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4

숲 산책, ‘가지 않은 길’ 학교 뒷산의 숲을 걸으면서 얼마 만인가. 어저께는 빈 시간에 학교 뒷산을 올랐다. 9월이지만 여전히 산은 푸르고 그늘은 두터웠다. 사람들의 자취로 익숙한 옛길을 걷다가 문득 왼쪽으로 벗어난 작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무심코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오종종한 하얀 꽃의 물결이 수줍은 듯이 이어지고 있는 메밀밭이었다. 물론 이효석이 소설에서 묘사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은 아니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 풍경이 주는 ‘2% 부족한 느낌’ 때문이다. 메밀꽃은 화려하지도, 꽃송이가 크지도 않다. 작고 보잘것없는 꽃들이 어우러져 지어내는 수더분함이 바로 메밀꽃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내겐 ‘낯선 길’이었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숱하게.. 2021. 9. 7.
스마트폰으로 담은 산길의 봄 “사진은 비록 똑딱일지언정 전용 사진기로 찍어야 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아마추어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줄곧 외쳐온 구호다. 똑딱이에서 시작해서 이른바 디에스엘알(DSLR) 중급기를 만지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좋은 사진’(‘마음에 드는 사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을 위해서 길을 떠날 때 카메라를 지녀야 하는 성가심과 고역을 감수해 온 것이다. 2G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쓰는 지금까지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었다. 부득이할 때에 보조 촬영의 기능으로만 그걸 써 왔다는 얘기다.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기 어려운 장례식에서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만 부득이 휴대전.. 2021. 4. 6.
오월의 산, 숲은 가멸다 어느덧 오월도 막바지입니다. 오늘은 대구 지방의 온도가 섭씨 35도에 이를 거라니 계절은 좀 이르게 여름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서재에서 바라보는 숲은 더 우거졌고 산색도 더 짙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도 얼마간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한동안 베란다에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도 숙지는 듯합니다. 바람을 통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이 풍매화(風媒花)는 이제 꽃가루를 날리고 받는 일은 끝낸 것일까요. 수분(受粉)에서 수정에 이르는 6개월 뒤에 비로소 암꽃은 솔방울을 달게 되겠지요. [관련 글 : 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올에 유난히 짙은 향기로 주민들의 발길을 붙들던 아까시나무꽃도 이제 거의 졌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아까시나무 꽃잎은 산길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밟히고 있습니다. 싸리꽃도 .. 2020. 5. 29.
숲을 걸으며 숲의 선물, 명징한 깨우침과 서러운 행복감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든 산을 만나는 나라에서 살면서도 정작 우리는 산에 대한 특별한 자의식을 갖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닐까. 요즘 거의 날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학교 뒷산을 오르내리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이름난, 높고 깊은 산이 아닌 한, 그저 언덕을 면한 나지막한 ‘앞산’, ‘뒷산’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산을 달리 타자(他者)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일까. 산은 땔감을 구하거나 흉년의 주림을 달래주는 갖가지 열매와 뿌리를 내는 구황(救荒)의 땅이었고, 죽어서 그 고단했던 육신을 묻는 공간이었으니 구태여 산을 일상의 삶과 구분할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뒷산은 안동의 주산(主山)이라는 해발 252.2m의 영남산(映.. 2019. 6. 23.