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기리의 ‘늦은’ 메밀꽃
강원도 봉평 메밀꽃 구경을 나섰다가 영주 무섬에 다녀온 게 지난 9월 5일이다. 우연히 봉화 소천면 임기리 메밀밭 소식을 듣고 거기서 ‘원수’를 갚겠다고 별러 온 지 2주였다. 썩 내켜 하지 않는 가족들을 구슬려 집을 떠난 게 오후 2시가 훨씬 넘어서다.
봉화군 소천면 임기리 지역은 50ha에 메밀을 재배하고 있는 국내에서 최대의 메밀 생산지라고 한다. 당연히 축제도 베풀어진다. ‘소천 메밀꽃 축제’는 9월 19·20일 이틀에 걸쳐 현지에서 베풀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종 플루가 번지면서 이 축제는 취소되었다. 나는 축제가 취소돼 한적한 임기리를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었다.
일부러 내비게이션이 일러 주는 낯선 길을 선택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임기리 근처로 접어들었는데도 메밀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때부터 알아채어야 했다. 무언가 눈이 휙 뒤집히는 광경을 잔뜩 그려온 아이들도 적이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얗게 ‘소금을 뿌린 듯’해도 시원찮을 들과 언덕은 이미 흰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메밀꽃은 끝물이었던 게다. 우리는 시를 놓친 것일까. 어느 산기슭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몇 장 찍는 걸로 우리는 임기리를 ‘정리’해 버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잃어버린 전의(!)를 되찾을 수 없을 만큼 우리는 맥이 빠져 있었다.
2. 백천계곡의 ‘이른’ 단풍
애당초 출발할 때만 해도 백천계곡은 내 시간표에 들어 있지 않았다. 임기리 메밀꽃이 한창이라면 백천계곡까지 들를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러나 임기리에서의 ‘실망’은 자연 발길을 그쪽으로 돌려놓았다.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의 백천계곡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옥계수가 해발 650m 이상의 높은 고원을 16km에 걸쳐 흐르면서 만든 계곡이다. 발원지인 태백산을 비롯하여 연화봉(1,052m) 청옥산(1,276m) 조록바위봉(1,087m) 등의 높은 산에 둘러싸여 계곡의 물이 맑고 수온이 낮아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다.
임기리에서 백천계곡까지는 24Km 남짓. 나는 거기서 임기리에서의 실망을 만회할 수 있기를 바랐다. 백천계곡의 단풍축제가 신종 플루 때문에 취소되었다는 기사 속의 핏빛 단풍에 나는 잔뜩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9월 중순인데 단풍이라고?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나는 봉화 석포가 경북 최북단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흔들리는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역시다. 나는 아마 ‘백천계곡의 단풍축제’가 10월 중순께 베풀어진다는 사실을 놓쳤을 것이다. 수량은 보잘것없었지만, 계곡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단풍으로 화사한 단장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렀다. 그럼 그렇지, 아직은 9월이니까……. 우리는 좀 쓸쓸해져서 백천계곡을 빠져나와 귀로에 올랐다. 우리 가족의 주말 나들이는 결국 ‘꽝’이 되고 만 것일까.
2009. 9. 19.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에 잠길 뻔했던 문화재들, 이리 보니 반갑네 (2) | 2020.10.20 |
---|---|
[사진]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누가 주연일까 (0) | 2020.10.08 |
해바라기가 있는 숲길 (0) | 2020.08.16 |
군위 선방산 기슭의 옛 가람, 지보사(持寶寺) (0) | 2020.08.09 |
코로나 시대의 여행, 바다보단 ‘자작나무숲’ (0) | 2020.07.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