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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나는 ‘공유’되고 싶지 않다

by 낮달2018 201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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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지진아’의 페이스북 출퇴기

 

지난주에 나는 페이스북(facebook)을 탈퇴했다. 페이스북 초기화면에는 가입하기는 있는데 탈퇴하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단지성(!) 인터넷에 대고 물었다. 뜻밖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았나 보다. 친절한 누리꾼들은 로그인 상태에서 탈퇴하기를 누를 수 있는 주소를 올려놓았다. 나는 예의 주소로 가서 탈퇴하기를 누름으로써 약 두 달 남짓의 페이스북 시대’(?)를 청산했다.

 

탈퇴하기로 결정하는데 나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페이스북에 가입한 것은 우연이었다. 전자우편함에서 발견한 지인의 이름을 따라갔는데 튀어나온 게 페이스북이었던 것이다. ‘가입하기를 누를 때도 별 망설임은 없었다. 수틀리면 탈퇴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것은 아마 컴퓨터 사용자들이 ‘ESC’를 누르는 심리와도 비슷한 것이었다.

 

페이스북, 가입에서 '탈퇴'까지

▲ 페이스북의 초기화면. ‘가입하기’는 있는데 ‘탈퇴하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가 현대인에게 일상의 반려가 된 지도 꽤 오래다. 이제 사람들은 그것 없이는 일상을 영위할 수 없을 만큼 컴퓨터와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런 세상의 추세를 나는 비교적 잘 따라왔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과 달리 나는 컴퓨터를 쓰고 프로그램을 쓰는 데에 어떤 장애도 없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비롯하여 최근에 시작된 전자결재 시스템 따위에도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한다. 286 컴퓨터로 나는 일찌감치 도스 시대에 입문하였던 까닭이다. 4년째 블로그를 열고 있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생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벗들이 날 일러 얼리어댑터라고 말하는 건 물론 과장이다. 나는 아직 트위터에도, 스마트폰에도 입문하지 않았다.

 

출근하면 종일 컴퓨터를 껴안고 사는 형편인데 만만찮은 요금을 물어야 하는 스마트폰을 굳이 남 먼저 장만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블로그 운영에도 진을 빼는 형편에 트위터에까지 발을 들여놓는 게 무리라고 여긴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트위터와 비슷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ing Site)페이스북을 잘 몰랐던 것은 나이 들면서 나와 무관한 것들에는 무관심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나서야 미투데이가 비슷한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라는 걸 알았다.

 

이제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마치 시대정신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타임>2010올해의 인물로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를 선정했다. “페이스북은 지구에서 10분의 1이 하나로 연결된 결합조직이며,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국가에 해당하는 동시에, 그 어떤 정부보다도 시민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제공해 주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라는 <타임>의 평가는 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친구들과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페이스북은 2004년 당시 하버드 대학 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가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이 서비스는 그 후, 점차 영역이 확대되면서 마침내 20069월에는 13살 이상의 전자 우편 주소를 가진 사용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눈부신 발전

 

페이스북은 국내 이용자가 지난해 12월 현재 2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되면서 트위터 이용자수를 추월했다. 이는 6개월 전보다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매달 10% 안팎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러한 추세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르다고 한다.

 

페이스북의 발전은 눈부시다. 페이스북의 자산 가치를 500억 달러(56조 원)로 평가하고 러시아 투자사와 함께 페이스북에 5억 달러(5,6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발표는 페이스북의 발전을 웅변으로 시사하는 것이다. 상장이 안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자산평가를 기준으로 보면 페이스북의 자산은 보잉(boeing)과 맞먹고 야후(yahoo)의 두 배라고 한다.

 

이런 눈부신 발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 환경과 트위터 등 다른 모바일 서비스와 연계되면서 페이스북 사용자 집단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듯하다.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친구 찾기와 관계 맺기의 장점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미국처럼 인터넷 검색량 1위를 차지하는 서비스가 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고 한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페이스북을 쓰는 한국인들의 정서가 미국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해오면 이를 거부하기 힘들어 수락하는데, 그러다 보면 친구들의 글이 올라오는 내 담벼락이 실제로 나랑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외면하게 된다.”(<한겨레>기사)는 한 사용자의 푸념은 우리의 정서가 페이스북과 쉽게 친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기사 바로 가기]

 

▲ ‘올해의 인물’이 된 마크 저커버그

이는 내가 페이스북을 그만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페이스북에 접속했을 때 나는 나와 직간접적인 연을 가진 이들의 이름이 그렇게 촘촘히 내 주변에 모여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들 주변의 인간관계를 이리저리 이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놀랐고, 이내 조금 마음이 언짢아졌다.

 

거기서 나는 서울로 진학한 아이들과 멀리 있는 동료들, 옛 제자들의 근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게 페이스북의 이점인가 싶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커지는 관계망은 장난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지인과 이어지면 그의 지인 가운데 몇몇과 다시 이어지고…….

 

달리 거기서 활동하는 걸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내게 오는 친구 요청을 수락하기에 바빴다. 우리 사회에서 친구 요청을 대놓고 거절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친구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쪽도 요청받는 쪽도 관계를 기대하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메일을 주고받는 건 아니니 말이다.

 

내 담벼락에 도배된 의 얘기들

 

대부분 지인이었지만 개중에는 전혀 모르는 이들도 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다. 글쎄, 그런 이가 한둘쯤 있었는데 나는 수락하고는 이내 그를 잊어버렸다. 문제는 뒤에 튀어나왔다. 어느 날부터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나와 친구지만 별로 왕래가 없는 이들이 벌이는 활동이 내 담벼락을 도배하고 있는 거였다.

