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토지6

[오늘] 대하소설 <토지> 25년 만에 완간(1969~1994)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0월 8일, 작가 박경리 대하소설 완간 1994년 10월 8일, 작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대하소설 가 25년 만에 완간(完刊)되면서 근현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장대한 삶의 파노라마를 다룬 이 위대한 작품의 여정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1969년 1부를 쓰기 시작했을 때 마흔두 살이었던 작가가 예순일곱의 노년에 이른 이 25년은 한편으로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파노라마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히 25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소요되었다거나 원고지 3만 장을 훨씬 넘는 대작이라는 등 수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가가 긴 세월 동안 수만 장의 원고지에 담아낸 것은 각고의 노력이면서 동시에 한민족의 원형으로서 토지를 중심으로 교직(交織)한 위대한 서사였기 때문.. 2023. 10. 8.
연곡사, 나말여초에 선종의 수선(修禪) 도량으로 이름 높았다 [지리산자락 지각 답사기] ④ 지리산 연곡사(鷰谷寺,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를 대여섯 번쯤 읽었다. 주요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이른바 ‘썰’로 풀 수 있을 정도다. 하동의 최참판댁을 지나는 길마다 들르곤 하는 것도 의 인물들이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감으로 내게 살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에서 전개되는 서사의 배경 가운데 연곡사(鷰谷寺)가 있다. 최참판댁의 여장부 윤씨 부인이 요절한 남편의 명복을 빌러 기도드리러 간 절로 우관 선사가 주지다. 윤씨는 형인 우관의 절에 휴양차 와 있던 동학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구천)을 낳는다. 반세기에 걸친 최참판댁 가족사가.. 2022. 7. 25.
평사리엔 ‘최참판댁’ 말고 ‘박경리 문학관’도 있다 박경리 대하소설 의 배경이 된 곳, 평사리에 가다 [이전 기사] 그냥 한번 와 봤는데… 진주 시민들이 진심 부럽습니다 피아골 단풍을 만난 뒤 진주로 가는 길에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들렀다. 알아듣기 좋게 ‘최참판댁’에 간다고 했지만, 박경리 문학관에 간다고 말해야 옳다. 문을 연 순서로 치면 문학관이 늦지만, 최참판댁은 실재하는 집안이 아니라 를 바탕으로 짜인 허구의 집이고, 그 작가가 박경리 선생이니 말이다. 평사리, 박경리의 거대 서사에 편입된 역사적 공간 그간 남도를 다녀오는 길에는 늘 평사리(平沙里)에 들르곤 했다. 경상도에서 남도를 오가는 길목에 하동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길목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평사리가 있어서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악양면의 한 동리에 불과.. 2021. 11. 15.
‘쉼표’ 하나 책 몇 권을 사들이며 올 오월까지만 해도 꽤 부지런히 살았다. 블로그 살림살이 말이다. 4월에 12편, 5월에 13편을 썼으니 한창때의 월 14~15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평년작을 웃돈 성적이었다. 그러나 6월에는 9편, 7월에는 10편, 그리고 중순에 이른 8월은 현재 4편이 고작이다. 열서너 편을 쓰던 때에 비기면 급전직하다. 글쎄, 무슨 까닭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동안 쫓기는 기분까지는 아니었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늘 머릿속에는 써야 할 글의 목록으로 어지러웠던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글쓰기가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써야 할 글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데다 머릿속을 텅 비워두는 게 뜻밖에 편안하고 쏠쏠했기 때문이다. 편안한 쉼, 혹은 무념 방학이긴 해도 오전만 수업하면 오후는 온전히 빈.. 2021. 8. 14.
박경리와 홍성원, 두 작가의 부음에 부쳐 박경리 1926~2008. 5. 1. 두 명의 작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일엔 홍성원(71)이, 오늘(5일) 오후에는 박경리(82) 선생이 각각 작가로서, 자연인으로서 당신들의 삶을 마감했다. 물론 그것은 가족이나 친지의 부음처럼 애잔한 슬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박경리 선생이 위중하다는 것을 이미 며칠 전에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던 까닭에 나는 ‘그랬구나……’ 하는 정도로 선생의 부음을 받아들였다. 향년 여든둘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잠깐 아쉬움을 느꼈을 뿐이다. 82세라면 요즘 같으면 얼마든지 건강해도 될 연세이니 말이다. 선생의 부음은 신문과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저마다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다투어 기리고 있는 듯하다. 나는 잠깐 그이가 살아낸 80여 년의 삶과 .. 2020. 5. 5.
2009년 통영, 박경리 기행 박경리와 그의 문학의 고향 통영 기행 지난 5월 5일은 작가 박경리 선생의 1주기였다. 따로 문상하지 않았던 나는 원주를 찾아 그이의 흔적을 잠깐 더듬었다. 원주 시내에 있는 ‘토지문학공원’에서, 그리고 그이가 살던 슬래브집을 둘러보는 거로 나는 선생을 추모했다. [아아, 박경리 그리고 토지] 그이가 묻힌 통영을 다녀오리라고 마음먹은 지 꼭 석 달 만에 나는 통영을 찾았다. 거제도를 다녀오던 길, 벗들과 함께였다. ‘통영(統營)’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서 온 이름이다. 통영은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따서 ‘충무’라 하였다가 1995년 시군이 통합되면서 다시 제 이름을 되찾았다. 2009년 8월, 통영을 찾다 바다가 아닌 산과 어우러진 호수 같은 바다를 가진 이 .. 2019.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