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삼성’과 소프트웨어 벤처 기업 ‘제니퍼소프트’
이른바 ‘가을 취업 전쟁’이 시작되면서 며칠 전 치러진 삼성그룹의 직무적성검사에는 무려 10만여 명이 모였단다. 여든 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삼성그룹은 해마다 구직자들이 ‘취업하고 싶은 회사’ 순위 앞부분에 이름을 올린다. 그 10만 명은 현재 이 나라 청년들이 꿈꾸는 ‘안정된 직장, 보장된 미래’라는 욕망의 현재적 표현이다.
삼성 직무적성검사를 치른 10만의 청년들
대기업에, 그것도 삼성과 같은 이른바 ‘글로벌’ 기업에 취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모른다. 젊은이들은 삼성 맨이 된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과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샐러리맨으로 입신하는 첫걸음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나는 삼성으로 가는 ‘좁은 길’로 몰려든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말단 사무직 노동자로 자신의 사회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 악랄한 노무관리로 유명한 기업이다. 그들은 삼성 맨이 되는 순간, 자신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도, 노동조합의 보호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러나 그건 기우이거나 넘치는 오지랖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초특급 기업 삼성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지, 자신이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노동자’에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노동자로 매기지 않는 한 노동조합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들은 어쩌면 협력업체나 그 구성원들 앞에 대기업 사원으로서 이른바 ‘갑’의 지위를 누리는 일이 더 쉬울 것이다. 최근 잇따른, 이른바 자본과 대기업의 ‘갑(甲)질’에 관한 보도를 접하면서 나는 잠깐이었지만 내 삶에서 그럴 기회가 없었음을 기꺼워했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폭동진압훈련’을 받았지만 정작 광주항쟁을 석 달 앞두고 전역할 수 있었던 걸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갑(甲)’, 혹은 착취구조의 말단
기업체에 어렵사리 취업한 젊은이들 가운데 아무도 자신이 보도에 나온 남양유업이나, 아모레퍼시픽의 직원과 같은 악역을 맡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악랄한 ‘갑질’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훌륭히 입증한 예의 남양과 아모레의 사원 역시 그들이 행한 악역이 자신의 선택이었거나 자발적 행위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기업이 자신이 생산한 상품의 경쟁력이 아니라,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것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우리 세기의 경제구조에서 그들의 지위는 분명하다. 그들은 그 비정한 이익 창출의 메커니즘의 말단을 점하고 있으면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을’을 어르고 달래면서 그들의 것을 빼앗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삼성그룹의 ‘노조파괴 문건’에 드러난 갖가지 노조 탄압 행위나 비열하다 할 만한 공작 등을 실제 행하는 이들 역시 사원들이다. 관리자의 지시를 받아 이 노조 고사의 실무를 담당할 사원들은 바로 그 ‘꿈의 직장’을 꿈꾸었던 젊은이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련 기사 : 삼성-신세계의 불법, 그들이 가족인 이유]
노동자들을 미행하고 회유하고, 온갖 방법으로 고립시키고 끝내는 노조를 포기하게 만드는 이들의 눈부신 활약은 회사로부터 적지 않은 상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 쪽의 찬사를 받으며 그들은 자신이 세운 공에 만족하고 행복해할까.
안다. 역시 이는 부질없는 질문일 뿐이다. 누구에게라도 그 일은 맡겨질 것이며, 그는 아무런 연민과 갈등에 빠지지 말고 냉정하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 갈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업무를 피할 수 없었다고, 결국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다고 자신에게 되뇔 것이다.
벤처기업 ‘제니퍼소프트’의 경우
<한겨레>에 실린 어떤 기업체 기사가 이 쓸쓸한 상념과 겹친다. [관련 기사 : ‘꿈의 직장’ 제니퍼소프트에서 하지 말아야 할 33가지] 제니퍼소프트(JenniferSoft)라는 한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이야기다. <위키백과>의 소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삶과 놀이가 존재하는 일터’란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다는 이 회사는 ‘자본의 축적은 필요하지만 이윤 추구는 목적이 아니’라고는 별난 기업이다.
