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중소상인이 ‘맛없는 빵을 만드는 장애인’이라고?

by 낮달2018 2020. 10. 17.
728x90

홈플러스를 운영 삼성테스코 이승한 회장의 망언

▲ 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부평신문

기업형 슈퍼(SSM)가 영세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규제가 정치권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도 한참 됐다. SSM은 슈퍼 슈퍼마켓(Super Super Market)의 약자다. 말 그대로 슈퍼마켓보다는 크고 대형 할인점보다는 작은 소매점을 이른다.

 

현재 문을 열고 있는 기업형 슈퍼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GS 슈퍼마켓, 신세계 에브리데이 등이다. 이들은 대형 마트에 이어 하나씩 점포를 늘려 가면서 지역의 골목 상권까지도 노리는 포식자로 등장했다. 당연히 중소상인들의 반발은 거세다.

 

상인들만이 아니다. SSM이 무엇인지 아는 대부분 국민의 뜻도 다르지 않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SSM을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견이 73%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업형 슈퍼마켓에 허가제를 도입해 진입을 규제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마트를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은 법률적으로 안 된다.”

“정부가 그렇게 규제해도 재판하면 패소한다. 이길 수 없다.”

 

얼마 전 재래시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그 ‘마트’다. 그러나 그는 잘못 알았다. 대형 마트와 SSM 규제는 국제법으로도 문제가 없어 일본·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 등 WTO 주요 가입국에서도 이미 대형 마트의 출점규제를 비롯하여 영업시간 및 품목까지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SSM, ‘친서민’과 ‘비지니스 프렌들리’ 사이

 

SSM은 현 정부가 최근 표방하고 있는 ‘친서민 정책’과 그간 유지해 온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맞부딪치는 지점이다. 특히 SSM 규제를 놓고 ‘등록제’로 갈 것이지, ‘허가제’로 갈 것인지가 쟁점으로 부상했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뜨거운 이슈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홈플러스 회장이 어떤 행사에서 소상인들을 ‘장애인’으로 비유한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형 마트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삼성테스코 회장인 이승한이란 이가 그 사람이다. 홈플러스는 우리나라의 SSM 업계에서 매장 수 1위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146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승한 회장은 16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아ㆍ태평양 소매업자대회’에서 SSM 진출 파동 질문에 대답하면서 기업형 슈퍼(SSM) 진출에 반대하는 중소상인들을 ‘맛없는 빵을 만드는 장애인’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 요지는 이렇다.

 

“장애인이 맛없는 빵을 만든다면, 빵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소상공인들이 맛없는 빵을 만들고 있다.”

 

그는 중소상인들을 ‘맛없는 빵을 만들고 있는 장애인’으로 비유하면서. 자신의 멋진 비유에 만족했는지 모르지만 두 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하나는 장애인에게, 다른 하나는 소상인들에게. 그는 결례뿐만 아니라 뒤틀린 인식의 일단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는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에 ‘기업형 슈퍼(SSM) 정책이 친서민적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말 일부는 맞다. 서민들은 일반 슈퍼보다는 싼 가격으로 기업형 슈퍼를 이용할 수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대부분 틀렸다. 그는 서민들에게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한 대신 SSM이 소비자들이 얻은 ‘작은 이익’보다 훨씬 큰 이익을 가져간다는 것은 빼먹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가져가는 마트(홈플러스) 매출의 1.6%밖에 안 되는 익스프레스의 매출이 주변의 영세 슈퍼의 문을 닫게 하고, 소상인들을 생존권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그는 장애인과 중소 상인을 모독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장애인’을 모독했다. 그는 장애인이 ‘맛없는 빵’을 만든다는 가정을 통해 장애인의 능력을 비하했고, 또 장애인이 만든 빵을 ‘사 준다’라는 표현으로 장애인을 동등한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시혜의 대상인 것처럼 깎아내렸다. 장애를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 한 ‘비장애인’ 이승한 회장은 그리 인격적인 사람으로 대접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는 중소상인들도 모독했다. 그는 ‘SSM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개인 대형슈퍼(50평가량)를 1~6개가량 소유한 사람들’로 보면서 이들의 반대를 ‘맛있는 빵을 공급하지 말고 맛없는 빵을 만들어 판매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라 주장했다. 그의 말은 마치 SSM 진출 저지 싸움을 하는 이들을 부유한 상인들로 몰아감으로써 ‘부유층의 억지’인 것처럼 사태를 오도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소상인들은 ‘맛있는 빵’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회장이 말하는 ‘맛’이 다만 ‘값싼 상품’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건 자본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지,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상인에게 요구되는 덕성은 정직과 성실이고, 고객에 대한 친절과 배려이지 몇 푼의 가격 때문에 이웃을 저버리는 몰인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잊은 게 있다. 중소상인들이 열고 있는 영세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물론 단돈 100원이라도 싼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들은 납품단가를 후려쳐서 공급하는 ‘값싼 상품’만을 ‘맛’으로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도 그는 잊었다. 사소한 값의 차이를 넘어 이웃으로서 단란한 우의를 나누는 ‘골목의 우정’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SSM 규제가 어떤 길로 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업형 슈퍼의 수호천사를 자임한 이승한 회장은 현재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중소상인들이 지키고 있는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포식자인 기업형 슈퍼나 대형 마트 경영이 ‘녹색성장’과 어떤 상관관계인지는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2009. 10. 17.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