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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도둑맞은 미래’, 그래도 그들은 ‘희망’이다

by 낮달2018 202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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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신입사원 ‘초임 삭감’에 부쳐

▲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 사람들 삶은 고달프다. 영화 <거리의 공황>(1950)

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간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일자리 잃은 가장만큼 서러운 사람이 있을까. 나날이 옥죄어오는 고단하고 팍팍한 삶은 그 무력한 어깨를 짓누른다. 아무에게도 쉬 위로받을 수조차 없는 그 실존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거기에 비길 수는 없지만, 일자리를 찾다 지친 젊은이들의 삶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오라는 데는 없고, 어딘가 가야만 하는 대졸 청년들에게 졸업은 피하고 싶은 통과의례다. 대학 진학이 일반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학까지(!) 졸업한 고급 인력’에 대한 주변의 기대는 적지 않다.

 

취업박람회는 물론이거니와 수십 개의 기업에 원서를 내 보지만,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는 게 쉽지 않다. 야금야금 갉아 먹히는 시간과 함께 자존감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상처받기 시작한다. 지난 시간 동안 취업을 위해 쓴 안간힘이 물거품이 되는 시간 앞에서 청년은 바야흐로 무력하고 겉늙은 인간으로 변해간다…….

 

새롭게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내어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히 사회의 책임이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부족이나 청년 실업을 낳은 경제적 불황과 침체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때’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세대일 따름이다.

 

졸업을 앞두거나, 이미 졸업한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계절은 가혹하다. 가을이 가고 찬 바람이 불면서 ‘올해는……’이라는 위안과 기대도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다.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에도 역시 스산한 바람이 부는 건 마찬가지다.

 

아들 녀석도 올해 4학년이다. 군대를 다녀왔고, 나름대로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년도 한 학기를 더 해야 하니 시간을 번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아무도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쉬 입에 올리지 않는다. 글쎄, 밥을 벌 수만 있다면 우리는 녀석의 어떤 선택도 받아들일 작정이니 피차 불편하기만 한 관심을 다스리는 중이다.

 

요행히 취업의 벽을 넘는다고 해도 남은 길도 만만찮다. 요즘 신규 채용은 거의 없으면서 신입사원의 임금은 큰 폭으로 삭감하고 있다는 뉴스가 줄을 잇는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따른 결과다. 이 정책은 신입사원의 초임을 삭감해 인건비 부담을 낮추어 신규 채용을 늘리는 형식이다.

 

초임삭감, 인사권 가진 기업의 뜻일 뿐

 

신입사원 초임삭감은 이름이야 그럴듯한 ‘고통 분담’이다. 어려운 시기니 고통을 나누어지자는 뜻이야 가상하다. 그러나 그게 개인의 자발성에 따른 동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원 선발권을 가진 기업에 일방적으로 주어진 권리라는 점은 이 ‘고통 분담론’이 지닌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의 논평은 이 점에 대한 지적이고 확인이었다.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신입사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부당한 차별이며, 기존 임금체계와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조치이다. 또한 대졸 초임삭감은 기존 종업원뿐 아니라 비정규직과 대기업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임금 수준의 하향 평준화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누누이 강조하였지만 경제 위기 극복의 해법은 내수 활성화이다. 기업들은 신규투자를 늘리고 실질임금을 인상시켜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 경영악화로 임금인상은 어렵다 하더라도 기업들의 임금삭감 조치는 오히려 실질적인 구매력을 감소시켜, 결국 기업의 생산 활동 위축이라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다.

 

기업들은 대졸 초임삭감으로 마련된 재원으로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고 하였으나 구체적 계획을 발표하지 않아 실제 고용 창출로 연결될지도 의문이다. 결국 경제 위기를 빌미로 노동자들의 임금만 삭감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기본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고통 분담이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노사 양측이 그 짐을 공평하게 지어야 한다. 사내 보유금을 쌓아 놓고도 경기 악화를 이유로 신규투자와 채용을 줄이고, 경영진이나 고위 임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고통 분담 조치는 없으면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다면 기업들의 고통분담 요구는 사회적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

 

- 2009. 2. 26 참여연대 논평 중에서

 

고육지책이라는 걸 고려한다 해도, ‘아랫돌 빼다 윗돌 괴기’의 형식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20개 공공기관의 대졸 초임삭감률’은 평균 16.4%나 되는 걸로 밝혀졌다. 대졸 초임이 가장 낮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삭감률이 7.2%로 가장 낮고, 보수 수준이 높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삭감률이 26.2%로 가장 높다. <표 참조>

 

올해 말까지 통폐합이 예정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이미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동참하고자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21%, 한국기업데이터는 20% 삭감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입사할 신입사원들의 연봉이 700~800만 원쯤 깎이게 되었다.

 

이에 대한 실증적 예측도 나왔다.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은 정부출연 연구기관 신입사원의 경우, 기존 직원보다 향후 10년 동안 5800만 원을 덜 받게 되는 것으로 예측했다. 기초기술연구회 및 소속 정부출연 연구기관 신입 과학기술인의 초임을 조사한 결과, 12개 기관에서 신입사원 초임이 평균 500만 원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경제 위기 덕분에 ‘미래를 도둑맞은 셈’이다.

