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핑크 데이’와 퇴계의 ‘도포 구멍’

by 낮달2018 2020. 10. 23.
728x90
SMALL

약자에 대한 배려 ‘핑크 데이’와 스승에 대한 존숭  ‘도포 구멍’

▲ 캐나다의 핑크데이. 어린이들이 킹크 셔츠를 입고 있다.

캐나다의 ‘핑크 데이’

▲ 이 주의 리트윗 ⓒ <한겨레>(2010. 10. 22.)

오늘 자 <한겨레>의 ‘트위터 브리핑’ 난에 오른 ‘이 주의 리트윗’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내용은 캐나다에 있다는 ‘핑크 데이’에 관한 이야기다. 초등 남학생이 핑크빛 옷을 입고 등교하였다가 ‘게이’라는 놀림을 받게 되자 자살한다. 이 사건 뒤에 죽은 아이를 기리고 따돌림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해 모든 남녀 초등학생들이 핑크빛 옷을 입고 등교하는 ‘핑크 데이’가 제정되었다는 건데 마지막 언급의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대응 방식으로 이들은 개인을 탓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도록 한다.”

 

‘핑크 데이’?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인터넷에도 여러 번 검색해 보았는데 비슷한 내용도 눈에 띄지 않는다. 캐나다에 20년을 살았다는 이도 ‘처음 듣는 얘기’라는 댓글을 달았다. 어쨌든 좋다.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한 일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나는 잠깐 이 이야기의 여운을 음미했다. 아이는 게이가 아니라 단지 핑크빛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러나 급우들의 집단 따돌림으로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거기까지는 익히 보는 풍경일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 그 사회의 대응 방식이다.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집단 따돌림의 원인은 ‘핑크빛’을 여자아이의 취향으로 바라본 고정관념이다. 따라서 그 반성의 방식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아이의 취향이 일반화될 수 있는 것이라는 ‘추인’이다. 남녀 학생이 모두 핑크빛 옷을 입음으로써 그들은 뒤늦게 아이의 선택이 누구에게나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개인을 탓하지 않고 사회가 공유하도록 한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그런 뜻으로 읽힌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한 사회가 구성원을 껴안는 방식이라 할 만하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집단이 공유함으로써 핑크빛 옷은 남녀 양성이 공유할 수 있는 ‘취향’이 된 것이다.

 

퇴계의 도포 자락에 난 구멍

▲ 퇴계 이황 표준 영정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인 퇴계 이황(1501~1570)의 일화가 생각난 것은 두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다. 퇴계의 첫 부인 김해 허씨는 아들 셋을 낳은 후 산후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계실(繼室)로 들어온 이가 풍천면 가일마을 권질(1483~1545)의 딸이다. 진성 이씨 가문에서 이른바 ‘바보 할매’라 불리는 이다.

 

“영리하지도 못하고 부족한 딸을 맡아 달라”는 권질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기실 권씨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바보 아내를 퇴계는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권씨 부인과 관련된 일화는 여럿 있는데 대부분 퇴계의 군자다움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다.

 

어느 날 퇴계가 조문을 가려다 도포 자락이 해어진 것을 보고 아내에게 꿰매달라고 하였다. 아내는 빨간 헝겊을 대서 도포를 기워 주었다. 그는 말없이 그 도포를 입고 조문을 갔다. 사람들이 그의 도포 자락을 보고 물었다.

 

“흰 도포에는 빨강 헝겊으로 기워야 합니까?”

 

사람들의 물음에 퇴계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그는 빨간 헝겊으로나마 도포를 기워준 모자란 아내의 마음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일화는 새끼를 치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여기다 윤색을 더한다. 이번에는 스승과 제자가 등장한다. 퇴계가 빨간 헝겊으로 기운 도포를 입고 서당에 나온다. 제자들은 아연실색했지만, 내색 않고 글을 읽는다.

▲ 도포. 서울역사박물관

이튿날 서당에 나온 퇴계는 자신을 맞이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제자들의 도포에는 스승의 도포와 같은 자리에 빨간 헝겊으로 꿰맨 자국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스승과 같이 자신들의 도포를 꿰맴으로써 스승의 부인이 저지른 허물을 덮으려 한 것이다.

 

두 이야기는 닮았지만 다르다. 캐나다의 핑크 데이가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줄일 수 있다면 퇴계의 제자들이 연출한 배려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경의와 복종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와 중세라는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서로 다른 동서양의 의식과 문화를 그대로 드러낸 사례일 듯하다.

 

성별에 따른 ‘-다움’의 강조가 기실은 일종의 고정적 성역할이나 개념을 강요하는 폭력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는 그런 ‘다움’에 대한 요구나 지지가 넘친다. 성별의 경계를 넘는 것은 21세기의 한국에서도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2010. 10. 23. 낮달

 

* 이 글에 대한 댓글 가운데, 캐나다 어린이가 죽지 않고 많은 아이의 성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밝혀준 이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Anti-Bullying Day Canada’를 검색하면 된다고. 이날은 ‘Pink Shirt Day’라고도 불리고, 기사는 http://www.cbc.ca/canada/nova-scotia/story/2007/09/18/pink-tshirts-students.html로 검색하면 된다고.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