걸러지지 않고 만들어져 왔다는 얘기다.

 

이런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는 ‘한글날’일지도 모른다. 1년에 단 하루, 이 날은 우리로 하여금 나라글자로서의 한글과 그것으로 가늠되는 모국어(문자)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바른 말글살이를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매체들이 관행적으로 쏟아내는 기사들을 통해서 우리는 영어가 나날이 쓰임을 넓혀가는 현실 속에서 한글의 위상을 좀 겸연쩍게 확인하는 것이다. 괄호 속에 묶여 있던 알파벳이 슬슬 그 둑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에도 우리는 이미 무심해져 있으니 말이다.

 

· ‘KB’에서 ‘MG’까지-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

·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2)

·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3)

▲ JTVC 뉴스룸의 한 꼭지(위)와 <한겨레> 토요판의 1면(아래). 알파벳이 괄호를 벗었다 .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나마 실제 국민의 언어생활과는 동떨어진 낱말이 자치법규에서 버젓이 쓰이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면 그걸 미룰 이유는 없다. 어쨌든 문자생활이 계속되는 한 언어적 정체성을 환기하고 언어 규범을 살피는 국어 ‘순화’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2017. 10.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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