 

참여연대의 논평에서 지적한 문제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금삭감이 ‘경영진이나 고위 임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고통 분담 조치는 없으면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표에서 보듯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신입사원의 초임은 10~20%까지 삭감했지만, 올해 기관장과 임원의 연봉(성과급 제외) 삭감률은 평균 6.6%와 5.8%에 그친 것이다.

 

어려운 경제, 여러분의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지도 않으면서 ‘대졸 초임삭감’ 계획을 밝혀, 하지도 않을 일자리 나누기를 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채용 계획도 없으면서 정부에 ‘생색’을 내려는 전형적인 행태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정부의 공공부문 급여조정 방침에 따라 기관별로 초임삭감률이 밝혀지면서 이른바 ‘신의 직장’이 없어졌다는 평가가 주목을 받고 있다. 23곳이나 됐던 초임 3500만 이상의 ‘신의 직장’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의 직장’은 우리 사회의 높은 임금 격차, 특히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공기업을 가리키는 다분히 공세적 비유다. 병역을 면제받은 이들을 가리키는 ‘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의 응용인 셈이다.

 

이 비유에는 여전히 연봉 2천만 원 이하의 봉급생활자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수준 이상의 초임을 받는 이들에 대한 질시와 선망도 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원’은 나름의 논리적 정당성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급여 삭감은 참여연대가 지적한 것처럼 임금 수준의 하향 평준화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형식의 급여 삭감은 기존 종업원뿐 아니라 비정규직과 대기업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임금 조정의 준거로 작용하면서 임금을 갉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무엇보다도 새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에게는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이 없다.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오랫동안 힘겹게 준비한 것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이들이 기성세대들이 만든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의지와 희망의 세대였다는 것뿐이다.

 

그들에게는 아직 사회적 발언권도 없다. 그들은 젊고 패기로 무장하고 있긴 하지만 취업을 앞두고, 자신의 능력을 펼 기업을 고르기보다는 기업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사회적 약자다. 어느 날, 자신들이 뛰어들고자 하는 세상으로부터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하게 된 이들 젊은이가 감당해야 할 당혹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고통분담’은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은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기득권의 기대고 요구에 불과하다. 초임을 깎는 공기업에서는 ‘삭감분 회복’에 대해서는 ‘경기가 회복되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말 뿐이다. 1999년, 교원정년을 줄이는 대신, 더 많은 교사를 충원하겠다던 노무현 정부 시절의 정책이 결국 경제논리를 관철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공무원 봉급 동결을 비롯하여 공기업의 구조조정, 신입사원 초임삭감 등은 현 정부의 ‘경제 제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 이데올로기는 지극히 간명하다. 경제가 어렵다. 기업과 그 경쟁력과 경기 부양을 위해서 대규모 토건 사업에 투자하고 감세 기조는 이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의 ‘인내’와 ‘희생’이 요구된다…….

 

‘녹색성장’으로 포장한 4대강 정비사업에다 수십조 원을 퍼부으면서도 300만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고작 청년인턴제다. 정규직을 해고한 자리에 채용하는 인턴이란 저임금에다 퇴직금도 없는 ‘단기 알바’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좋은 일자리’와는 무관한 통계 수치를 떠받치는 일자리에 불과한 것이다.

 

5년간 부자들이 받을 감세 혜택은 물경 95조 원에 이른다. 이 중 80조면 2백만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할 수 있고, 25조 원이면 85만 개의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고통 분담’을 통한 혜택은 결과적으로 기업주와 부자에게로 돌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성’이고 ‘희망’이다

 

경제 위기 시기마다 ‘고통 분담론’은 주요한 담론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것은 늘 노동자 서민들의 ‘전담’으로 귀결되었다. IMF 때 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받아들인 대신 강남의 부자들은 ‘이대로’를 외치며 그들만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실제로 10년이 지나도 ‘고용 없는 성장’만 계속되었을 뿐, 서민 대중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초임을 깎인 신입 사회인들은 그들의 일터로 가 ‘가늘고 길게 사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자기 세대에 이르러 하향 평준화해 버린, 자기들 삶의 결을 무심히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4대강 주변과 유람선이 떠 다니는 ‘전설의 경인 운하’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나의 삶은 그만하다’라며 자신을 위로하게 될까.

 

한 사회의 건강성은 사회적 약자에게 베풀어지는 전체 사회의 배려와 긴밀히 연관된다. 비록 어려운 시대이기는 하나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희망과 가능성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믿는다. 앞 세대의 유산을 통해 뒷세대가 가능성과 희망을 만들어가면서 우리 사회는 존속·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 위기의 어려운 시기에 사회에 진입하게 된 청년들이 당면한 불합리와 모순을 뛰어넘어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만들어나가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젊은 영혼의 몫일 터이므로.

 

2009. 10. 20. 낮달

 

 

 

'도둑맞은 미래', 그래도 그들은 '희망'이다

공공기관 신입사원 초임삭감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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