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들의 이중모음 발음
우리말에서 모음은 단모음이 10개(ㅏ, ㅐ, ㅓ, ㅔ, ㅗ, ㅚ, ㅜ, ㅟ, ㅡ, ㅣ), 이중(복)모음이 11(ㅑ, ㅒ, ㅕ, ㅖ, ㅛ, ㅠ, ㅘ, ㅙ, ㅝ, ㅞ, ㅢ)개로 모두 21개다. 단모음은 발음할 때 입술의 형태가 바뀌는 모음인 이중모음과 달리 발음할 때 입술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 모음이다. 당연히 발음하는 데 드는 수고가 적으니 발음하기가 쉽다.
‘과자’를 [가(까)자], ‘경남’을 [갱남]으로 읽는 까닭
아이들이 ‘과자’를 ‘가자’, 또는 ‘까자’로 발음하는 것은 그게 발음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경남 사람들이 [경남]이라고 발음하는 대신 [갱남]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이중모음 ‘ㅕ’보다는 단모음인 ‘ㅐ’가 발음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요즘 미군의 고엽제 매립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군기지 캠프 캐럴의 소재지는 왜관이다. 그러나 연속된 이중모음으로 되어 있는 이 지명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은 그리 수월치 않다. 사람들에 따라 다르지만, 주민들이 [왜간], 또는 [애간] 따위로 발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상도 방언에서 두드러지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이중모음 ‘ㅕ’를 단모음 ‘ㅣ’로 발음하는 것이다. 교육받은 젊은 층에선 찾아보기 어렵지만, 아직도 노인들은 이런 단모음 발음에 익숙하다. 이들은 [병(病)]을 [빙]으로, [명(命)]을 [밍]으로 읽는다. 사람 이름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 경운기에 빙(→병)이 났단다.
· 그 사람 밍(→명)이 그리 짧았나…….
· 밍(→명)색이 자손이 되어서…….
· 집에 빙(→병)호 있는가?
그런데 이런 발음 습관이 일종의 ‘부정회귀’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부정회귀(不正回歸)’는 어형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어형을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오히려 바른 어형까지 잘못 고쳐버리는 것’을 말한다.
부정회귀 현상은 주로 우월한 방언(주로 서울 방언)에 대하여 그렇지 못한 지역과 사회 방언의 사용자가 말을 고상하게 하려고 방언이나 비속어 냄새가 나는 말을 지나치게 바로잡으려는 데서 일어난다. ‘질삼>길쌈’의 변화가 그 좋은 예다.
‘빙’을 [병]으로, ‘빈’을 [변]으로 읽는 부정회귀
‘길쌈’의 옛말은 ‘질삼’이다. 그러나 ‘질’은 주로 방언에서 쓰이는 소리(길 : 질, 기름 : 지름, 길다 : 질다)여서 사람들은 이를 ‘길’로 되돌린다. 결국, 멀쩡한 ‘질쌈’은 사투리로 떨어지고, 잘못 돌이켜진 ‘길쌈’이 표준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빙장(聘丈)’이나 ‘빙모(聘母)’는 ‘다른 사람의 장인이나 장모를 높여서 이르는 말’이다. (빙부는 자기 장인을 이르는 말) 그런데 경상도 일각에서는 이를 자신의 처부모를 높여 부르는 말로 흔히 쓰곤 한다. 연로한 장인, 장모를 한껏 높여서 부르는데, 문제는 이 발음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빙장, 빙모’ 대신 ‘병장, 병모’라 부르는 것이다.
이 어이없는 발음이 짐작되는가. 그렇다. 사람들은 ‘병’을 ‘빙’으로 잘못 발음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오히려 바른 어형까지 잘못 고쳐버린 것이다. 이 잘못 돌이켜진 말은 ‘길쌈’과 같은 지위를 얻지는 못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자기 처부모를 ‘병장 어른, 병모님’으로 부르는 게 가능한가 따지는 건 다음 일이다. 지금도 우리 고향 어름에 가면 이런 말을 아무 의심 없이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을 뜻하는 ‘빈소(殯所)’를 ‘변소’로 읽는 이도 있었다. 요즘 신식 장례가 일반화되면서 ‘빈소’를 둘 일이 없어지면서 그걸 ‘변소’로 부르는 민망함을 덜게 된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2011. 8.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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