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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아내 생일에

by 낮달2018 2020.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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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아내는 손수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렸다

▲  지난해 아내의 생일날 켠 촛불 케이크 .  올해는 이것도 줄였다 .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는 손수 끓인 미역국에다 엊저녁에 해 둔 밥으로 식탁을 차렸다. 그 식탁에 앉기가 좀 민망했다. 딸애는 뒤늦은 공부 때문에 해외에 머물고 있고, 아들 녀석은 서울에 있다. 그렇다고 아내의 생일이라고 내가 안 하던 밥을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일날인데……, 미역국도 손수 끓여서 먹어야 하는구먼, 하고 내가 겸연쩍게 말하자, 아내는 심상하게 밥도 엊저녁 밥인데 뭘, 하고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다.

 

“어쨌든, 당신 같은 사람을 내게 보내주어서 나는 참 행복했어. 당신이 태어나 주어서 정말 고마워.”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예전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수준의 아첨이지만, 나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정말 아내가 내 인생에 온 유일무이한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들면서 속 보이는 거짓부렁을 예사롭게 할 정도 낯이 두꺼워지긴 했다. ‘선의(善意)’에 필요하면 아내에게 얼마든지 그만그만한 거짓말쯤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내게 준 ‘행복과 감사’를 말하면서 내가 과장을 하거나 맘에 없는 말을 한다는 의식은 추호도 없었다. 일부러 그런 말을 하고자 해서 한 게 아니라, 저절로 내 입에서 그 말이 술술 나왔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한 말이 내 삶의 무게만큼이나 진정성 있는 말이었다는 걸 아주 분명하게 깨달았다.

 

아내가 내 말을 별 이의 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내도 그런 내 진정성을 마음으로 느낀 탓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말없이 주고받을 만큼 우리 내외가 나눈 정과 사랑은 오래되었다는 뜻일 터이다. 나는 아내가 끓인 미역국을 맛있게 비우고 서둘러 출근했다.

 

아내,  삶의 유일무이한 ‘축복’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점심이나 저녁을 나가서 먹자고 했더니 아내는 저녁이 좋겠다고 말했다. 퇴근하는 길에 전화하마고 나는 집을 나섰다. 퇴근하면서 은행에 들러, 내 비자금(?) 통장에서 얼마간의 돈을 찾아서 봉투에 넣고 인근 꽃집에 들러 꽃을 조금 사리라고 마음먹었다.

 

아내와 함께한 세월이 어쨌거나 30년이다. 새삼 그 숫자를 입에 올리니 아득하다. 어떻게 만나 어떻게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살아왔는지……. 무엇보다도 막내였는데도 치매 앓는 어머니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셔 주었고, 그 임종을 함께 한 아내다. 서른넷, 한창때에 해직된 남편을 불평하지 않고 다섯 해의 세월을 다 견뎌준 사람이다.

 

피차 그만그만한 집에서 자랐던 사람인지라 ‘없이 사는 일’에 이력이 붙어서 힘든 일도 힘들이지 않고 겪고 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잔병치레 없이 두 아이를 건강하게 길러냈고, 일가친척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선한 이웃으로 어긋남이 없었다.

 

더 무엇을 바라랴. 가족을 소 닭 보듯 바라보았던 철없는 남편을 용서한 세월이 스무 해가 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 가장이며 남편인가를 처음으로 깨달은 건 40대 중반을 넘어서였다. 남은 세월 동안 아내를 떠받들고 살아도 그 은공을 다 갚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잔뜩 모양을 내곤 하지만, 기실은 여느 남정네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쉰 고개를 넘으면서 비로소 ‘아내를 발견’한 뭇 남편 가운데 하나며, 그렇게 발견한 아내를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욕심은 넘치고 세월은 매정하다.

 

나는 내 건강만큼 아내가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안락’하지는 않을지라도 서로 의지하며 노년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만년의 시나리오에서 나는 늘 아내보다 먼저 떠나게 되어 있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점심때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아들 녀석이 꽃바구니를 보낸 것이다. 아내는 거기 감읍해, 꽃바구니를 찍은 사진도 내게 전송해 왔다. 하긴 코흘리개 자식이 괴발개발 그리고 쓴 편지에도 감격하는 게 부모니 더 무엇을 말하랴.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넣어 거듭 축하했다. 그리고 말했다.

 

“꽃은 굳이 사지 않아도 되겠네.”

“그럼, 안 사도 돼요. 꽃바구니를 받았는데 뭘…….”

“케이크는 하나 사 갈까?”

“아뇨. 누가 먹는다고. 그러지 말고 그냥 와.”

“그럼 저녁은 먹고 싶다던 냉면을 먹지, 고기 구워서.”

“그래요. 기다릴게요.”

 

아내에게 건네줄 봉투의 두께를 잠깐 고민한다. 적게 넣든 많이 넣든 그건 결국 아내의 것이 되기보단 생활비로 쓰이기 쉽다. 아내의 돈이 고스란히 자기 거인 때가 언제 있기나 했을까. 결국은 이 지갑에서 저 지갑으로 옮겨갈 뿐인 것을. 공연한 걱정을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퇴근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2011. 5.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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