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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下賜)’, 왕조시대의 언어와 근대

by 낮달2018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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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왕조 시대의 언어들

▲ '하사'뿐 아니라 여전히 왕조 시대의 언어들이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인다.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강제 병합되면서 봉건왕조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이 난만한 민주주의 시대에도 왕조시대의 수직적 질서와 관련된 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시절의 권위적 언어가 남은 것은 20세기의 100년으로도 완고한 봉건적 질서를 넘기가 간단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사(下賜), 왕조시대의 언어들

 

뜬금없이 ‘봉건’을 얘기하는 것은 한가위를 앞두고 대통령이 군 장병에게 특별휴가와 간식을 주기로 하면서 쓴 ‘하사(下賜)’란 표현으로 인한 논란 때문이다. 굳이 국어사전을 펴보지 않아도 ‘하사’가 왕조시대의 언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으로 풀이된 하사의 ‘사(賜)’는 ‘주다’의 뜻이긴 하다. 그러나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 주체가 임금이기 때문이다. 조선조에 임금이 서원의 현판을 써 내려주는 걸 ‘사액(賜額)’이라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청와대에선 무심코 쓴 말인지 모르지만, 정작 그걸 받아들이는 쪽에선 무심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다. 그러나 그것은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부여된 권한일 뿐, 중세 봉건시대의 왕과 같은 무한 권력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지금 쓰이고 있는 왕조시대의 언어도 적지 않다. 80년대 신군부 집권기에는 대통령이 지자체나 군부대, 산업체, 학교를 따위를 방문하고 나면 ‘○○를 방문하고 관계자를 치하했다’라는 뉴스가 늘 머리기사로 오르곤 했다. 여기 쓰인 ‘치하(致賀)’도 ‘칭찬’의 뜻이긴 하지만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한다’라는 점에서 ‘하사’와는 별반 다르지 않은 낱말이다.

 

‘웃어른이나 상사에게 말이나 글로 여쭈어 의논함.’의 뜻인 ‘품의(稟議)’도 그렇고, ‘윗사람이나 관청 등에 일에 대한 의견이나 사정 따위를 말이나 글로 보고함.’의 뜻으로 쓰이는 ‘상신(上申)’도 마찬가지다. 품의는 ‘건의’로 순화하고 상신은 ‘여쭘’이나 ‘알림’으로 순화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행정 현장에서는 이들 언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왕조시대에는 ‘절대 왕권의 존엄’을 나타내는 상징어로서 ‘용(龍)’ 계열의 어휘가 발달했다. 그래서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顏)’, 눈물을 ‘용루(龍淚)’, 왕이 앉던 평상을 ‘용상(龍床)’, 왕의 정복을 ‘용포(龍袍)’라고 부른 것이다. 이는 권력자에게만 쓰는 낱말을 통해서 왕의 권위를 다른 그것과 차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각하, 박통, 전통…, 혹은 권력에 대한 선망

 

임시정부에 이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주 공화정 시대가 열렸지만, 대통령을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왕’과 견주어 사고하는 버릇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국무총리마저 전근대의 ‘정승’과 견주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부를 정도니 말이다.

 

사람들이 ‘군림(君臨)’하는 권력을 흠모하는 것은 자신을 거기 가까이 놓음으로써 자신도 권력 근처에 있고 싶다는 자발적 착시의 결과일까. 이처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전근대적 권력을 기꺼이 추인하려 하는 한, 민주주의나 민본(民本)의 뜻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흔히들 전직 대통령을 지칭하면서 성에다 ‘통(統)’ 자를 붙이곤 한다. 이를테면 박정희는 ‘박통’, 전두환은 ‘전통’, 노무현은 ‘노통’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명박을 ‘이통’이라 부르는 건 듣지 못했다.) 여기서 통은 물론 ‘대통령’의 통이겠지만, 내겐 그게 마치 박정희가 꿈꾸었던 종신 대통령, ‘총통(總統)’으로 읽히곤 한다.

 

대통령을 일러 ‘각하(閣下)’라고 부르는 의식의 저변도 비슷하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이 쓰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각하’라는 호칭을 선호하는 관료나 정치인, 시민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각하’라는 호칭에는 권력에 대한 대중의 선망과 추종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 대통령이 장병에게 특별휴가와 간식을 주기로 하면서 '하사'란 표현을 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 청와대

교직 초임 시절, 나는 윤리과 업무를 맡았는데, 매 분기 정기적으로 ‘대통령 각하 지시사항 이행 철저’라는 공문을 보고해야 했다. 80년대였으니 대통령은 전두환, 그가 지시한 사항을 단위학교에서 얼마나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점검해 보고하는 일이었다.

 

권위주의 시대의 관습도 여전하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무슨 공문에 ‘각하’를 쓰고, 그걸 독립적인 보고 사항으로 정해서 시행하는가 싶어서 투덜댔던 기억이 새롭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라, 갱지에 먹지를 대고 손 글씨로 공문을 작성하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향해 쑥떡을 먹이곤 했다.

 

민주화의 진전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에 남은 권위주의 시대의 언어와 관습, 의례 따위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장(長)짜리의 연설조차 높여 ‘계시다’며 추켜세우고, ‘시’ 자가 늘어지는 각종 의례·의식 때마다 우리 시대에 전근대의 잔재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얼마 전에 다녀온 어떤 경연대회의 시상식에서다. 꽤 많은 인원이 시상대에 불려 나갔는데, 시상자는 상장을 들고 있을 뿐, 상장의 내용은 무대 아래의 사회자가 읽는 것이었다. 아직도 저런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시상을 하는구나, 싶어서 나는 신기한 느낌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대회를 주최한 것은 지방의 한미한 기관이 아니라, 서울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었다. 글쎄, 중앙정부 부처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의 시상식이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장면은 우리의 근대가, 형식의 내용이 조화되지 못한 일종의 지체(遲滯)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2015. 9.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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