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이 고되겠지만, 그래도 계속 ‘거슬러 올라가’ 주시라
“어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이’는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을 부를 때 하는 말.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라고 풀이된 감탄사다. 만만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나 쓸 이 감탄사가 국정감사장을 잠깐 달군 모양이다. 지난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영홈쇼핑 최창희(71) 대표가 정의당 류호정(28) 의원의 질의에 답하던 중 이 감탄사를 쓴 것이다.
모르긴 해도 어쨌든 국정감사장에 불려 나온 피감기관장으로 최 대표가 일부러 ‘어이’를 쓴 것은 아닐 터이다. 아마 무심코 써 놓고 아차 싶었을 것이다. 일흔 살이 넘은 자신에게 까칠하게 질의를 이어가는 이십 대 의원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헌법기관이라는 국민의 대표, 이른바 ‘선량’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꼬장꼬장하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의원이 어느 순간, 그에겐 스물여덟 살짜리 천둥벌거숭이 젊은이로 다가온 것이다. 급하게 튀어나온 ‘어이’는, 그래서 오래 몸에 밴 그의 무의식일 것이다. 이는 한 공기업의 수장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최 대표가 아랫사람을 대하는 ‘기본’이었을 터이다. 그것은 그의 화려한 경력과 무관하게 그와 유 의원 사이에 43년이라는 나이 차보다 더 깊은 틈새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었다.
이 소식에 청년들은 최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전형적인 꼰대 행태’라며 비판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꼰대’를 “①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②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 뜻은 훨씬 더 복잡하다.
우리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나 ‘아버지’를 이르는 말로 ‘꼰대’를 즐겨 썼지만, 요즘 꼰대는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 사고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이른바 ‘꼰대질’이다.
시정에서는 이들 꼰대의 특징을 자기중심적 사고(‘답정너’), 상명하복(‘까라면 까’), 자기 경험이 유일한 척도이고, 분노 조절이 어렵고, 젊은이를 어리게만 보며, 요즘 ‘젊은이들은 문제’라는 생각을 벗지 못한다는 것 등으로 풀이하고 있는 듯하다.
꼰대질의 폐해는 단순히 세대 갈등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른바 ‘갑질’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의 통칭”인 갑질은 이제 법률의 제재를 받을 만큼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통념 깨기
‘꼰대’의 기준이 반드시 나이일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쉰을 넘기게 되면 ‘꼰대’ 예비군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여전히 60대라는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사는 나는 가끔 뉴스를 보고 읽으면서 혀를 차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이 꼼짝없이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곤 한다.
두어 달 전의 일이다. 마지막 학교에서 함께 근무한 후배 여교사 둘과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나는 그런 얘기를 했다.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면서 ‘꼰대’를 넘으려 애쓰고 있긴 한데, 가끔 그 한계를 느낀다는. 그 동기가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 대표 1·2번으로 나온 류호정(28)·장혜영(33) 후보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꼰대를 넘지 못하는가 봐요. 30대 이하 청년 대표가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론에 찬성하면서도, 이들이 국회에 등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미덥지 않아서 글쎄, 저 친구들이 삶을 얼마나 이해할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도 끄집어내었다. 2000년대 초반, 성평등 교육이 교육 운동에서 새로운 의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노조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기 전에 사과를 내놓았는데, 그걸 어느 여교사가 깎으려 하니 또 다른 여교사가 말렸다. 아마 여교사가 그런 일을 맡아야 한다는 통념을 넘어서자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과를 깎은 게 나였는지 다른 동료 남교사였는지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때 얼핏 든 생각은, 동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선의를 통념으로 지워버리는 그 공격적인 태도가 과연 ‘성평등’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었다.
“그땐, 조금 썰렁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는 그 여교사의 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요. 통념을 깨고 새로운 뜻과 태도를 세우는 일은 기존의 관습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말이지요. 여성참정권(서프러제트) 운동이 유리창 파괴나 방화 같은 폭력을 정치적 전술로 이용했다든가, 운동가들이 전투적 행동과 공격적 캠페인을 벌인 것도 같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일이지요.”
나는 청년 대표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일은 경륜에서 오는 능력과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기 세대에 당면한 여러 현안을 바라보는 이들 청년의 관점과 전망이 기존 장년 중심의 국회가 제시하지 못하는 방향을 찾고 미래를 견인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리고 20·30대의 젊은이의 생각과 진취적 태도가 현상 유지에 그쳐온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이성이었을 뿐, 정서는 그것을 쉽게 용인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지체(遲滯)는 바로, 통념을 넘지 못하는 우리가 스스로 친 칸막이고, 울타리며, 완고한 생각의 성채였다. 그리고 그것을 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궁색하고 알량한 관습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실제로 2030대의 젊은이에게는 장년이 자랑하는 경륜이나 지혜를 갖추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안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창의적 관점과 기존의 관행을 깨뜨릴 수 있는 분노와 용기가 있다. 기성세대가 백 년이 가도 깨지 못한 관습을 그들은 단 한 순간 만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저들 청년 의원을 바라보는 미심쩍은 눈길은 진보 언론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듯하다. 최근 <경향신문>의 여성 선임기자는 후보 시절의 두 의원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옷차림을 언급한 것을 두고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이 여성이고 젠더 이슈를 꾸준히 다뤄왔음에도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꼰대를 넘어, 우려를 넘어
지난 몇 달 동안 이들은 기성세대의 우려를 간단히 잠재웠다. 류호정 의원은 분홍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나타나 통념을 무너뜨린 뒤, 삼성전자 간부가 출입기자증으로 국회를 드나든 것을 폭로했고, 삼성전자 측에 기술 탈취 의혹을 따지면서 “말장난하지 마라”고 호통치는 등 국정감사 데뷔전에서 단박에 ‘삼성 저격수’로 떠올랐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부 여당의 ‘86세대’에게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사람들이 기득권자로 변해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돼 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환기한 장혜영 의원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와 관련하여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도 조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두 의원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탈당 사태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의 단호한 태도가 젠더 이슈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에 금을 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금만큼이나 우리 사회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이’로 꼰대의 의미를 환기하게 해준 최 대표가 자신의 실수를 깨끗이 인정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그냥 ‘허위’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만약에 오해가 있다면 사과드리겠다”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사과하면서 실수를 주워 담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 준 것은 ‘꼰대의 한계’였을 뿐, 여론이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두 여성 의원을 바라보는 60대 꼰대의 낡고 진부한 관점을 부끄러워하면서 나는 그들에 대한 내 우려를 거두려 한다. 대체로 장년의 경험이란 ‘만고의 진리’가 아닌, ‘숱한 경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것 역시 우리 사회의 주요한 자산이긴 하지만, 그게 유일한 잣대가 될 수는 없는 일인 까닭이다.
‘가르치려’만 하지 말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익숙한’ 관점과 헤어져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법도 배움직하지 않은가. 나의 잣대를 확신하고 거기 치우친 완고한 생각이 청년 세대의 좌절과 분노를 공감하지 못하면서 세대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류호정 의원의 나이에 나는 처음 교단에 섰다. 햇병아리 교사라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내로라하는 50·60대 늙다리 선배 교사들이 늘 되뇌는 요령과 지혜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회의와 분노가 교육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음을 기억한다.
바라건대, 류호정·장혜영 의원이 그런 마음으로 21대 임기를 ‘거슬러 올랐으면’ 좋겠다. 그들이 가는 길이 험하고 힘든 만큼, 미래를 가늠하는 우리 사회의 여지가 넓어지고 깊어지리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4년 후, 그들이 힘들여 나아간 자취가 우리 사회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2020. 10.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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