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가 붙어 거센소리로 축약되는 예는 정해져 있다
창(窓) 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배목걸쇠 크나큰 장도리로
둑닥 박아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잇다감 하 답답할 제면 여다져 볼가 하노라.
- 청구영언(靑丘永言)
이 노래는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사설시조다. 사설시조만이 갖는 특징적인 수사법과 해학이 넘치는 작품이다. 과감한 비유, 그리고 열거와 반복으로 만드는 특유의 가락은 흥겹기만 하다. 물론 그 재료는 민중들의 일상적 언어다.
마음속에 쌓인 비애와 고통,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면서 시적 화자는 자기 가슴에 창을 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대의 온갖 문의 종류(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를 나열하고, 암톨쩌귀와 수톨쩌귀에다 문고리에 꿰는 쇠인 ‘배목걸새’를 박아 자기 가슴에 창을 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가슴이 아주 답답할 때면 그 창을 여닫아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 쓰인 ‘암톨쩌귀’와 ‘수톨쩌귀’는 각각 ‘문짝에 박아서 문설주에 있는 암톨쩌귀에 꽂게 되어 있는, 뾰족한 촉이 달린 돌쩌귀’와 ‘수톨쩌귀의 뾰족한 부분을 끼우도록 구멍이 뚫린 돌쩌귀’를 말한다. 여기서 ‘암수’는 말 그대로 ‘자웅(雌雄)’의 ‘요철(凹凸)’ 형상의 비유로 ‘남녀의 성기’를 가리키는 걸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고전 <춘향전>에서도 이몽룡이 춘향과 이별할 제 읊는 노래에 비슷한 대목이 있다.
그렇지 못하거든 널랑 죽어 방아확이 되고, 날랑 죽어 방아 공이 되어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에 강태공의 조작처럼 사시장천 불계하고 떨거덩 찧어 있고자. 그렇지 못하거든 널랑 죽어 암톨쩌귀 되고, 날랑 죽어 수톨쩌귀 되어 분벽사창(粉壁紗窓) 열 제마다 제 구멍에 제 쇠가 박혀 춘하추동 사시 없이 빠드득 빠드득 하여 있고자.
여기엔 방아의 ‘공이’와 ‘확’(경상도 말로는 ‘호박’이다.)이 추가되었다. 물론 방아확은 여성의 성기를, 거기에 든 곡식 등을 찧는 데 쓰는 ‘방앗공이’는 남성의 그것을 가리킨다. 이들 방앗공이와 확, 그리고 암수의 돌쩌귀들은 각각 짝을 이루어 소정의 작용(!)을 맡는다. 그 작용이 남녀 간의 섹스를 가리키는 건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암톨쩌귀’와 ‘수톨쩌귀’는 ‘돌쩌귀’에다 ‘암수’가 붙으면서 ‘ㅎ’ 소리가 덧나서 ‘돌’이 ‘톨’이 되었다. ‘닭’이나 ‘개’ 등이 ‘암수’와 결합하면 각각 ‘-탉’이나 ‘-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규정은 <한글맞춤법> 제31항에 있다.
‘싸리(荊), 쌀(米), 씨(種), 때(時)’ 등은 고어일 때 단어 첫머리에 ‘ㅂ’음을 가지고 있었던 단어다. 이 단어들이 다른 단어 또는 접두사와 결합하는 경우, 두 형태소 사이에서 ‘ㅂ’음이 발음되기도 한다. 그래서 ‘ㅂ’을 앞 형태소의 받침으로 붙여 적는 것이다. ‘볍씨, 입때, 좁쌀’ 따위가 그 예다.
마찬가지로 옛말에서 ‘ㅎ’곡용어(조사와 이어질 때 ‘ㅎ’이 덧나는 체언)였던 ‘머리(頭), 살(肌), 수(雄), 암(雌), 안(內)’ 등에 다른 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합성어 중에서, ‘ㅎ’ 음이 첨가되어 발음되는 단어는 소리 나는 대로(뒷말의 첫소리를 거센소리로) 적는다.
특히 ‘암-, 수-’가 결합하여 ‘거센소리로 축약되는 낱말은 표준어 규정(제7항 다만)에서 ‘강아지, 개, 것, 기와, 닭, 당나귀, 돌쩌귀, 돼지, 병아리’ 등 9개로 한정하였다. 즉 나머지 ‘ㄱ, ㄷ, ㅂ’으로 시작하는 낱말에서는 ‘ㅎ’이 덧나지 않는 것이다. 고양이는 ‘암-’, ‘수-’가 붙어도 고양이지, ‘코양이’가 아니다. ‘곰, 다람쥐, 비둘기’도 마찬가지다.
수’와 뒤의 말이 결합할 때, 발음상 [ㄴ(ㄴ)] 첨가가 일어나거나 뒤의 예사소리가 된소리가 되는 경우 사이시옷과 유사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여 ‘수’에 ‘ㅅ’을 붙인 ‘숫’을 표준어 형으로 쓴다.
이는 ‘숫양, 숫염소, 숫쥐’ 등에만 해당한다. ‘숫양, 숫염소’는 발음이 [순냥], [순념소]이지 [수양], [수염소]가 아니므로 ‘수양, 수염소’와 같은 형태는 비표준어다. 또 ‘숫쥐’는 발음이 [숟쮜]이지 [수쥐]가 아니므로 ‘수쥐’와 같은 형태를 비표준어로 치는 것이다.
합리성이나 일관성, 또는 보편타당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는 그리 개운한 규정이라 보기 어렵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런 일반의 문제 제기에 대해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은 합리적인 규정을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일관성과 합리성이 의심되는 이런 규정은 대다수 언중(言衆)을 ‘선량한 규정 위반자’로 만들 뿐이다.
‘ㅎ’ 곡용어의 흔적을 굳이 낱말에 반영할 일이 있는가. 필요하다면 일관되게 모든 낱말에서 고르게 적용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국어학에서 어휘변화의 일부로 가르치면 될 일이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이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에 국어 교사는 답변에 궁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9. 9.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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