 

한번 인사한 게 고작인 대학생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인간관계(나와는 지극히 무관한!)가 새끼를 쳐 가는 걸 꼼짝없이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처음엔 아이들의 교우 관계라 싶어 흥미가 없지 않았지만, 거기 묻어나는 건 그렇고 그런 일상에 그치는 거여서 이내 나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내가 아는 사람들끼리의 대화라면 그나마 들어줄 만도 하겠다. 그러나 생판 모르는 이들이 섞여서 내 담벼락 아래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 쌓는 것을 엿보아야 하는 것은 영 아니었다. 중간에 특정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이지 않게 하는 기능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기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은 어차피 아니라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페이스북의 문제점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개인정보의 실시간 노출보다는 그런 상황이 불편했다. 마땅히 거기서 나눌 얘기도 없는데, 주변의 방담을 꼼짝없이 지켜보아야 하는 민망함을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활동이라 할 만한 일을 하진 않았지만, 내가 주변과 나눈 이야기도 꼼짝없이 주변에서 지켜보았을 것이었다.

 

어차피 열린 상황에서 나눈 이야기니 남에게 공개해도 무관한 일상적 대화에 불과하긴 하다. 그러나 숱한 아는 사람들이 내 집 주변을 에워싸고 사적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한가롭게 지켜보는 것은 그리 마뜩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페이스북을 제대로 쓰는 법을 제대로 몰랐기도 했다.

▲ 페이스북은 사람들이 친구와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다.

주간지 <한겨레 21>인터넷 무한검색의 유혹개인정보에서부터 국가기밀까지’ ‘실시간 노출을 피할 수 없는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보도하고 있다. “‘모든 게 검색되는디지털 문명의 편리함이 프라이버시의 종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기사 바로 가기]

 

디지털 시대의 정보와 프라이버시

 

한 인기 연예인은 인터넷에 남긴 철 지난 일기 때문에 그룹을 떠나야 했다. 그뿐 아니라, 제자와 불미스러운 사건을 저지른 교사, 환경미화원을 무시한 대학생 등 일반인 역시 개인정보의 노출로 입는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글쎄, 그렇게 따지면 블로그를 몇 해째 운영하는 나 역시 꼼짝없이 이 무한검색앞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실명이든 아니든 우리가 무심코 끼적댄 한 줄의 의견과 논평이 어느 날 익명의 대중이 참여하는 프로파일링을 거치면 개인에 관한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정보 파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리고 누리꾼들이 확대 재생산한 정보는 흉기가 되어 자신에게도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우리 자신들에게 손쉽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거기 노출된 정보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양날의 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겨레 21>이 제기하는 디지털 시대에 개인들의 사생활이 인터넷 검색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검토와 논의 필요성은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나는 페이스북을 두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지인을 만났다. 우리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고 두어 차례 대화를 나누었고, 그걸 통하여 만날 약속도 한 적이 있다. 내가 페이스북에서 탈퇴했다고 했더니 그는 반색하면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탈퇴를 입력하면 방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이가 많다고 말했다. 로그인 상태로 해당 주소를 치면 탈퇴하기창이 나온다. 페이스북 탈퇴는 탈퇴하고 14일간 로그인하지 않으면 최종 계정이 삭제됨으로써 완료된다. 물론 그간 14일이 지났으므로 페이스북의 내 계정은 삭제되고 없을 것이다.

 

글쎄, 아마 조만간 나는 스마트폰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모두가 하는 사회관계망 서비스 중 어느 하나에 가입하고 그것으로 내 일상을 확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형식의 사회관계망이라면 거기 굳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보수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이 디지털 시대의 지진아일지도 모르겠다.

 

 

2011. 1. 17.   낮달

 

 

페이스북을 떠난 지 8년이 지났다. 아이티(IT)로 보면 엄청난 변화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2019년 현재 이용자수가 22억 명을 넘었고, 시가총액은 지난해 실적우려로 주가가 폭락하여 134조원이 날아갔는데도 현재 570조 원을 넘는 공룡 기업이 되었다. 

 

예전에 블로그를 같이하던 이웃들은 어느 날부터 발길이 뜸하더니 모두 페이스북을 통해서 교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공유되고 싶지 않아' 페이스북을 떠난 것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은 페이스북으로 몰려들었고, 그걸로 일상과 자신의 인간 관계망을 유지,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잠깐 가볍게 트위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두어 번 가입했다가 탈퇴를 거듭한 것은 역시 블로그 유지도 힘겨운데 거기다 또다른 관계망을 만드는 게 무리라고 판단해서였다. 10년 넘게 유지하다가 마침내 이사까지 하여 블로그를 이어가고 있는 나는 꼼짝없이 이 디지털 시대의 지진아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페이스북과 무관하게 8년이 지났지만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불편하지 않게 살고 있고 그 관계망이 아쉬운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내가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그게 불편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 글을 쓰려고 다른 사람의 페북을 들여다보는 게 쉽지 않아서 가입만 해서 필요한 페북의 내용을 참고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젠장, 어느 날부터 내 사진을 올려라 어쩌고 하더니만 접속도 잘 되지 않고 해서 나는 미련없이 다시 페북에서 탈퇴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는 8년 전에 쓴 '페북 탈퇴의 변'을 다시 읽는다. 글쎄,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탓인가.  내가 8년 전에 적시한 상황은 그대로인 듯하다. 때로 불편하여도 그걸 감수하고 살 때도 있는데, 불편하지 않은데 내 마음과 태도를 바꿀 일은 없다, 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2019. 2.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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