제니퍼소프트는 ‘삶과 일의 어우러짐, 개개인의 자아실현, 평등적 자유를 누리며 그 속에서 인류의 진보를 향한 포이에시스(Poiesis :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 일반)를 지향한다’. “건강한 노동으로부터 창출되는 근사한 삶을 더불어 함께하는 것”은 이 회사가 ‘대안적 기업문화공동체로서 실천해야 할 실험’이라고도 한다.
“제니퍼소프트에서 하지 말아야 할 33가지”는 인간, 일, 가정, 회사에 관한 이 회사의 지향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사 안에 일과 중에도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을 갖추고 있는 이 회사가 바라보는 사원은 앞서 이야기한 자본이 추구하는 그것과 반대편에 있다.
이 엄청난 간극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 단지 제니퍼소프트가 직원 20여 명의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까. 2백 명, 2천 명, 2만 명으로 늘면 이 회사는 여느 자본과 같은 회사가 될까. 분명한 것은 이 회사의 노동자들은 행복하리라는 것이다.
<제니퍼소프트에서 하지 말아야 할 33가지>
1. 전화 통화 시에 “지금 어디예요?”, “뭐 하고 있어요?” “언제 와요?”라고 묻지 마요. 감시할 의중도 없잖아요.
2.“회의 중인데 좀 있다 전화할게.” 아니거든요~ 가족 전화는 그 어떤 업무보다 우선이에요.
3. 근무 외 시간엔 가급적 전화하지 마요. 사랑을 속삭일 게 아니라면!
4. 퇴근할 때 눈치 보지 마요. 당당하게 퇴근해요.
5. 우르르~ 몰려다니며 같은 시간에 점심 먹지 마요. 같이 점심 먹는 것도 때로는 신경 쓰여요. 시간은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먹어요.
6. 비즈니스 정장을 입기 위해 애쓰지 마요. 편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맘껏 뽐내요.
7. 출장 후, 초콜릿 사 오지 마요. 그거 사기 위해 신경 쓰는 누군가에겐 부담되어요.
8. 회식을 강요하지 마요. 가고 싶은 사람끼리, 자유롭게 놀아요.
9. 타인에게 휘둘리지 마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예요.
10.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요. 도전은 우리의 것. 책임은 회사 대표의 것이에요.
11. 대충하지 마요. 디테일이 중요해요.
12. 사무실에서만 일하지 마요. 때론, 카페에서도 일해요.
13. 퇴근 후 일하지 마요. 우리에겐 휴식과 가족과 나눌 사랑이 힘이 돼요.
14. 너무 일만 하지 마요. 가끔 놀아도 돼요.
15. 회의 중에 침묵하지 마요. 침묵은 부정이래요. 항상 말해줘요.
16. 농담이라도 상대방을 비웃지 마요. 당신은 웃지만, 상대방은 상처받아요.
17. 서로에게 반말하지 마요. 항상 서로 존중해요.
18. 형식에 얽매이지 마요. 본질에 집중해요.
19. 슬금슬금 돌아앉지 마요. 함께 나눈 이야기 속에 좋은 아이디어도 창의성도 발현되어요.
20. 혼자 하지 마요. 함께 하면 힘이 돼요.
21. 감정 표현을 망설이지 마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함께 할까요? 이렇게 표현해요.
22. 구성원이 힘들면 외면하지 마요. 이야기 들어주고 토닥토닥 감싸줘요.
23. 내가 혼자 다 했다고 자만하지 마요. 우리 함께 한 일이잖아요.
24. 뒤에서 이야기하지 마요. 눈을 맞추며, 이야기해요.
25. 인상 쓰지 마요. 웃어 봐요.
26. 정원에 풀 뽑지 마요. 잡초제거는 회사 대표의 몫이에요.
27. 경쟁하지 마요. 서로 협력해요.
28. 식사 거르지 마요. 꼭! 꼭! 챙겨 먹어요.
29. 자신을 한정 짓고 제한하지 마요. 언제나 오픈 마인드!
30. 억지로 하지 마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슴 뛰는 삶을 살아요.
31. 사유와 공부를 게을리 말아요. 공동체의 의무에요.
32.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요. 계속 고민해요.
33.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마요. 당신의 삶이 먼저예요.
2013. 10.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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